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 윤창원 기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2일 이른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과 관련해 최근 검찰 수뇌부가 내린 '불기소 결론'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다만 결론이 도출된 과정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치는 한편, 이 사건 수사부터 의사결정 과정까지 전반을 감찰하라고 지시했다.
불기소 결론에 따라 추가 수사와 처벌은 사실상 불가하지만 감찰을 통해 수사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실질적으론 검찰의 판단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모양새다. 박 장관으로선 검찰과 여권 강경파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난감한 상황에서 절충안을 내놨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정치적 지시"라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朴 "절차적 정의 의심받게 돼 유감"…'檢 결론' 뒤집진 않아
황진환 기자
박 장관은 대검 부장·고검장 확대회의에서 압도적 표차로 '불기소 결론'이 내려진지 사흘 만인 이날 입장문을 통해 회의 절차를 비판했다. 결론을 부정하는 발언은 없었다. 법무부 관계자도 재수사 지휘는 없다고 설명했다. 확대회의의 의사결정 과정이 합리적인진 의문이지만 일단 받아들이겠다는 '비판적 수용' 입장이다.
박 장관은 입장문에서 기존 대검의 무혐의 결론의 적정성을 심의하는 확대회의 자리에 모해위증 교사 의혹을 받는 검사가 직접 참석한 점, 회의 결과가 언론을 통해 유출된 점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예고도 없이 사건의 여러 관계자들 가운데 일부만 출석한 점은 회의 성격과도 맞지 않을 뿐더러 공정성 논란을 부를 여지가 있고, 비공개 논의 내용이 외부로 유출된 점도 그 의도를 의심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검찰 고위직 회의(확대회의)에서 절차적 정의를 기하라는 수사지휘권 행사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라며 "절차적 정의가 문제됐던 의혹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절차적 정의가 의심받게 돼 크게 유감"이라고 했다.
어쨌든 박 장관이 검찰의 결론을 수정하진 않으면서 22일 자정을 기해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이 사건은 논란과 정황만 무성한 의혹으로 남게됐다. 박 장관은 "수사지휘권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보충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절차 위주의 문제제기 배경을 설명했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박 장관으로서도 책임을 지고 적극적 지휘를 할 만한 확신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물음표가 나온다.
◇'비판적 수용'하며 감찰카드…"박범계 딜레마 상황 반영" 평가도
황진환 기자
이처럼 박 장관은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에서 거리를 두면서도 법무부와 대검에 '광범위 합동감찰'을 지시했다. 그는 "최초 사건조사 과정에서 검찰의 직접수사 관행이 부적절했다는 단면이 드러났다"며 "이번 사안에서 드러난 검찰 직접수사와 관련한 각종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하여 실효적 제도개선 방안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리적으로 이번 사건 재소자와 검찰 수사팀의 범죄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 정황 증거와 증언은 존재하는 만큼 감찰로 따져본 뒤 이를 토대로 검찰 수사 관행을 고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박 장관이 밝힌 감찰 대상은 △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확인된 인권침해적 수사방식 △수용자에게 편의제공 및 정보원으로 활용한 정황 △불투명한 사건관계인 소환조사 정황 △이 사건 민원접수부터 대검의 무혐의 취지 결정까지 상당히 광범위 하다. 특히 대검 확대 회의 내용의 언론유출 경위도 포함됐다.
결과적으로 검찰 의견을 완전히 배척하지도, 그대로 수용하지도 않은 박 장관의 이번 입장 표명을 놓고 검찰과 여권 강경파 사이에서 고심한 산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 결론을 뒤집을 경우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고, 결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여권 내부 불만도 만만치 않을 것이므로 이를 진화하는 차원에서 감찰 카드를 꺼내든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