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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들기]'아이돌학교' 조작 사태…'유죄' 판결문 보니



문화 일반

    [파고들기]'아이돌학교' 조작 사태…'유죄' 판결문 보니

    김모 CP 징역 1년-김모 국장 1천만 원 벌금형
    총 11회 중 첫 회 제외 2~11회 투표 조작
    사전 공지된 점수 부여 방식 자의로 변경해 온라인 투표에 1표당 5점 부여했다고 주장
    가중치 반영한 방식으로 순위 매기지도 않아
    최종회 당시 1위였던 이해인, 데뷔조 이미지와 안 맞는다고 탈락 시켜
    검찰·피고인 2인 모두 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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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들이 대금을 지불하며 원하는 출연자에게 문자투표를 하더라도 피해자들이 투표한 내용에 따라 출연자들의 순위를 결정하고 데뷔 멤버를 정할 의사가 없었다."

    서울중앙지법(이원중 부장판사)은 엠넷 '아이돌학교' 제작진이 2회부터 최종회인 11회까지 투표 결과를 조작해, 시청자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데뷔 멤버를 정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지난 10일 열린 1심에서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모 CP에게 징역 1년을, 업무방해 및 사기 방조 혐의를 받은 김모 기획제작국장에게 1천만 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아이돌학교'는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의 시즌 1, 2를 성공적으로 마친 엠넷이 야심 차게 준비한 새로운 걸그룹 육성 프로그램으로 방송 전부터 주목도가 높았다. 하지만 지난 2019년 '프로듀스' 시리즈와 함께 조작 의혹이 제기됐고, 시청자들로 구성된 '아이돌학교 진상규명위원회'가 제작진을 고소·고발해 수사한 결과 투표 조작은 사실로 드러났다.

    CBS노컷뉴스는 '아이돌학교' 조작 사태 관련 1심 판결문을 입수·분석했다. 회차별로 어떤 방식으로 조작이 이루어져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 김 CP와 김 국장이 주장한 바를 재판부는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정리해 보았다.

    지난 2017년 7월부터 9월까지 방송한 엠넷 '아이돌학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너희들은 모두 예쁘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연습생과 연예인 지망생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서바이벌 오디션이었다. 지원자들은 데뷔까지 걸리는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11주 동안 '단기 집중 맞춤형 수업'을 받고, '프로듀스 101'과 마찬가지로 시청자 투표(온라인 사전 투표+생방송 문자 투표)로 최종 순위를 결정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제작진은 엠넷 자체 심사였던 개별 오디션을 통해 40명, 1800명이 참가한 공개 오디션을 통해 1명 등 총 41명의 출연자를 선정했고 1명이 퇴소해 투표가 적용되는 2회부터는 총 40명으로 진행했다.

    '육성회원'이라고 불리는 시청자와 방청객이 자신이 데뷔시키고 싶어 하는 출연자에게 회차별(1~11회)로 온라인 사전 투표 및 생방송 문자 투표를 하면 이에 따라 순위를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4회에서 32명, 6회에서 28명, 9회에서 18명을 각 방송 회차 투표 결과에 따라 다음 회차 진출자로 선발하고 최종회인 11회에서 9명을 데뷔 멤버로 선발한다는 내용이었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국민 프로듀서'와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이 직접 데뷔 멤버를 뽑는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실상 2회부터 11회까지 조작이 일어났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김 CP가 △2회 때 40명 중 33명 △4회 때 40명 중 39명 △5회 때 32명 중 26명 △6회 때 32명 중 27명 △7회 때 28명 중 21명 △8회 때 28명 중 27명 △9회 때 28명 중 26명 △10회 때 18명 중 17명 △11회 때 18명 중 17명 순위를 임의 조작해 위계로써 '아이돌학교' 방송 제작과 아이돌 그룹 멤버 선발·데뷔·육성에 관한 업무를 방해했다고 명시했다.

    조작 방식은 사전 온라인 투표와 생방송 유료 문자 투표 결과에 손대는 것이었다. 4회(데뷔능력고사), 6회(중간고사), 9회(학기말고사) 때는 순위상승권 반영 결과도 조작했다. 순위상승권이란 조별 미션에 대한 방청객 투표를 통해 우승팀 또는 팀원에게 1단계 내지 6단계 순위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아이돌학교' 신입생 모집 홍보 영상 캡처

     

    판결문에 나타난 조작 관련 언급
    "32위 안에 진입한 출연자 A, B, C를 순위 32위 밖으로 내리고 (…) 실제 32위 밖으로 탈락하여야 하는 출연자 D, E, F를 이후 진행된 방송에 출연하게 하였다" _ 4회 방송 투표 결과 조작 관련

    "28위 안에 진입한 출연자 G, H를 28위 밖으로 내리고 (…) 실제 28위 밖으로 탈락하여야 하는 출연자 I, J를 이후 진행된 방송에 출연하게 하였다" _ 6회 방송 투표 결과 조작 관련

    "18위 안에 진입한 출연자 K, L을 순위 18위 밖으로 내리고, (…) 실제 18위 밖으로 탈락하여야 하는 출연자 M, N을 방송에 출연하게 하였다" _ 9회 방송 투표 결과 조작 관련

    "9위 안에 진입한 출연자 O, P, Q를 순위 9위 밖으로 내리고, (…) 실제 9위 밖으로 탈락하여야 하는 출연자 R, S, T를 최종 데뷔조인 걸그룹으로 활동, 관리하게 하였다"_ 11회 방송 투표 결과 조작 관련

    재판부는 김 CP가 2017년 9월 22일부터 9월 29일 사이 김 국장에게 생방송 출연자 중 그동안 투표 결과 순위 상위권에 있던 O(이해인)가 최종 데뷔조 멤버로 선발될 경우 '아이돌학교' 프로그램 방영 및 걸그룹 데뷔의 기획의도와 맞지 않아 그룹 멤버로서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최종 데뷔조 선발 순위 9위에서 탈락시키자고 제안한 점, 김 국장이 이를 승낙한 점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투표 참여한 시청자)들에게 '시청자들이 투표한 사전 온라인투표와 생방송 중 진행되는 100원의 유료 문자투표 점수를 통해 시청자들이 원하는 출연자를 직접 아이돌 멤버로 선정 ·데뷔시킬 수 있다'는 취지로 유료 문자투표를 유도하며 거짓말을 하였다"라면서 "사실 피고인은 방송 2~10회 기간 시청자 투표수와 무관하게 임의로 순위를 조작할 생각이었으므로, 피해자들이 대금을 지불하며 원하는 출연자에게 문자투표를 하더라도 피해자들이 투표한 내용에 따라 출연자들의 순위를 결정하고 데뷔 멤버를 정할 의사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김 CP)은 위 B(김 국장)의 승낙을 받아 방송 11회 시청자 투표수와 무관하게 출연자 O를 최종 데뷔조 순위 9위에서 탈락시키는 등 임의로 순위를 조작할 생각이었으므로, 피해자들이 대금을 지불하며 원하는 출연자에게 문자투표를 하더라도 피해자들이 투표한 내용에 따라 출연자들의 순위를 결정하고 데뷔 멤버를 정할 의사가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판결문에 기재된 '아이돌학교' 2~10회 기간 투표 참여자 수는 6만 9996명, 투표 횟수는 21만 8750회이며 최종회 투표 참여자 수는 3만 4543명, 투표 횟수는 6만 3480회이다. 재판부는 CJ ENM이 △2~10회 당시 2187만 5천원 중 수수료 등을 뺀 정산 수익금 1053만 1148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 △11회 당시 634만 8천원 중 수수료 등을 뺀 정산 수익금 305만 6079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고 봤다.

    김 CP는 업무방해 혐의에 관해서는 "문자 투표의 수가 적고 온라인 투표 비율이 높아 출연자의 가족 등 일부 사람에 의해 그 결과가 왜곡될 수 있어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사전 온라인 투표에 5배 가중치를 반영해 순위를 결정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회사에 이익을 주고자 한 것으로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선발된 아이돌 멤버의 데뷔와 육성할 업무까지 방해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기 혐의에 관해서는 실제 투표 결과에 따라 순위에 오른 출연자가 있고, 최종 데뷔조에도 시청자들의 투표 결과가 실제 반영됐다는 점을 근거로 사기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 투표에 5배 가중치를 준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점을 곧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폈다.

    하지만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와 사실, 사정 등을 종합했을 때 김 CP의 업무방해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게 재판부 입장이다. 우선 '아이돌학교'의 업무는 김 CP가 맡은 프로그램 방송 제작·송출뿐 아니라 방송 후 데뷔 아이돌 그룹 육성·활동 지원까지 연계되는 업무라고 봤다.

    또한 재판부는 이미 공지된 온라인 투표(1표당 1점), 생방송 유료 문자 투표(1표당 10점)와 달리 온라인 투표에 5배의 가중치를 점수에 반영한 것을 "시청자들 모르게" 했고, 온라인 투표에 가중치를 둔 결과대로 순위를 정하지도 않았으며, 임의로 순위를 조작해 이 사실을 모르는 방송 관여자들이 조작된 순위대로 방송하도록 한 것을 지적했다.

    김 CP의 행위를 "방송 제작 및 아이돌 그룹 멤버 선발, 데뷔 및 육성에 관한 업무담당자들의 오인, 착각, 부지를 이용해 피해자 회사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언급한 재판부는 회사에 이익을 주고자 했다는 주장을 두고도 "위법한 경우까지 회사가 용인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더불어, 투표 결과 순위 조작 행위는 CJ ENM 업무 적정성과 공정성을 손상했고, 김 CP 역시 결과의 위험성을 인식했다고 할 것이어서 업무방해의 '고의'를 충분히 인정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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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 혐의와 관련해서는 점수 산정 방식 변경 내용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김 CP에게 있었고, 시청자들이 순위를 임의로 조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유료 문자 투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기에 김 CP의 기망행위를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유료 문자 투표 피해자들의 투표 결과가 데뷔조 선발에 일부 반영됐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설명도 붙었다.

    이번 판결문에는 '아이돌학교'에서 꾸준히 높은 순위를 유지한 출연자 O(이해인)가 어떤 과정으로 떨어지게 됐는지 그 내용도 포함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 CP는 △김 국장이 4회 때 전화로, 5~6회 때 본부장 회의실에서 순위 조작했는지 물었을 때 인정하는 답변을 했고 △7~8회 때 'O가 데뷔조 가능성이 있는 출연자들과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으며 △10회와 11회 사이 AD 7층 회의실에서 'O를 떨어뜨리는 방향이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냈고 △11회 당일에는 'O가 지금까지 1등입니다. 진짜 떨어뜨리는 것이 맞겠죠'라고 물었을 때 '응 그렇게 하자'는 김 국장 대답에 따라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하며 O를 탈락시켰다.

    재판부는 "기획, 제작, 방송 전체 과정에서 수시로 만나 회의를 하거나 시청률 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였던 관계였다는 사정"을 근거로, 김 CP의 진술이 일관된다고 봤다. O를 탈락시키는 결정을 할 때 상급자인 김 국장에게 보고하고 승낙받았다는 내용이 구체적이고, 허위 진술을 할 만한 사정이 없기에 진술 신빙성도 높다고 봤다.

    김 국장의 업무방해죄 및 사기방조죄 성립 여부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김 CP가 탈락자와 데뷔조를 선발할 때 순위를 임의 조작하는 것을 김 국장이 알고 있었고, 11회 최종회 방송 전에는 순위 1등이었던 O를 탈락시키겠다는 말을 듣고 승낙했기에 "자신의 행위가 이 사건 업무방해 및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아이돌학교' 투표 조작 사건으로 △시청자 투표로 순위 정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적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고 △시청자 신뢰를 크게 손상하고 시청자를 우롱하는 결과가 초래됐으며 △탈락자들에게 방송에 출연하고 정식 데뷔할 기회 또한 부당하게 박탈했다고 판결했다.

    김 CP에 관해서는 "이 사건 범행 전체를 주도했고 이 사건 범행 횟수와 범행 기간, 가담 정도 등에 비추어 비난 가능성이 가장 크다"라고, 김 국장에 관해서는 김 CP의 상급 관리자로서 "순위 조작 행위를 알고도 이를 제지하지 아니하고 승낙해 비난받아 마땅하다"라고 명시했다.

    한편,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 15일 항소장을 냈다. 김 CP와 김 국장의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도 16일 각각 항소장을 제출했다.

    '파고들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 깊숙한 곳까지 취재한 결과물을 펼치는 코너입니다. 간단명료한 코너명에는 기교나 구실 없이 바르고 곧게 파고들 의지와 용기를 담았습니다. 독자들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통찰을 길어 올리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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