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사학재단 교비 약 7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홍문종 전 의원이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박종민 기자
21.2.1 홍문종 전 자유한국당 의원 1심 선고 |
재판장 "피고인 홍문종은 뇌물수수죄에 대해 징역 1년, 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횡령, 범죄수익은닉, 범인도피교사죄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합니다. 공소사실 중 김성진, 김성회 등으로부터의 뇌물수수죄 등은 무죄입니다. 실형을 선고하되 도주의 우려가 없고 항소를 통한 다툴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는 차원에서 법정구속은 하지 않겠습니다." |
지난 1일 홍문종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1심 재판부는 총 징역 4년을 선고했습니다. 홍 전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던 사학재단 관련 범행(횡령‧범인도피교사)에 대해 징역 3년 그리고 국회의원 시절 뇌물수수 관련 혐의에 대해 징역 1년입니다.
낮지 않은 수위의 처벌이지만 앞서 검찰의 구형량(징역 9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의 형이 선고된 것인데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한 뇌물수수 공소사실 3개 중 2개가 무죄 판결이 났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홍 전 의원의 ①고급 리무진 차량을 제공받아 리스료 5천만원 상당 이익 수수 ②1천만원 상당의 공진단(고급 한약) 수수 ③현금 2천만원 수수 혐의 중 리무진 차량을 제공받은 혐의만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혐의 입증이 안 됐을 뿐이지 공소사실에 담긴 사실관계조차 '가볍지 않은 사안'임을 뜻하는 흔적들은 판결 곳곳에 담겨있는데요.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혹은 의원 출신이었던 이들이 스폰서를 자처한 사업가와 어떻게 어울렸는지가 자세히 드러납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21.2.1 홍문종 전 자유한국당 의원 1심 판결 中 |
김성회는 자신과 피고인(홍문종)이 공진단을 가져갔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달리 그 진술 내용을 의심할만한 객관적 사정이 없는 점, 참석자가 모두 있는 자리에서 김성회가 '의원님에게 더 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공진단을 더 받은 것이므로 이를 모두 김성회가 가져갔다고 보기는 곤란한 점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공진단을 가져갔다는 김성회의 진술은 신빙성이 인정된다. 다만 피고인이 공진단을 '두 상자' 가져갔다는 부분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이를 뒷받침하는 김성진의 진술은 믿기 어렵다 (중략) 피고인이 가져간 공진단은 한 상자였던 것으로 인정한다 |
공진단 혐의를 간단히 설명하면 2014년 7월 홍 전 의원이 IT 관계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단통법을 완화해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들었고 그 대가로 참석자 중 한 명인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에게 공진단 2박스(시가 약 1천만원)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홍 전 의원은 관련 법률 소관 상임위원회인 미래창조위원회의 위원장이었습니다.
김성진 대표는 평소 자신의 사업과 관련한 도움을 얻고자 관계자들에게 식사자리 접대나 금품을 거리낌 없이 제공하는 인물로 쉽게 말해 '스폰서'입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도 총 100만원 정도의 식사비용을 결제했습니다. 해당 자리에는 이들 외에도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과 김성회 당시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등도 참석했습니다.
김 대표는 다른 참석자들과 마찬가지로 홍 전 의원에게도 공진단을 주었다고 말했지만 홍 전 의원은 "받은 적이 없다"며 완강히 혐의를 부인해왔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재판부는 홍 전 의원이 공진단을 받은 것은 사실로 인정했습니다. 단 2박스는 아니고 1박스를 받았다고 말이죠.
결과적으로 유죄가 인정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공진단 수수에 대한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당시 자리에 직접적인 사업 관련 설명을 하며 부탁한 쪽은 김 대표가 아닌 임 전 고문 등 다른 IT 관계자들이며 김 대표가 자리 참석에 대한 선물격으로 준비한 공진단을 홍 전 의원이 '뇌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또한, 공진단 1박스가 500만원어치 상당으로 볼 근거가 이를 해당 가격에 구매했다는 김 대표의 진술 외에는 부족하다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뇌물로 인정되긴 증명이 부족했지만 '받은 적이 없다'던 홍 전 의원의 주장은 판결에 따르면 우선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난 셈입니다. 미창위 위원장이었던 홍 전 의원이 관련 법안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청탁의 목적이 뚜렷한 자리에 참석해 이처럼 어울린 것이 적절했는지는 차치하고 봐도 말이죠.
그래픽=고경민 기자
20.6.22 홍문종 전 자유한국당 의원 재판 증인신문 中 |
검사 "(김성회 전 사장이) '너 돈 얼마나 있냐' 이렇게 얘기를 꺼냈나요? 김성진 전 대표 "제가 명품 가방을 항상 들고 다녔는데요. 그걸 항상 제가 들고 다니니까 호기심이 있었나 봐요. 현금 좀 들고 다녔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돈 얼마나 있냐"고 하더라구요. 제가 천만원 정도 있어서 그렇게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검 "김 전 사장이 '천만원 한번 꺼내 봐라' 이렇게 얘기한 게 맞아요? 김 전 대표 "네네. 잘 지내고 싶어서 테이블 위에 꺼내놨어요. 검 "직접 드리지는 않았나요?" 김 전 대표 "네. 김 전 사장이 테이블 위의 돈을 자기 자리로 손을 끌어안듯이 가져갔습니다. 검 "유흥업소에서 날 접대한 것으로 쳐라" 그렇게도 얘기했었나요? 김 전 대표 "네" |
이번에는 현금 수수 혐의를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돈이 출발한 곳은 김 대표로 동일하지만 여기서는 중간다리 역할로 또다른 전직 국회의원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데요. 아까 공진단 사건에서 잠깐 언급된 한나라당 의원 출신 김성회 전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입니다.
김 대표는 2015년 11월 자신이 대표로 있던 아이카이스트의 영국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영국 증권사로부터 "한국 정부의 공인된 사람이 해당 사업을 지원하고 있음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됩니다.
이에 미래창조위 위원장이었던 홍 전 의원과의 인터뷰를 하고 싶어했는데 직접 요청할 정도 사이는 아니라 평소 친분이 있고 홍 전 의원과도 가까웠던 김 전 사장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11월 20일경 강남의 한 호텔에서 둘은 만났고 김 전 사장은 그 자리에서 홍 전 의원에게 전화해 "도와주자", "도움을 주면 잊지 않고 보답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홍 전 의원은 같은달 23일 영국 실사단과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단순 친분과 호의로 진행된 인터뷰라면 별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전‧후로 각각 천만원씩 총 2천만원의 '검은 돈'이 오가는데요. 김 대표의 법정진술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의 금품 요구는 매우 노골적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김 전 사장이 첫 번째 호텔에서 만났을 때는 "너 돈 얼마 있냐" "유흥업소에서 나를 접대한 것으로 쳐라"며 현금을 받아갔고 이어 인터뷰 후인 12월에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나 "나를 모시는 게 (홍)문종이형을 모시는 것이라고 봐도 된다"며 또 다시 현금을 챙겼다고 증언했습니다.
재판부 또한, "김 전 사장의 적극적인 요구로 인하여 김 대표가 두 번에 걸쳐 1천만원씩 건넸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김 전 사장은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돈은 홍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는데요. 김 대표 또한, "김 전 사장이 홍 전 의원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라고 해서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며 사실상 홍 전 의원에게 갈 돈으로 생각했다는 진술을 했습니다. 검찰도 이러한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2천만원의 목적지는 홍 전 의원으로 보고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심리 결과, 이 돈이 홍 전 의원에게까지 흘렀다고 보기에는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는데요. 뇌물 범죄의 특성상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신빙성 다툼이 쟁점인데 유일한 증거인 김 전 사장의 진술이 다각도로 따져봤을 때 혐의가 증명될 정도로 믿을만하지는 않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면서 "김 전 사장이 돈을 가로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속칭 '배달 사고' 가능성을 열어놨습니다.
요약하면 '공진단 수수'와 관련해서는 홍 전 의원이 일부 받은 것이 인정됐고 현금 수수 의혹에 대해서는 김 대표의 요청으로 홍 전 의원이 인터뷰를 해주고 이 과정에서 최소 김 전 사장이 돈을 챙긴 점은 사실로 드러난 셈입니다.
이 사건 피고인이 아니란 이유로(김성회 전 사장) 혹은 유죄를 선고하기에는 입증이 부족해 처벌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만 놓고 봐도 우리가 기대하는 국민의 대표로서의 '국회의원'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습들입니다.
이 사건을 "황당한 (검찰의) 창작극"이라고 정의한 홍 전 의원은 "억울하고 부당하다"며 즉각 항소했는데요. 검찰도 1심 처벌이 가볍다는 이유로 뒤이어 항소를 결정한 만큼 2심에서 이 행위들에 대해 어떤 판단이 나올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