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합니다.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오늘도 일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쉼없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터를 찾은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판깔아봅니다. [편집자 주]
연합뉴스
정부가 필수노동자를 대상으로 건강진단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자칫 허술한 건강검진은 물론 부실검진기관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택배기사, 배달종사자, 대리운전기사와 2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에게 건강진단을 지원하겠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코로나19 사태 속에도 일손을 놓지 못하는 필수노동자를 위해 건강진단비용(약 7만 1천원)의 80%는 정부가 지원하고, 나머지 20%를 사업주가 부담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노동·의료 현장에서는 건강진단을 실시하기 전부터 부실 진단에 대한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20% 비용 사업주 부담, 건강검진 발목 잡을라…"소형 사업장은 전액 지원해야"
황진환 기자
우선 20%의 비용조차 부담스러운 사업주들이 검진 자체를 거부하거나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업은 건강검진을 '지원'하는 형태여서 만약 사업주가 이를 거부하거나 노동시간을 배분할 때 검진 시간을 배려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제대로 검진을 받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노조가 있는 대형사업장은 노조가 사업주에게 건강진단을 적극 요구할 수 있지만, 소규모 사업장은 사업주의 '선의'(善意)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기존의 배치전건강진단 및 특수건강진단에서는 정부가 2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건강진단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건강디딤돌 사업'을 실시해 왔는데, 이번에는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정부가 80%만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법으로 규정한 건강진단이 아니다 보니, 한정된 기존 예산으로 다수의 사업장 노동자에게 건강진단을 제공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성선병원 박승권 직업환경의학센터 진료과장은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며 소규모 사업장은 진단비용을 전액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주 눈치 보는 부실기관에 일감 몰릴 것…비용부담 리베이트 우려도"
스마트이미지 제공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 노동자들이 검진을 받을 기관을 선정하다 보니 검진기관들이 일거리를 손에 쥔 사업주 입맛에 맞게 부실 검진을 벌이는 경우도 잦다.
정부가 특수검진기관을 상대로 종합평가를 실시하고 있지만, 최하위등급을 받아도 번번이 행정지도 및 교육 처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금속노조 박세민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그동안의 특수건강진단 사례를 보면 작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가 단독으로 문진하는 등 명확한 자격요건 위반 사례는 처벌되지만, 부실검진은 잡아내기 어려워 묻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박세민 노안실장은 "노동자를 불러놓고 무슨 업무를 맡았는지도 묻지 않은 채 '어디가 아프냐' 한 마디 묻고 끝내는 식으로 200인 사업장을 5, 6시간 만에 마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며 "난청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작업연관성을 파헤치는 대신 무조건 개인지병으로 넘기기도 하고, 예비조사나 사후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사업주의 20% 비용부담은 오히려 부실검진기관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부실검진기관이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돌려주는 대신 일감을 몰아받는 '리베이트'를 벌일 수 있다는 우려다.
박승권 진료과장은 "사업주로서는 한푼이라도 깎아주는 기관을 고르기 마련이고, 극단적인 경우 20% 사업주 부담비용을 몰래 돌려주는 기관이 나올 수 있다"며 "자연히 검진도, 비용도 사업주 입맛에 맞춰주는 부실 기관에 검진 물량이 몰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세민 노안실장은 "이미 돈이 되는 작업환경측정이나 특수건강검진 일감을 던져주면, 본래 사업주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위험성평가나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공짜로 해주겠다는 식으로 거래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했다.
◇택배 과로사 논란에 급조된 대책…건강검진에만 머물지 않고 근본 대책 추진해야
택배기사·배달종사자·대리운전자 노출평가 문진지. 기존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 문진지를 재활용한 바람에 야간작업이 없으면 근무형태, 1주 평균 노동시간과 같은 기본 정보도 답변하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이번 필수노동자 대책이 급조된 대책이다보니 곳곳에 헛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위기 사태 속에 처음으로 필수노동자 보호대책을 준비하던 와중에, 지난해 가을 택배기사 과로사 논란이 불거지고 택배파업 위기로 번지자 정부도 서둘러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던 터였다.
당장 이번 대책이 얼마나 급히 마련됐는지는 건강검진을 할 때 택배기사·배달종사자·대리운전자들의 기본 정보를 적는 '노출평가 문진지'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기존의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 문진지를 이번 필수노동자 건강검진에서 재사용한 바람에, '야간작업'을 하지 않는 노동자는 근무형태나 노동시간 같은 기본 정보를 적지 않아도 된다는 안내문구까지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필수노동자 보호대책이 급조 대책에 머물지 않고 필수노동자들의 과로를 막을 근본적인 해법으로 이어지도록 추가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대목동병원 김현주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필수노동자의 핵심건강문제인 과로에 대한 대안을 함께 마련하기 위해 기존 야간특검 노출평가를 재활용한 문진지가 아니라 과로 실태를 확인하는 문진이 필요하다"며 "이 결과를 별도로 받아 과로실태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돼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박세민 노안실장은 "노조 등이 샘플 집단을 추가로 검진해 별도 분석한 뒤 결과를 비교하자"며 "예를 들어 같은 공정의 비슷한 조건의 노동자인데 검진 결과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나면 부실 검진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대표는 "근본적으로 건강검진 자체만으로는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고, 정부의 생색내기용 대책에 가깝다고 본다"며 "이번에 주목받은 과로나 야간노동, 근골격계 부담작업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