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영학 회계사와 남욱 변호사 등 대장동팀이 대장동 개발 사업 공모보다 한참 앞서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성남도개공) 실무팀을 만나 '사업제안서'를 건넸다는 증언과 증거가 공개되면서 사전 공모 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본부장과 정 회계사 등의 공판에 등장한 이 최초 제안서를 CBS노컷뉴스가 단독 입수했다.
CBS노컷뉴스 취재와 유 전 본부장 등의 공판 등을 종합하면, 성남도개공 실무팀은 지난 2013년 12월 대장동팀으로부터 '사업제안서'를 제출 받았다. 성남도개공이 대장동 개발사업의 민간사업자 공모를 공고한 시점은 이로부터 1년 2개월여 뒤인 2015년 2월이었다.
문제의 제안서를 작성한 A씨에 따르면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가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을 찾아가 제안서 내용을 설명했고, 최 의장은 유 전 본부장과 이들의 연결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회동에 성남도개공에서는 이모 팀장과 한모 대리가, 대장동팀에는 정 회계사와 부동산 컨설팅업자인 정재창씨가 참석했다. 유 전 본부장은 이후 대장동팀과 성남도개공 실무팀과의 수 차례 만남을 주선했고, 이 과정에서 성남도개공 실무팀이 이 사업제안서를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장동팀 사업자 공모 1년 2개월 전 '환지 방식' 민·관 합동개발 제안
PPT 형식으로 작성된 7장의 사업제안서는 첫 장에서 대장동 개발 방식으로 '환지 방식' 3가지와 '수용 방식' 2가지로 세분화한 뒤 5가지 개발 방식 각각의 특징과 공공성 확보 방안을 서술하고 있다. 이 가운데 '환지 방식'과 '민·관 합동'란에 붉은색 체크를 크게 하는 등 환지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환지 방식은 토지개발 분야의 '재개발 재건축'과 비슷하다. 토지구획정리사업(도시개발사업 또는 정비사업) 등을 할 때 사업시행자가 정비되지 않은 땅을 토지 위치, 토지이용상황 및 환경 등을 고려해서 개발한 후 정비된 땅으로 교환해주는 방식이다.
원 소유주는 정비된 땅을 받기 때문에 환지 전에 비해 땅 면적은 줄어들지만, 활용도는 높아진다. 무엇보다 환지 방식으로 개발할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땅 주인의 동의(공청회)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소유주들의 반발이 적다. 사업제안서에서도 장점으로 △주민권익 보호: 주민재정착 유도, 민원 해소, △최소 투자로 공영개발 취지 실현 등을 꼽았다. 단점으로는 민간 주도에 따른 사업 관리 및 감독 기능 한계를 적시했다.
CBS노컷뉴스가 단독 입수한 <분당구 대장동 도시개발사업 추진방안 >사업제안서에는 '수용 방식'의 장단점도 포함됐다. 장점으로는 공공성·투명성 확보를 꼽은 반면, △개발예산 선 확보 필요 △토지주 반발 및 민원 발생 등을 단점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프리젠테이션 문서 가운데 가장 뒤에 자리잡고 있었고 장수도 1장에 불과해 비중이 적었다.
대장동팀의 '최초 사업제안서'는 대장동 사업자 공모 절차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과정이었음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다. 특히 대장동팀이 신속한 개발을 위해 성남시가 선호했던 수용 방식보다 환지 방식에 비중을 두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대장동 팀이 사전에 유 전 본부장을 비롯해 성남도개공 인사들과 접촉해 의견을 조율하지 않았다면 1년 2개월 뒤 사업자 공모에서 선정될 가능성이 낮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의 변호인이 공판에서 "(대장동 공모지침서상) 7개 조항은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안정적 사업을 위해 지시한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셈이다.
대장동 사업자 공모는 '쇼'? 1년 전부터 정영학 팀과 구체 논의
정영학 회계사. 연합뉴스지난 17일 대장동 2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성남도개공 한모 대리도 이같은 상황을 증언했다. 한 대리는 성남시에서 수용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환지 방식도 검토하기 위한 회의를 대장동팀과 여러 차례 진행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대장동팀과 성남도개공이 사업자 공모 1년 전부터 의견을 맞출 수 있었던 데에는 유 전 본부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대장동팀과 성남도개공은 2013년 12월 회의 결과, 결국 환지 방식이나 수용 방식이 아닌, 두 가지 방식을 다 검토하는 열린 방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듬해 1월 19일 성남시의 '대장동·제1공단 결합개발 추진계획 보고서'에서는 시행 방식이 "사업자 지정시 추후 결정"으로 바뀌었다. 검찰은 "성남시가 수용 방식으로 공모하려고 하다가 성남도개공의 건의를 받고 급하게 추후 지정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내에서는 공모 1년 전부터 시작된 대장동팀과 성남도개공의 부적절한 회동 사실은 물론 제출된 최초 제안서가 대장동 사업자로 사실상 화천대유가 내정된 결정적 증거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수 조원대의 개발 사업을 시작 전부터 특정 업체에 밀어주기로 작정한 배경에 오직 유 전 본부장의 의지만 작용했는지 여부다. 검찰 대장동 수사팀은 유 전 본부장 윗선이 사업자 선정 과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수사하고 있지만 연이은 피의자·참고인 사망 등으로 인해 난관에 직면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