(사진=연합뉴스)
1억.
회사로부터 해고통지서를 받은 지난 7일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이 한 단어만 계속 맴돌았다.
해고통지서를 받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틀 내내 술만 마셨다.
하지만 앞으로 비행을 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1억을 당장 갚아야하는 현실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1억은 미국에서 모의 훈련과 실제 비행 연습으로 파일럿 자격증을 따는 데 든 비용이었다.
전년 소득을 기준으로 대출금이 산정돼 있어 대출 연장이 안 될 경우 당장 내년에 돈을 갚해야 한다.
생활비를 벌려고 공사장에서 막노동도 하고 TV 드라마 보조출연도 했다. 비행기 조종석을 잡던 손으로 남의 차 운전대를 잡기도 했다.
그는 "단순 일용직 알바로는 1억이란 큰 돈을 갚을 수 없어서 구직 사이트를 찾아보고는 있는데 30대 후반의 나이에 직업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며 "다른 항공사도 어려워서 사실상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이스타항공 직원 605명이 해고 통보를 받으며 항공업계 첫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제주항공과 인수협상이 무산되고,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구조조정 칼날은 비정규직을 넘어 정규직, 전문직까지 베어냈다. 불과 6개월 전 1천600명이었던 이스타항공 직원은 현재 3분의 1만 남은 상태다.
하늘길을 오가던 승무원과 조종사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남의 차를 몰거나, 공사장에서 철근을 날라야 했다.
직원 상당수는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고 일부 직원은 술에 의존하기도 한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서 자신을 "여자 캐빈"이라고 밝힌 직원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여성은 "어제부로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는데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현실직시가 안 되는 것 같다"며 "아직도 강서구에 살아서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데 눈물이 나고 아직도 제가 승무원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해고통보를 받고 계속 술만 마시고 있다"며 "차라리 모든 걸 다 놓고 싶다"고 괴로운 심정을 전했다.
고용보험료 체납으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못한 이스타항공은 정부의 저비용항공사(LCC)추가 지원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대주주 사재 출연 등 고강도 자구 노력이 없는 한 지원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노조는 실질적 오너인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박이삼 위원장은 "이상직 의원은 이스타항공의 실소유주이자 경영권을 행사하면서도 이스타항공 직원들의 생존권 박탈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금배지 뒤에 숨어 사익만 지키지 말고 오너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타항공의 대규모 실직 사태는 항공업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HDC현대산업개발과 인수합병이 무산되면서 추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또 오는 11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이 끝나면 항공업계 전반의 대량 실업 사태가 벌어질 거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노딜이 공식 선언되고 산업은행 관리 체제에 들어가면 재매각을 추진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혹독하게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이스타홀딩스의 이스타항공 주식 취득 과정에서의 횡령·배임 가능성과 이 의원 자녀의 상속세 포탈 여부 등을 수사해달라며 이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