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의 한 병원에서 환자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임민정 수습기자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폐기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건소와 위탁의료기관은 예비명단에 없더라도 백신이 남으면 현장 신청을 받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에 예비명단 작성에 제한이 없는 위탁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백신 예비 명단에 올려달라"는 전화와 방문이 폭주하고 있다.
백신 수급이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만큼 정부는 나이나 직업별로 우선순위를 정해 백신을 순차 접종하고 있다. 하지만 '노쇼(no-show·예약 불이행)'나 '예약 변경, 취소'가 발생하면 문제가 생긴다.
정부는 이 경우 접종기관별로 예비명단을 작성해 활용하도록 했다. 특히 위탁의료기관은 보건소나 예방접종센터와 달리 예비명단 작성에 별도의 기준이 없다. 30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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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예비명단 대상자들이 적정 시간 내에 연락이 닿지 않거나 접종을 하러 오기 힘들 경우, 백신이 그대로 폐기되는 경우가 생겼다. AZ나 화이자의 경우 개봉 시 6시간 이내에 사용해야만 한다. 이에 정부는 현장에서 남는 백신은 즉석에서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접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지난달 30일 CBS노컷뉴스가 강남·강동 일대의 위탁의료기관 11곳, 종로구 일대의 위탁의료기관 11곳을 확인해보니 대부분 "현장 접수 허가 이후, 접종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답했다.
종로구의 한 병원 앞에 코로나19 백신 '예비 대상자' 등록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정록 수습기자
종로구의 A병원은 "최근 언론에서 관련 보도가 난 이후 병원이 완전 콜센터가 됐다. 어제만 200~300명의 문의 전화가 왔다"며 "그만큼 예비신청이 많다. 현재는 명단이 꽉 찬 상태"라고 밝혔다.
강남구의 B병원은 "30대 희망자 연락도 어제 오전부터 많이 늘었다. 그전에는 전화가 하루에 10통 정도 왔는데 어제만 250명의 전화를 받은 것 같다"며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분들은 여러 병원에 이름을 중복으로 올리는 경우가 많다. 여분이 생기더라도 명단을 체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토로했다.
다만 현장에서 노쇼나 당일 예약 취소 건수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하루 기준 노쇼 인원이 거의 없거나 많아야 3~4명 뿐이기 때문이다. 강동구의 한 병원만 예약 변경이나 취소 건수가 5~6명에 달한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는 예비명단 접종대상자를 만나기보다는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기 훨씬 쉬웠다.
종로구의 한 병원에서 예비명단 대상자로 접종을 한 임모(58)씨는 "예비대상자로 명단을 올린 뒤 맞기까지 12일 정도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접종을 한 이유에 대해 "백신도 부족한데 일정을 어긴 사람들 때문에 폐기되는 것도 많다고 하고,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일찍 맞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병원을 찾은 류모(47)씨는 "직업이 영업직이다 보니 백신 접종을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접종 대상자가 아닌데도) 이렇게 맞을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가 검색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45)씨도 "나이가 어려 주변에 아직 백신을 맞은 사람은 없다. 사전예약 시스템 사이트에서 병원 이름을 검색하고 찾아왔다"며 "대기인원이 줄어서 빨리 맞게 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백신 수급이 제한된 점과 앞으로 백신 접종이 확대되는 점을 고려할 때 '백신 낭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예비접종을 받은 인원에 대한 정확한 통계치는 없다. 다만,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이 지난 30일 집계한 2분기 접종대상별 접종현황 중 '기타대상자'로 분류된 2만 1537명을 통해 대략적인 추산은 가능하다.
지난 19일부터 29까지의 접종자 누적치로 '예비 명단 등'이 포함된 수치로, 위탁의료기관에서 사전예약을 통해 AZ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주말을 제외하면 일평균 2300∼2400명이 노쇼 백신을 접종받은 셈이다. 지난 28일과 29일의 기타대상자 접종자는 각각 3211명, 5015명에 달했다.
여기에 현재 백신을 접종하는 위탁의료기관이 현재 약 2천개에서 5월 말에는 1만4천여곳으로 늘어날 예정이라는 점도 있다. 각 의료기관에서 1~2명의 예약 노쇼가 발생해도 산술적으로 1만명분 이상의 백신이 폐기될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박종민 기자
한편, 일선에서는 AZ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남아있는 만큼 '현장 접종'이 녹록지 않다는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병원 관계자는 "지난번에 백신을 폐기하기 아까워 환자에게 접종을 하시겠냐고 물었는데, 왜 '영업을 하시냐'고 화를 내셨다"며 "환자분들에게 홍보가 덜 되어서 생긴 일인데, 그런 반응이 나오면 의료진 입장에서도 물어보기가 두렵다"고 토로했다.
강동구의 D병원 관계자는 "백신 노쇼가 2명 있어서 병원에 계신 환자 중에 맞을 의향이 있는 사람 물어봤지만, 당황하셨는지 아무도 맞지 않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