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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니까' 1인시위도 금지?…"법원이 굳건했더라면"

법조

    '코로나니까' 1인시위도 금지?…"법원이 굳건했더라면"

    편집자 주

    코로나19로 숨죽여야 했던 기본권들 중 하나가 바로 집회·시위의 권리(집시권)입니다. 누군가는 생업을 잇지 못해 죽어가는 마당에 '그깟 집회를 못한 게 대수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집회야 말로 가장 약한 사람들이 벼랑 끝에서 목소리를 낼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생존권이면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기본권입니다. 그럼에도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집시권을 누구보다 엄중히 수호해야 할 법원 역시 지난 2년간은 이를 지켜주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감염병으로 인한 집시권 침해가 법원에서마저 얼마나 용인됐는지, 그 사유들이 타당한지, 법원의 후퇴로 인한 부작용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3회에 걸쳐 살펴봤습니다.

    법원도 못지킨 집회의 자유③
    법원, 집회제한 고시 무효 확인 소송서 '각하' 판결
    인원수 줄이고 각서까지…집회에 조건 다는 법원
    가장 약한 사람부터…'집회 포기' 또는 '불법 각오'
    집회와 방역 '제로섬' 아냐…법원, OX 문제로 풀면 안돼

    ▶ 글 싣는 순서
    ①코로나에 완패한 '집회의 자유'…법원도 못지켰다
    ②"대규모 시위로 번질지도"…'기우'가 기본권 막아도 될까
    ③'코로나니까' 1인시위도 금지?…"법원이 굳건했더라면"
     
    성 소수자 축복기도 이동환 목사 처벌 재판 규탄과 성 소수자 차별법 폐기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이 목사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성 소수자 축복기도 이동환 목사 처벌 재판 규탄과 성 소수자 차별법 폐기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이 목사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농성천막 안에 2명 있었는데도 신고가 들어오고, 1인시위도 스피커는 안된다…."
     
    성소수자 축제에 참석해 축복기도를 한 이유로 교단에서 중징계를 받고 천막농성에 나섰던 이동환 목사는 시위 한 달을 채 못 채우고 지난 7월 16일 철수했다. 감리교 본부가 있는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농성장엔 2~3명 정도의 인원만 상주했지만, 서울시가 7월 12일부터 1인시위를 제외한 모든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면서 그마저도 불가능해진 것이다.
     
    심지어 7월 15일 서초구청은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1인시위 중이던 한 해고노동자에게 강화된 '거리두기' 방역수칙상 스피커 등을 사용할 수 없다며 시위자의 물품을 철거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목사의 변호인인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코로나를 핑계로 집회·시위에 대한 제한이 너무나 당연해졌다"며 "집회·시위의 본질 자체가 시끄럽고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인데 방역을 이유로 불편을 초래하는 모든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 집회제한 고시 무효 확인 소송서 '각하' 판결

    지난 2년간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핵심 기본권이 방역을 위해 '당연히' 물러나야 할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공고히 한 데는 행정기관뿐 아니라 법원도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집회금지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를 요청하는 사건에서 대부분 행정기관의 손을 들어줬고, 집회제한 고시 자체의 위법성을 따지는 본안소송도 전부 각하했다.
     
    코로나 집회금지처분으로 인해 접수된 본안소송은 대부분 앞선 집행정지 사건을 통해 집회 개최여부가 갈리고 난 후 심리가 진행된다. 이미 신청인들이 소송을 통해 직접적으로 얻을 이익(처분 취소를 통한 집회 개최 등)은 없어진 후에 선고가 나는 것이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소의 이익이 없는 부적법한 소송이 돼 각하 판단으로 이어진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그러나 대법원은 소송 당사자가 직접 얻을 이익이 없어졌더라도 문제의 처분에 대한 무효·취소를 통해 회복할 수 있는 다른 권리나 이익이 남아있다면 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수차례 판결을 통해 언급했다. 동일한 사유로 위법한 처분이 반복될 위험성이 있어 처분의 위법성 확인이나 불분명한 법률문제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 경우라면 행정의 적법성 확보와 그에 대한 사법통제, 국민의 권리구제 확대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의 이익이 인정되는 예외적인 사정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장낙원 부장판사)는 올해 2월 접수된 '도심내 집회제한 고시 무효 확인소송'을 심리한 후 지난 10월 말 각하 판결했다. 청구인들은 지난해 2월 26일부터 서울시가 광화문광장과 서울역, 종로 일대 등 도심 집회를 전면 금지한 고시는 위법해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7월 9일 해당 고시가 폐지돼 소의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서울시가 스스로 문제의 고시를 폐지한 것은 방역 상황의 추이에 대응해 일정한 주기별로 집회 금지의 필요성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서울시가 7월 9일 고시 폐지 후 내놓은 대안은 7월 12일부터 25일까지 2주간 전지역에서 1인 시위를 제외한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종전 고시가 '무기한' 제한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번엔 끝날 시기를 설정한 셈이지만, 제한의 범위는 도심에서 서울 전지역으로 확대됐고 시위 가능 인원은 '1인'으로 사실상의 전면 금지조치였다.
     
    또 해당 고시는 예정대로 2주로 끝나지 않고 2주씩 5차례나 연장돼 위드코로나 직전인 10월 31일까지 이어졌다. 재판부는 위의 재판 변론기일을 10월 7일에 종결했고 같은 달 28일 선고를 했기 때문에 이같은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고시의 무효 확인을 통한 이익을 인정할 만한 예외적인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추가적인 소의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는 오로지 재판부의 판단에 달렸기 때문에 행정법원의 각하 판결이 '입맛대로'라는 비판이 늘 있다"며 "행정청이 고시로 집시권을 전면 금지하는 위험성을 재판부가 크게 인식했다면 충분히 '무효'를 선고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인원수 줄이고 장소 좁히고 각서까지…집회에 조건 다는 법원


    한편 법원은 집회금지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별지' 기재를 통해 엄격한 조건을 붙였다. 500명 인원을 신고한 집회는 50명으로, 300명은 30~50명, 100명 집회나 50명 집회 등 적은 인원수의 집회에 대해서도 20~30명으로 제한했다.
     
    집회 시간이 야간까지 신고된 경우 통상 저녁 6시 이전 일과 중으로 제한했고, 낮 시간대 신고된 집회에 대해서는 1~3시간씩 시간을 줄일 것을 명했다. 장소도 일반 유동인구의 동선과 겹치지 않는 곳으로 범위를 좁혔다.
     
    9명이 9대의 차량에 나눠 타는 차량시위에 대해서도 깐깐한 조건을 붙였다. △집회물품을 집회일 전날까지 퀵서비스 등 비대면 방식으로만 교부하고 집회전후 일체의 모임이나 접촉을 해선 안됨 △어떠한 경우에도 차량 창문을 열지 않고 구호를 제창하지 않아야 함 △화장실 용무 등 긴급한 상황 이외에 차량에서 하차하지 않아야 함 등이다.
     
    대부분의 조건부 인용에서 집회 참가자들은 재판부가 제시한 조건을 준수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이를 시청과 경찰 등에 제출해야 한다고 못 박기도 했다. 만약 조치에 불응할 경우 행정청이 그 자리에서 집회 참가자들에게 즉시 해산을 명할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제한을 하게 된 과학적인 근거나 객관적인 사유는 특별히 제시되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 방역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임에도 교통마비를 초래할 만한 행진이나 지나친 소음 등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는 행위에 대한 제한까지 별지에 명시되기도 했다.
     
    랑희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집행정지 인용 결정문에 붙는 별지 조건이 점점 세분화하고 가짓수도 늘고 있다"며 "법원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곳인데 오히려 법원에서 집회 허용을 받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집행정지 소송을 통해 간신히 인용된 집회조차 본래 집회를 통해 달성하려 한 목적을 이루기 어려운 수준으로 인원과 방식 등을 제약받다보니 집회·시위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랑희 활동가는 "소송도 여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회적 약자나 단체들부터 집회를 포기하게 된다"며 "집회 대신 기자회견 형태로 진행을 하기도 하지만 효과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집회를 포기하든가 처벌과 벌금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집회와 방역 '제로섬' 아냐…법원, OX 문제로 풀어선 안돼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공권력감시대응팀은 지난 10월 29일 집회의 권리 회복을 위한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 확산에 대비하는 조치는 기본권 제한이 아니라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역조치와 집회·시위의 자유 등 기본권은 '제로섬' 관계가 아니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기본권을 보장하고 증진할 것인지가 방역당국의 주요 과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 2021.10.29. 공권력감시대응팀 기자회견 중 '집회의 권리회복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의견서'
    "코로나19의 위협 속에도 집회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이것이 제일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집회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자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단결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안전과 생명에 대한 권리, 인권침해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등 우리 삶과 연관된 여러 권리를 요구하고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집회가 코로나 시기 오히려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처럼 호도되지만, 사실 그동안 집회는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밖으로 전하고 그들의 삶과 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 집회의 권리는 그 자체로도 회복되어야 하며 코로나19로 확인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방역 과정에서 억울하게 인권을 침해당한 이들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판사들이 OX문제를 풀 듯 판결을 내려선 안된다"며 "기본권을 제한하는 판결을 하면서 '으레 그럴 것이니 이렇게 판단한다'라고 쓰면 어느 누가 납득하겠나"라고 꼬집었다.
     
    이어 "막연히 집회가 대규모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하거나 집회의 본질적 내용을 건드리는 조건을 달기 보다는 주최측과 행정청이 그 집회를 안전하게 치러내기 위한 장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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