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지 햇수로 4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집창촌에는 갈 곳 없는 나이 든 여성들이 성매매로 절망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부산CBS는 성매매로 연명하고 있는 한 60대 성매매 여성의 기구한 사연을 직접 들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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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부산진구에 있는 한 집창촌.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불켜진 곳이 거의 없고, 곳곳에서 철거가 이뤄져 스산함만 감돌고 있지만, 지난해 11월 하순쯤 이 곳에서 난데없이 A(37)씨의 격양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집창촌의 한 집에서 성매매를 했는데 나와보니 자신의 지갑이 없어졌다는 것.
지갑을 찾다 못한 A씨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수사 끝에 성매매 여성이 자신의 지갑을 가져간 것 같다는 A씨의 말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오히려 A씨와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특별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검사도 풀어준" 60대 성매매 여성의 기구한 사연사건을 송치받은 부산지검의 담당검사는 사건서류와 함께 A씨가 지목한 성매매 여성 용의자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짙은 화장으로 얼굴에 묻은 세월의 흐름을 감췄지만 성매매 여성이 60대 노인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
생계에 쫓긴 60대 성매매 여성과 변변치 않은 직업에 노총각으로 살아가던 30대 남자의 성매매 사건.
한참을 고민한 담당검사는 결국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이들의 처지가 딱해 처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기소유예로 처벌은 면했지만, 성매매 여성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한순간에 절도범으로 몰린 60대 여성은 가슴에 또 하나의 멍울이 생긴 채 자신의 일터인 집장촌으로 돌아가야 했다.
올해 나이 예순 다섯. 매일 집장촌에 출근하는 이숙희 씨(가명)는 이제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변명할 여력조차 남아 있지 않다.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손바닥 만한 가게에 앉아 있어도 한 달 수입은 15만원 남짓.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하루 한끼를 라면으로 해결하고, 자신의 사글세 방값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팍팍한 집창촌에서의 삶, 남은 건 한(恨) 밖에 [BestNocut_L]가끔 연락을 하는 고향친구들이 손자 재롱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는 소식을 전해오면, 이 씨의 마음은 더 먹먹해 진다.
"마음에 남은 건 한(恨) 밖에 없죠. 제가 조금만 스스로에게 욕심을 냈다면,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낳았을텐데… 평생 울면서 살아서 이제 흘릴 눈물도 없습니다"
50여년 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 몸이 불편해 경제력이 없는 이 씨의 부모님은 8남매의 생계를 첫째인 숙희 씨에게 모두 맡겼다.
막 15살이 넘은 이 씨가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성매매 뿐이었다.
이 씨는 동생들을 학교라도 제대로 보내야 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돈을 버는 족족 집에 보내기 바빴다.
그렇게 눈깜짝할 새 지난 세월이 20여년.
장성한 동생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 경찰, 공무원, 교사 등 자신의 원하는 삶을 가졌고, 동시에 학비를 내준 이 씨와의 연락도 끊었다.
"동생들이 크면 다 알아주고 고맙다고 할 줄 알았어요. 제 인생은 온데간데 없이 오직 가족을 위해 살았는데… 오히려 저를 부끄러워하고, 내팽개쳤죠. 남이라도 이렇게 비정하게 하지는 않을거예요"
◈가족생계 위해 시작한 성매매…정작 등돌린 가족들 한 남성과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2년 뒤 남편은 전 재산을 갖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빈털터리가 된 이 씨는 성매매만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학력도 가족관계도 확인되지 않는 40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또 시작된 성매매 생활.
지난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매달 나오는 20~30만원의 의료비로 성매매 생활과 노환으로 생긴 백내장, 관절, 자궁 근종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물리치료와 약값을 치르고 나니 오히려 느는 것은 빚뿐이었다.
◈"돌아갈 곳은 집창촌 밖에 없었다"
이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하기 위해 관공서도 수 차례 들렸다. 하지만 세금회피 등을 위해 이미 동생들이 자신 명의로 일부 재산을 돌려놓는 바람에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정부의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지원정책도 소용이 없었다.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는 상담소에 전화를 걸었다가도, 상담원이 나이와 얼마나 성매매를 했느냐고 물어보면, 더 이상 입이 떨어지지가 않아서 수화기를 내려놓기 일쑤였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어디 일할 데가 있나요? 젊은여성들은 쉼터에 가서 기술도 배운다지만, 저같은 늙은이는 마땅히 배울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요. 눈을 감는 순간 아침이 안왔으면 합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요"
발버둥칠수록 빠져들기만 하는 50년 집창촌에서의 삶. 그녀는 모든 의욕을 잃은 채 자신의 가게에 앉아 연명에 급급한 한스런 자신의 처지가 마감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