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된 지난 18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의 모습. 연합뉴스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3년 차를 맞이한 지금,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되며 여러 업계에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는 가운데 영화계는 반가움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지난 18일부로 극장 내 띄어 앉기와 영업시간 제한이 해지되고, 오는 25일부터는 상영관 내 팝콘 등 음식물 취식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회복의 물꼬는 트였지만, 그동안 제작부터 투자·배급, 상영 등 영화 생태계 순환 구조가 무너지며 정상화까지는 팬데믹 이상의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다. 이에 영화계는 올해 상반기가 영화계 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거리 두기 해제에 "반갑고 고무돼"…韓 극장 회복 15.5%에 그쳐
지난 15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코픽)가 진행한 한국영화산업 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롯데컬처웍스 김무성 상무는 "사회적 거리 두기 완전 해제와 25일부로 상영관 내 취식이 허용돼서 반갑고 고무된 게 사실"이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두렵다"고 말했다.
당장 띄어 앉기와 영업시간 제한 해제로 극장 내 상영 횟수와 가용 좌석 수가 늘고, 매출의 20%가량을 차지하는 식음료 판매로 수익 상승을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극장 관계자들은 꾸준히 팝콘 등 음식물 취식 허용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완전한 회복이다. '2021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한국 영화산업 시장 규모는 최대 매출을 기록한 2019년 2조 5093억 원에서 2020년 1조 537억 원, 2021년 1조 239억 원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2021년 시장 규모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0.8% 규모다.
지난해 전체 극장 매출액은 5845억 원으로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가동을 시작한 2004년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던 2020년과 비교하면 14.5% 증가했지만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극장 매출 규모는 30.5%에 불과하므로 극장의 회복을 말하기엔 이르다.
무엇보다 2021년 중국, 미국, 영국은 전년 대비 90% 이상 회복하는 등 세계 극장 시장은 56.2% 회복했지만, 한국의 극장 시장은 불과 15.5% 증가에 그쳤다. 거리 두기가 계속되면서 상영시간 제한 등이 이어졌고, 극장가는 침체를 거듭했다.
2021년 3월 발간된 '2021년 영화 온라인 시장 전망' 이슈페이퍼 중.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팬데믹 시기 OTT 시장 규모 급증…달라진 관객들의 관람 형태도 걱정
팬데믹을 거치며 극장 방문 대신 집에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영화를 시청하는 등 달라진 관객들의 관람행태에 대한 우려 또한 존재한다.
지난해 1월 'OTT 시대 진화하는 영화관람 문화와 미래관객 개발을 위한 시사점'에서는 글로벌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보고서를 사례로 들며 세계 OTT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 13.7%로 성장해 2020년부터는 극장 시장 규모를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세계 영상산업에서 OTT 시장은 2019년부터 극장 시장 규모를 넘어서고 있다. 2021년 세계 극장과 OTT 시장 규모는 각각 234조 5489억 원, 75조 934억 원을 기록했다. 시장 비중은 각각 15.4%, 70.4%로 OTT 시장 규모가 극장에 비해 4.6배 커졌다.
김무성 상무는 "예전 관객들의 관람패턴이 습관적·소비 지향적이었다면, 이제는 '그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해'라는 목적 지향적으로 바뀌었다"며 "관객들을 붙잡기 위해 지속적인 환경개선을 해야 하는데, 환경개선을 할 금전적 여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린나래미디어 유현택 대표는 "지금은 관객들이 코로나19에 대해 어느 정도 학습이 된 상태"라며 "OTT에서 충분한 감동과 가치를 느낄 수 있는데 왜 극장에 가야 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2021년 3월 발간된 '2021년 영화 온라인 시장 전망' 이슈페이퍼 중. 영화진흥위원회 제공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독일 영화생태계 변화와 향후 전망' 리포트를 보면 독일 매체 도이치벨레는 "독일 영화관만 해도 매주 약 1700만 유로(한화 약 227억 원)의 손실이 있다"며 "점점 사람들은 영화관보다 비극장용 영화들에 의존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화배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이사는 "관객이 있어야 영화가 있고, 영화가 있어야 종사자들이 있고 산업이 유지된다. 관객 이탈은 영화계 인력 이탈로 이어진다"며 "극장이 과거와 같은 지위를 100% 회복 못해도 회복 속도를 일정 수준 조절해주지 못하면 영화 총매출은 회복되기 어렵다. 극장 산업의 매출 회복이 결국 영화산업 전체 회복의 중요한 키"라고 강조했다.
함주리·곽서연 코픽 영화정책연구원은 "극장 시장의 성장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문화 자본주의로의 변화에 대응하는 소비문화로서 다양한 영화 관람 경험을 제공해왔기 때문"이라며 보는 것을 넘어 소비문화로서의 영화 체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이 과정에서 문화 공공성 측면에 대한 고민을 잊어선 안 된다는 점도 짚었다.
오는 5월과 6월 개봉 예정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 영화들. 각 배급사 제공 상반기 이후 개봉 이어질 수 있을지 우려…"6월 이내 정부 지원 절실"
이처럼 팬데믹으로 인한 극장발 위기는 결국 한국 영화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2011년 이후 10년 연속 한국 영화가 관객 점유율에서 외국영화를 앞섰으나, 한국 영화 기대작의 개봉 부족으로 2021년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은 11년 만에 50% 아래로 떨어진 30.1%를 기록했다.
'승리호'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 김동현 본부장은 "2년 동안 개봉 못한 한국 영화가 100여 편이 있다. 1년에 소화할 수 있는 유효 편수가 60~80여 편 정도인데, 100편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데도 1년에서 1년 반 정도가 걸린다"며 "그 사이 신규 투자가 안 되기 때문에 시장 적체 문제는 2~3년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개봉을 미뤘던 영화들이 극장으로 나와야 한다. 일단 올 상반기에 수차례 개봉을 연기했던 할리우드 대작과 일부 한국 영화가 잇달아 개봉한다. 상반기 최고 기대작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5월 4일 개봉)를 시작으로 '탑건: 매버릭'(5월 25일 개봉) '범죄도시 2'(5월 개봉),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브로커'(6월 초 개봉) '헤어질 결심'(6월 말 개봉)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6월 개봉) '버즈 라이트이어'(6월 개봉) 등이 개봉을 확정했다.
하반기 시작인 7월에는 마블 신작 '토르: 러브 앤 썬더'를 비롯해 '한산: 용의 출현'이 개봉을 확정했지만, 이후 한국 영화들의 개봉을 낙관하기엔 이르다. 대작들이 터준 물꼬를 중소영화와 독립예술영화 등이 이어 나가야 하는데, 아직 팬데믹 여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추가적 지원이 없다면 개봉 후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 제작사인 바른손 E&A 곽신애 대표는 "오는 6월부터 극장상영이 100% 정상화된다고 가정해도, 대기 중인 작품들의 개봉 및 투입 자본이 회수돼 재투자되기까지 최소 2년의 공백이 예상된다"며 "지금부터 최소 2년간 긴급하고 확실한 대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통상 최소 12주 전 개봉을 결정하고, 8주 전 마케팅을 시작해야 하는 만큼, 3~4개월 전 정부 지원 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영화 개봉 결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CJ ENM 영화콘텐츠사업국 조영용 국장은 "배급사들도 올여름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력 영화를 개봉해 극장으로 관객을 모으려고 노력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중소영화, 즉 9~11월 개봉하는 영화에 대한 지원"이라며 "여름의 좋은 흐름이 끊기지 않고 겨울까지 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올 6월 이내에 지원책을 약속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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