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임 당시 폐지된 '피의자 공개소환' 제도를 제한적으로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검찰의 용역 보고서가 나왔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형사사건의 피의자가 '공적 인물'일 경우, 검찰 조사를 받기 전 포토라인에 세우는 관행을 부활하자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9일 CBS노컷뉴스가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한 '형사사건의 공개 및 보도의 합리적 조화를 위한 연구' 보고서는 "수사의 중간발표나 기소 단계에서는 유연하게 포토라인을 설치해 운영할 수 있도록 관련 훈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현행 규정상 공개소환과 포토라인 설치 금지가 특권층 등 일부 피의자들에게 특혜로 작용하는 문제점을 해소하고, 공적 인물에 대한 포토라인 운영의 필요성이 크다"며 "취재질서 유지선으로서 합리적인 포토라인 설치와 운영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대검찰청 정책기획과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법조언론인클럽에 맡긴 이번 연구는 검찰과 경찰이 따로 운영하는 보도준칙을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현재 경찰은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검찰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며 서로 다른 기준과 절차를 두고 있는 현실을 문제로 봤다.
보고서는 검·경 모두에 적용할 보도준칙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외적으로 행해지는 수사 기관의 정보 공개가 피의사실공표죄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면, 훈령이 아니라 법률로 정하는 것이 법체계상 모순을 없앨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9일 CBS노컷뉴스가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실을 통해 단독입수한 대검찰청 '형사사건의 공개 및 보도의 합리적 조화를 위한 연구' 보고서.(사진=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실 제공)
특히 피의자가 공적 인물일 경우에는 포토라인뿐 아니라 실명 공개 등 공보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도 했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를 제시하면서 "사적 인물과 공적 인물, 사적 사안과 공적 사안은 달라야 한다.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 업무정당성 여부는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적었다.
검찰 훈령에 규정된 '공인'의 범주가 너무 좁다는 지적도 있었다. 현행 규정상 공인은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및 교육감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 법관 △대검찰청 검사급 이상 검사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공무원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이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이나 '공직자윤리법'에 명시된 범주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이후 새로 도입된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공개하기로 결정된 혐의나 피의자 관련 정보만을 공개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 공개심의위가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금은 위원 명단이나 논의 내용이 철저히 공개되지 않는 데다 오직 검찰 공보관만이 심의 안건을 상정할 권한을 지닌다.
보고서는 공개심의위 위원 수를 현행 5~10명에서 7~10명으로 늘리고, 외부 위원으로 변호사협회와 한국기자협회 추천인을 포함할 것을 제언했다. 또 검찰 내부 인사뿐 아니라 출입기자단이 공개심의위 상정 안건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다.
과도하게 검찰에 쏠린 언론의 형사사건 보도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는 "국내 언론은 선정적인 범죄 기사를 선호하고, 사건 발생과 의혹 제기 수준에서 그친다"며 "실체적 진실 추구와 권력 감시에 집중하려면 장기적으로 검찰에서 법원으로 보도의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짚었다. 또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 등 수사 단계서 벌어지는 파편적 사실에 관한 단독·속보 경쟁을 멈추고, 독자적인 취재와 분석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권력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임무가 약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관심 사안이나 권력·공적 인물의 비리, 검찰의 권한 남용 등 사안은 검찰이 공소장 주요 내용 등 수사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황보 의원은 "조국 전 장관이 만든 검찰 공보 훈령으로 인해 검찰 수사는 지나치게 깜깜이가 됐다. 국민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공정한 수사 감시와 국민 알 권리 보장을 위해서라도 관련법 개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공개소환 폐지, 첫 수혜자는 조국 가족이었다 |
(사진=자료사진)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박영수 특검'이 출범했다. 당시 특검팀은 매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수사 상황을 공개했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소환은 물론, 청와대 압수수색 등 민감한 수사 정보가 이규철 특검보의 입을 통해 실시간으로 언론에 중계됐다.
3년 뒤 조국 법무부 장관은 검찰 개혁안을 2차례 발표하고 35일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자신과 가족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때 조 전 장관은 새 훈령에 공개 소환과 구두 브리핑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 달 뒤 검찰에 소환된 조 전 장관과 가족은 이 조치의 첫 '수혜자'가 됐다.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 수십명,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 관련 청와대 인사들도 줄줄이 혜택을 입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 및 라임·옵티머스 펀드 수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핵심 피의자들이 줄줄이 비공개로 검찰에 출석했고 언론은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심지어 구속 피의자 입에서 "검찰과 정치권을 향한 로비를 자백했지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당사자 자백이 없었다면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런 진술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도 수면 아래에 잠겨 있었을 것이다. '깜깜이' 수사가 자칫 '짬짜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할까.
피의사실 공표 금지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둘은 충돌한다. 검찰이 지난해 12월 도입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비춰보면, 박영수 특검이 위반한 규정은 한두 개가 아니다. 징계감이다. 하지만 지난 1년 간 검찰이 진행한 주요 사건 수사가 이전 사안보다 지나치게 '조용히' 진행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연구용역을 통해 대검찰청은 피의사실 공표 금지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라는 상충하는 두 가치 사이의 적정선을 찾을 수 있을까. 검경 외에 공수처라는 새 권력 수사기관이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 수사기관이 공통으로 적용하는 '공보규칙' 제정을 더는 미룰 수 없는 또다른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