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 경찰청장이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해 '정인이 사건'과 관련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에 숨진 '정인이 사건'에 대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국회에서도 경찰의 미흡한 대응을 문제 삼는 질타가 쏟아졌다. 올해부터 시행된 자치경찰제에 따라 자치사무에 속하는 아동학대 관련 수사권이 없는 경찰청장을 책임자로 보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양천경찰서에서 수사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김창룡 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긴급 현안질의를 진행했다.
이날 질의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을 염두에 두고 "경찰이 어엿한 수사권의 주체로 활동해야 하는 이 시기에 오히려 경찰 스스로가 검찰의 족쇄에 가두어버린 상황"(국민의힘 서범수 의원), "검찰에 간다고 조사가 잘 되나. (피해아동이) 죽고 나서 가면 뭐가 되나. 일선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극 행정'으로 바꾸는 시스템을 만들어주시지 않으면 누가 와도 소용없다"(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의 역량 강화를 위해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설치되고 자치경찰제가 시행되면서, '정인이 사건'과 같은 아동학대 범죄의 경우 청장이 더 이상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경찰 조직 개편에 의해 국가경찰사무는 경찰청장, 자치경찰사무는 시·도 자치경찰위원회, 수사사무는 국수본부장의 지휘·감독을 받게 되는데, 아동학대 범죄는 자치경찰사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이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정인이 사건'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해 김창룡 경찰청장을 상대로 질의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경찰 출신의 서범수 의원은 본격 질의가 시작되기 전 "우리 청장님 나오셨는데, 아동학대 사건이 국가경찰 영역인가. 그렇지 않다. 자치경찰사무로 국수본부장 산하"라며 "경찰청장이 보고해야 할 사안이 없다. 지금도 아동학대 수사 보고를 국수본부장이 와서 해야 한다. 청장은 개별사건에 대해 구체적 (수사)지시를 못한다고 돼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같이 청장만 불러서 이런 사안을 따지면 지금 답변할 만한 권한이 별로 없다. 총체적 대안 같은 건 (청장이) 마련할 수 있지만 구체적 사건, 특히 아동학대는 자치경찰사무고, 수사사무에 대해선 국수본부장이 나와야 한다"며 "행안위 회의운영도 앞으로는 (사건에) 책임과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나와 답변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경찰법·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 역시 "이게 자치사무잖나. 자치경찰제 시행으로 국수본이 지휘하긴 하는데 국수본부장이 없으니 질타도 많이 받으시지만,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이런 일이 다신 재발되지 않도록 각별히 챙겨 달라"며 "국가권력기관 개혁이 시민생활의 안전으로 귀결돼야 하는데 (오히려) 불안감을 조성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행안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이 사건은 작년에 진행, 처리됐고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전반적인 큰 건은 청장께서 지휘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며 "그간 청장께서 상임위에 오셨을 때마다 정인이 건을 질의해왔다. 그럼에도 (또다시) 크게 국민적 관심사가 돼 오늘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청장은 "위원님들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다. 엄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 경찰의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재차 사죄의 뜻을 밝혔다.
이어 "아동학대 조기발견 및 지원, 학대수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아동학대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국수본, 시·도 자치경찰과 협력체계를 공고히 구축하겠다"며 "앞으로 모든 아동학대 의심사건에 대해 학대 혐의자의 정신병력, 알코올 중독 여부, 피해아동 과거 진료기록 등을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양모 장모씨가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 장모씨에게 적용된 혐의인 '아동학대치사죄'를 범행의 고의성이 인정되는 '살인죄'로 변경해야 한다며, 경찰의 재수사 의지를 묻는 질문도 나왔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은 양부모의 공소장을 제시하며 "(정인이의) 췌장이 절단된 사건인데 (의도적 학대를) 상당히 의심해봐야 하는 상황이 아녔겠나. 적용 의율에 있어 과실범인 치사가 아니라 살인죄를 직접 적용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질의했다.
김 청장은 "구체적 법률 적용은 수사팀에서 하겠지만, 경찰에서도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했고 검찰에서도 아동학대치사를 적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적용혐의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살인죄로 공소장이 변경돼 이후 법원 판단이 나오면 책임지겠나"라며 "현 상황에서 청장의 인식을 여쭤본다. 국민들 앞에 재수사 의지 유무를 말씀해 달라"고 거듭 직접적인 답변을 촉구했다.
김 청장은 "현행법 체계에서 경찰이 수사해 (검찰로) 송치한 사건에 대해 다른 특별한 변동사항이 없는 한 재수사는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검찰이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인 개별 사건에 대해 의견을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즉답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