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그분들에겐 라면에 떡을 넣어 드시는 게 떡국인 거죠. 그거라도 마음껏 드시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청량리에서 50년간 떡집을 운영해온 원인재(65)씨는 매년 새해를 맞을 때면 인근 취약계층 이웃들에게 떡국 떡을 기부해온 '청량리 기부천사'다.
원씨는 지난 13년간 신정과 설에 인근 고시원과 쪽방촌에 사는 독거노인 등 이웃 수십 명과 떡을 나눠왔다. 직접 집 앞에 찾아가 포장된 떡을 걸어두고 온다.
매주 목요일 오전 8시 오토바이를 타고 청량리 노인복지관 앞에 백설기 60개씩을 두고 오는 것도 원씨의 일과 중 하나다. 지난달 원씨는 동대문 노인복지관 우수후원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초창기 떡집 주변의 고시원·복지관에서 부탁을 받아 무상으로 떡을 제공하기 시작했던 원씨는 그 이후 십여 년 동안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원씨는 "떡 한 봉지에 1㎏ 정도니까 혼자 사는 분들은 떡국 세 번은 먹죠"라며 "신정, 설 때는 더 신경을 써요. 떡이야말로 너무 비싸도 안되고 너무 싸도 안되는 음식입니다"라고 말했다.
매년 이맘때쯤 새해를 맞아 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많아져야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청량리 현대 시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원씨는 "결혼식 등 대형 행사가 줄어 방앗간 사정도 어렵지만 그래도 빚내서 장사 안 하는 게 어디에요"라며 "전에는 복지관 노인분들 만나서 인사도 드리고 했는데 요즘엔 코로나19로 만날 수 없어서 복지관 앞에 그냥 두고 와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라고 말했다.
떡집 내부를 소개해주던 원씨는 이웃 사람들을 소개해주겠다며 떡 세 봉지를 들고 인근 쪽방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가니 켜켜이 겹쳐진 쪽방들이 늘어섰다.
그곳에서 만난 조득봉(78)씨는 "여기 분들이 어렵게 사는 거 아시고 연탄이랑 김장 김치도 가져다주시고 코로나19 예방하라고 소독도 해주신다. 항상 감사하죠."라며 "통장님만큼 챙겨주시는 분이 없어서 제가 통장 다시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웃었다.
5년 전 청량리동 통장을 지냈던 원씨는 최근 주민 추천으로 다시 통장이 됐다.
원씨는 들고 온 떡 봉지를 조씨에게 건네고 창고에 연탄이 충분한지 확인한 뒤 떡집으로 돌아왔다.
10년 넘게 기부를 이어온 이유를 묻자 원씨는 "내가 힘들게 살아봐서 아니까요. 추운 날에 배고프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라고 답했다.
원씨는 여덟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세 살 때부터 청량리 시장에 있던 '부산떡집' 등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30대 중반에 떡집을 인수해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원씨는 "어렸을 땐 여기가 다 판자촌이었죠. 이 시기만 되면 방앗간에서 쓰던 물이 다 얼어 손이 퉁퉁 붓고 갈라졌어요. 추운 게 제일 힘들었지"라고 회상했다.
이어 "옛날에 직원일 땐 떡을 주고 싶어도 못 줬는데 지금은 내가 주인이니까 마음껏 줄 수 있어서 좋아요. 고맙다고 해주면 그게 더 고맙죠"라며 "신년에는 코로나19가 끝나서 모두 건강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