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치된 정인이의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한형 기자
생후 16개월에 '외력에 의한 복부손상'으로 숨진 '정인이'의 양모는 "우리가 입양을 너무 쉽게 했다"며 입양을 후회하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모의 사랑은커녕 학대로 고통받던 정인이는 그렇게 스러졌다.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정인이의 양모는 입양준비 과정 중 정인이를 본 첫날, 입양을 결정했다. '입양 전제 가정위탁제'를 실시하면 양부모가 입양 전 일정 기간 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양부모가 이를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양부모는 충분한 상호작용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품에 안은 셈이다.
◇첫 만남에 덜컥 입양 결정…위탁도 거부하더니 "너무 쉽게 결정" 후회13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에 따르면 정인이의 양부모는 2019년 7월 26일 홀트아동복지회(홀트)로부터 입양대상 아동을 추천받았다. 이후 4일 뒤인 30일 일정 조율을 거쳐 같은해 8월 2일 정인이를 만났다.
문제는 정인이를 처음 만난 이른바 '아동 미팅날'에 이 아이를 바로 입양하겠다며 결연결정 소장을 접수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이다. 입양아동의 평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이지만, 교감을 위한 충분한 기회는 제공되지 않았다. 홀트는 이후 양부모의 요청을 받아들여 주말이 지난 8월 6일 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홀트는 지난 입장문에서 "양부모는 입양 신청일(2018년 7월 3일)로부터 친양자입양신고일(2020년 2월 3일)까지 여러 차례의 상담과 아동과의 첫 미팅을 포함하여 총 7회 만남을 가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첫 만남 이후 몇 차례 위탁모와 입양기관, 양부모와 정인이가 같이 만난 자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얼마만큼의 애착관계가 형성됐고, 상호작용이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정인이의 양부모는 '입양 전제 가정위탁제' 역시 거부했다.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뒤 양육을 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법원이 입양허가를 신청한 뒤 확정판결이 나기 전 양부모가 일정 기간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하는 해당 제도는 한국에서 선택 사항에 불과하다.
법원의 가사조사관이 2019년 11월 27일 양부모 가정방문을 진행했지만, 정인이와의 상호작용은 관찰할 수 없었다. 가정법원은 입양 허가를 심리할 때 입양기관에서 조사한 것과 마찬가지로 가사조사관의 면접조사, 가정방문 및 서류심사와 심리검사를 받도록 규정한다. 일종의 안전장치를 둔 것이지만, '정인이'의 사례에서는 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아이를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양부모는 아이를 입양한 뒤 "정이 안 붙어서 걱정"이라고 하거나 "우리가 입양을 너무 쉽게 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두고 간 선물과 메시지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애착 형성 위한 사전절차 필요…해외선 시범양육기간 두기도"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입양과정에서 상호작용을 관찰하고 애착과정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독일의 경우 '중단된 위탁이 좌초된 입양보다 낫다'는 인식 아래 민법상 입양아동이 '적절한 기간' 동안 예비 양부모와 함께 공동생활을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시범기간을 두는 것이 해당 아동의 복리를 보호할 수 있고 양부모와 아동 간 관계성을 예상해볼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태국에서도 아동을 입양하기 위해서는 시험위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신청인이 아동 입양에 적합한 것으로 판단되고 아동입양위원회가 입양을 승인하는 경우, 준거법에 따라 아동의 입양 등록이 신청된다.
영국은 입양기관에서 적합한 입양아동을 찾은 후 양부모가 될 자들이 법원에 입양허가를 신청하기 전 '최소 10주' 동안의 시험양육기간을 두도록 하고 있다.
한국에는 이와 유사한 제도로 '입양 전제 가정위탁제'가 있다. 하지만 입양특례법에 정식으로 규정된 절차가 아니므로 필수는 아니다.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태에서 입양기관 주도로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다.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노혜련 교수는 "입양전제 위탁은 이 가정이 일단 입양부모로서 적격인지, 아동을 잘 키울 수 있는지 등을 다각도로 조사교육한 뒤 승인이 된 다음에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그런 제도가 아예 없다"며 "관례상 입양기관들이 해온 건데 정인이 양부모 가정은 이걸 또 안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너무 쉽게, 준비과정이 철저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부모한테 (아이를) 한번 키워보게 하고 있다. 교육이나 준비과정이 부실한 상태에서 입양전제 위탁을 보내는 건 굉장히 위험하고 '은비 사건'이 그런 예"라며 "'우리가 입양하고 싶다' 하면 보내놓고 키워보다 '얘는 아닌 것 같아요' 하면 돌려보내 (아이가) 대구에 가게 된 거잖나"라고 지적했다.
'은비'(가명·당시 5세)는 위탁전제 가정을 전전하다 2번째 가정이 있는 대구에서 지난 2016년 숨졌다.
노 교수는 "입양부모의 적격성 여부가 공적으로 승인된 상태에서 입양전제 위탁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 대한) 검토가 보고서로 몇 차례 나와 법원에서 마지막 허가를 하는 방식이 된다면 훨씬 더 위험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보다 촘촘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신현영 의원은 "입양기관들이 순차적으로 (양부모를) 제대로 검증하고 (입양아와) 충분한 상호작용의 시기를 거쳐서 확신이 들었을 때 입양을 해야 하는데 빨리 매칭해서 졸속으로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처음 매칭 과정에서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입양 이후에도 아이나 부모가 행복할 수 있고, 안정감 있게 사후관리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 연합뉴스
◇"입양기관 외 제3자 검증 필요…국가 개입영역 넓혀야"이번 기회에 입양 자체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인이 사건' 역시 민간 입양기관에만 입양 절차 전반을 일임한, 국가의 '무책임' 탓이 가장 크다는 인식에서다.
입양아와 양부모 간 결연과정부터 법원의 최종 확정까지 홀트와 같은 입양기관이 내리는 판단이 가장 결정적인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판단이 '오판'일 경우 아동에게 돌아오는 피해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해외의 많은 선진국들이 입양절차를 국가 통제 아래 두는 공적 시스템을 마련해두고 있는 이유다.
지난 2018년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입양제도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대부분의 입양이 '아동청'(Jugendamt)이라는 일원화된 정부 기관을 통해 진행된다.
영국 역시 입양아동과 입양부모의 적격여부를 심사, 결연하는 업무는 공공기관인 지역입양기관(Regional Adoption Agency)에서 전담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지역 입양복지단체와 각 분야 입양 전문가들이 소속된 '전국입양 협회'(BAAF)가 입양과정의 객관성 담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도 '아동을 위한 사회원조서비스'(ASE)를 통해 입양아동의 위탁부터 입양, 학대·방임 예방조치 등을 두루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사법정책연구원 안문희 연구위원은 "입양기관에서 양친(養親)이 될 자에 대해 객관적 입장을 취하기는 어려운 일이므로 입양기관의 장(長)에게 조사 업무를 부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양친 될 자의 자격에 관한 부분은 입양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이러한 업무가 본질적으로 입양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에 맡겨져 있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전문가가 '좋은 부모고 좋은 가정이다'라고 (적격성을) 판정하면 입양이 진행되는 게 맞다. 아이를 대신해 부모를 골라주는 '스크리닝' 절차는 무척 중요하다 할 수 있다"며 "가정조사를 철저히 하는 게 중요한데 지금은 민간 입양기관에서 다 하고 있지 않나. 입양이란 절차 자체가 공공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건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입양기관의 조사결과가 법원까지 올라가게 돼 있는데 법원의 가정조사가 독립적으로 이뤄지게 하는 방안이 있다. 두 기관이 별도로 조사를 진행하고 가정법원 판사가 두 정보를 검토한 뒤 내용이 서로 너무 다르다면 세 번째로 다른 사람에게 가정조사를 하도록 해야 하지 않나 싶다"며 "아이를 대신해 부모를 결정해주는 절차는 강화할수록 좋다. 현행 절차에 소홀한 부분이 있다면 입양기관 외 '제3자'의 눈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양부모의 학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관리'라는 용어보다는 '지원'이라는 개념이 더 적절하다며, 국가의 개입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입양'과 '출산'을 너무 구분하고 있다. '아동학대를 할지 안할지' (양부모를) 감시하듯 하기보다는 지원한다는 마음으로 나서야 한다"며 "직접 낳지 않은 아이들은 더 학대할 거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깔려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참에 '입양'과 '출산'을 이분화하는 인식과 시스템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신 의원 또한 "입양을 민간기관에만 이양하면, 이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다. 나중에 들여다봐도 지적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입양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은 여러 가지다. '빅4'라고 하는 민간기관이 있으니 일부 영역을 지원하고 공적으로 모니터링을 할 수 있고, 제도적으로 협업이 된다면 그 모델도 지금으로서는 더 나아질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