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입원 필요하지만 "병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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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해. 조현병 증세가 있는 A씨는 자살소동을 여러 번 벌였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모텔에 머물고 있던 A씨. 그는 에어컨이 고장 났단 이유로 블라인드를 부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 경찰이 출동했고 재물손괴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하지만 조사만 받고 나와서 거리를 누볐다. 행인을 위협한단 신고도 여러 번 들어왔다. 자·타해 위험성도 있고 급박성도 있었지만 A씨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기란 어려웠다. 결국 그는 서울에서 병상을 찾지 못해 경기도 과천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2 타해. 조현병 등 정신질환은 조기 진단·치료가 중요하다. 지난 4월 경기 남양주에서 조현병을 앓던 20대 남성이 60대 아버지를 살해한 이른바 '남양주 존속 살인' 사건이 그 예다. 남성은 보호자가 있어 응급입원 대상은 아니었지만, 조현병을 방치하면 참극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정신질환자가 자·타해 위험이 있고 상황이 급박할 경우 경찰관과 의사 진단을 받아 병원에 '응급 입원'을 시킬 수 있다. 중증정신질환자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를 돕고, 정신질환자로 인한 범죄를 막기 위해서다.
지난 7월부터 정부는 행정입원과 응급입원 시 소득 요건에 관계없이 본인부담금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응급입원을 위한 병상을 찾는 것조차 어렵다.
CBS노컷뉴스가 3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실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서울 관내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은 29곳이다. 30일 오후 8시쯤 서울 관내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에 전화를 돌려 입원 가능여부를 물었다.
그 결과, '병상이 없다'고 한 병원은 10곳. '밤에는 응급입원이 어렵다'고 한 병원은 7곳이었다. 야간 입원을 거부한 병원들은 "병상이 있어도 PCR검사 결과, 음성을 받아야 입원할 수 있다"고 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등 병원 3곳은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 지정돼 입원이 어려웠다. '병상 파악이 안 된다, 상태를 봐야 한다'는 등 기타 사유를 말한 병원은 4곳이었다. 5곳은 연락이 닿질 않았다.
이한형 기자'병상이 없다'고 답한 병원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시설 기준이 강화돼 입원실 당 병상 수가 40%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나 소방에서 요청해도 병상이 없어 입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얼마 전엔 강원도 인제에서 '응급입원'이 가능하냐는 연락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야간에 응급입원이 어려운 이유도 입원하려면 서류 준비가 필요한데, 야간엔 서류 준비가 어렵다. 일례로 의정부쪽 병원에서 서류를 확인 안 하고 환자를 입원시켰다가 기소당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2016년 10월 의정부지검이 입원 당일 서류 미비 등 절차 위반을 이유로 정신과 의사 50여 명을 무더기 기소한 적이 있다.
일선 경찰관들은 "서울 시내 전체 병원에 전화 돌려봐라. 다들 '베드(병상)'가 없다고 한다. 주말엔 전화 연결도 잘 안 된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형사들이 사건을 해야 하는데 병상 찾느라 몇 시간 동안 얽혀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2020년 발간한 '국내 조현병 환자의 현황과 적정 치료를 위한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치료비용 증가뿐 아니라 응급상황이나 사건·사고 발생으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실제 전문가들은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 '남양주 친부 살인 사건' 등이 정신질환자의 치료 시기를 놓친 탓이라고 지적한다.
경찰이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치안 공백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서초구의 한 파출소장은 "얼마 전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5,6시간 전화를 돌렸다"며 "겨우 찾은 곳이 은평구에 있는 병원이라 순찰차로 동행했다."고 했다. 경찰이 서초구에서 은구평을 오갈 2시간 동안 관내를 살필 순찰차와 인력이 빠진 셈이다.
코로나19로 협력 병원 줄어…병상 부족
이한형 기자문제는 코로나19로 응급입원이 더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 관계자는 "작년 코로나19가 터지면서부터 꼬박 2년째 응급입원 환자를 못 받고 있다. 코로나 환자만 받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의료원 이해우 교수는 "모든 의료기관이 코로나 때문에 난리"라며 "국립정신병원과 국공립종합병원이 코로나19 확진자 진료를 위한 감염전담병원 역할을 하는 게 이유"라고 지적했다. 서울의료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가 지난 5월부터 일반 환자를 받고 있다.
2019년 주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안인득 사건 이후 보건복지부는 241개 시·군·구에 '정신응급 대응 협의체'를 구성했다. 분기별로 협의체를 1회 이상 운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코로나19로 대면 회의가 어려워졌다. 지난 5월 기준 회의체는 166회 운영됐다.
게다가 지난 3월부터 감염병 대응을 위해 병상 간 거리를 0.5m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됐다. 이로 인해 정신의료기관의 입원실당 병상은 최대 10병상에서 6병상 이하로 줄었다.
겨우 병상을 찾아도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입원이 어렵다. 한 중증정신질환자 가족은 "바로 입원이 안 돼 PCR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하루 이틀을 집에서 데리고 있었다. 급성기 땐 제어가 안 될 때가 많은데 두려웠다"고 했다.
정신질환 외에 신체질환까지 있으면 입원은 더욱 힘들다. 중증정신질환자였던 B씨가 그랬다. 그는 전문의 면담에서 입원치료 필요가 있지만 입원이 어렵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통보를 받았다. 당시 함께한 경찰은 "B씨의 보행이 불안정해 못 받아준다 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B씨는 서울에서 입원 병상을 찾지 못해 경기도 일산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현재 서울 관내에서 신체질환과 정신과적 증상을 함께 치료할 수 있는 곳은 보라매 병원과 서울 의료원 정도다.
서울대 권준수 정신건강의학과교수는 "입원 병실을 못 찾는 건 문제다. 정신병동도 24시간 응급 정신환자를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 어떤 병원에 (병상이) 몇 자리 비어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며 "한 때 시범사업을 했는데, 코로나로 흐지부지 됐다"고 지적했다.
응급입원은 72시간만 가능하다. 그 이후엔 퇴원 절차를 밟든지, 전문의 판단에 따라 장기간 입원이 가능한 행정입원으로 전환된다. 전문가들은 퇴원 후에도 지역 사회 케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권 교수는 "입원 치료가 끝났으면 재활 치료도 필요하다. 단계별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데 그 시스템이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