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담뱃세로 흡연구역을 확충하겠습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흡연자를 위해 이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공간을 분리해 담배연기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흡연자 단체가 즉각 윤석열 후보의 공약을 "환영한다"며 지지 성명으로 힘을 보탰지만, 의료계는 흡연자들의 건강 악화와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두고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달 '석열씨의 심쿵공약' 시리즈의 23번째 순서로 "금연구역·흡연구역 기준 마련 및 담뱃세 활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흡연구역을 마련하기 위해 흡연부스와 재떨이를 설치하고, 담뱃세를 활용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다.
윤 후보는 또 국민건강진흥법(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일부를 개정해 흡연구역에 대한 기준을 재정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날 "서울시내 흡연구역은 금연구역의 1/40 수준"이라며 "무조건 흡연자들을 단속하고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흡연자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흡연구역을 제공함으로써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의 사회 갈등을 줄여가는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특별시의 금연구역 세부현황에 따르면 서울시 내부에 있는 금연구역은 지난 2020년 12월 기준 28만 7200여 개소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설치된 금연구역은 26만 9794개이고, 시·자치구의 조례에 따라 마련된 금연구역은 1만 7406개로 파악됐다.
연합뉴스이와 달리 서울시 내부에 있는 흡연구역은 지난 2018년 12월 기준 6200여 개소에 이른다. 흡연구역을 금연구연만큼 늘리지 못하는 배경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추진하는 금연 사업 정책과 WHO의 FCTC(담배규제기본협약)가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흡연실 설치는 흡연자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에서도 부스를 확대해 설치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며 "금연 정책의 기본 방향은 완전 금연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흡연 시설 설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WHO의 FCTC의 8조에도 모든 흡연 시설을 금지해야 한다고 나와 있고, 실내를 금연 구역으로 점차 확대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게 협약의 기본 기조"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금연을 위한 조치)는 '흡연자를 위한 흡연실을 설치할 수 있으며, 금연구역을 알리는 표지와 흡연실을 설치하는 기준과 방법 등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FCMC 문서 캡처FCTC 제8조도 "협약국이 실내 근무공간, 대중교통, 실내 공공장소에서 시민들이 담배 연기에 노출되는 것을 보호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2003년에 해당 협약에 서명하고 2005년에 비준, FCTC 당사국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금연학회장을 맡고 있는 백유진 한림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FCTC의 조항을 언급하며 "기본 원칙은 실내에서 흡연부스를 만드는 것까지 포함해서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흡연자 단체 "흡연자 위한 예산 지출" 환영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윤창원 기자그럼에도 윤 후보가 내건 공약을 두고 흡연자 단체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흡연자 단체인 '흡연자인권연대'와 '아이러브스모킹'은 지난 9일 성명문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기존 흡연구역조차 폐쇄되고 있다"며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는 이해하나 금연구역은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매년 13조원에 이르는 담뱃세를 납부하고 있지만 고작 4%만 금연사업에 사용되며, 흡연자를 위한 예산 지출은 미미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2021년 부담금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궐련의 경우 20개비당 841원이 국민건강증진부담금으로 귀속된다.
부담금 귀속 재원별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장애인생활안정 및 재활지원 △노인의료보장 △저출산대응 및 인구정책지원 △한의학연구 및 정책개발 등 다양한 곳에 쓰이고 있다. 용처를 둘러싼 지적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금연 교육과 흡연 피해 예방과 같은 사업을 담배 부담금으로 징수한 금액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국민건강증진법 제25조에 건강 생활의 지원 사업과 같은 부분들을 포함해서 운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반박했다.
의료계는 "건강 모두 해칠 것" 우려
연합뉴스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림의대 백유진 가정의학과 교수는 "윤 후보가 폐쇄형으로 부스를 설치하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며 "기계로 환기를 해도 100% 내부가 정화되는 것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어 "흡연자들이 타인과 자기가 뱉는 연기를 도로 마시게 되고 (내부) 관리도 어렵다"며 "현실적으로 흡연부스를 설치해서 담배 연기의 독성으로부터 흡연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한금연학회도 입장문을 통해 "이미 설치된 폐쇄형 흡연부스는 흡연자로부터 외면받고 있으며, 흡연부스의 문은 대부분 활짝 열려 있기 때문에 부스 주변 보행자들은 여전히 간접흡연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서울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흡연자 이모씨(23)는 "학교 안에 폐쇄형 흡연 부스가 있지만, 내부에 냄새가 나서 학생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다"며 "보통 개방형 부스에서 흡연을 했다"고 답했다.
국민건강보험 연구원이 발간한 '건강위험요인의 사회경제적 비용 연구'에 따르면 과거 및 현재 흡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지난 2019년 기준 12조 8677억원으로, 지난 2015년 11조 4605억원보다 약 12% 늘어났다.
증가하는 사회경제적 비용 등 담배의 사회적인 폐해를 고려해 오히려 담배를 끊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