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의원 시절 정치자금을 렌터카 매입에 사용하는 등 사적으로 유용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법 위반 소지를 판단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는 입장 외에는 줄곧 침묵만 지키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처벌 수위와 별개로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는 목소리가 많고 김 후보자 스스로도 제기된 의혹에 관한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하고 있어 선관위의 침묵이 정권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렌터카 매입·도색·남편 차 보험에 쓰인 김승희 '정치자금'
CBS노컷뉴스 연속 보도로 촉발된 김 후보자의 정치자금 유용 의혹은
①업무용 렌터카 매입에 보증금 명목 1857만원 지출 ②렌터카 개인 명의 전환 전 도색비 352만원 지출 ③남편 차 보험 34만원 지출 등 세 가지다.
김 후보자는 국회의원 시절인 2017년 2월 의정활동을 위한 업무용 차량으로 2017년식 제네시스 G80을 빌리며 정치자금으로 1857만원을 보증금 명목으로 지급했다. 당시 렌터카 업체와 맺은 계약서에는 "보증금 1857만원은 36개월 후 인수 시 감가상각으로 0원이 됨을 확인한다. 따라서 실제 차량 인수가액은 잔액 928만 5천원임을 확인한다"고 적혀 있다. 애초 3년 뒤 차량 인수를 고려해 계약한 정황으로 정치자금 1800여 만원이 고스란히 차량 매입을 위해 쓰인 셈이다.
김 후보자는 국회의원 임기 종료를 약 2개월 남겨둔 2020년 3월에는 이 차량을 도색하는 데에도 정치자금 352만원을 사용했다. 국회 입성 초인 2016년 7월 남편 차를 의정활동용으로 쓰기 위해 1년 짜리 보험에 가입하며 82만원을 지출했는데 약 반년 후 'G80 렌터카'를 계약한 뒤에도 보험을 그대로 유지해 5개월치 보험료 34만원이 정치자금에서 나가기도 했다.
김 후보자 측은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실무적인 착오였다"거나 "세부적인 내용을 알지 못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동시에 문제가 된 차 보증금이나 보험금을 취재 또는 보도가 이뤄진 뒤에야 선관위에 문의 후 반납했다며 단순 실수라는 입장을 부각하고 있다.
법조계 "정치자금 마치 자기 돈처럼 쓴 셈…뒤늦게 갚아도 법 위반"
연합뉴스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김 후보자가 인정한 사실관계를 볼 때 정치활동과 별개로 사용했고 개인적 이익을 취하기도 해 법 위반 소지가 높다는 목소리가 많다. 정치자금법 2조는 정치자금은 "정치활동을 위하여 소요되는 경비로만 지출하여야 하며, 사적 경비로 지출하거나 부정한 용도로 지출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렌트 후 3년이 지나고도 차를 계속 탄 것은 그냥 인수한 것인데 그렇다면 정치자금 1800여만원을 마치 자기 돈처럼 쓴 것과 똑같다"며 "금액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정치자금을 목적대로 쓰지 않은 셈으로 '유용'으로 보인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수사 의뢰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하승수 변호사는 "시가보다 싸게 개인 명의로 돌렸다는 것인데 (보도내용 상)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가 처음부터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아 정치자금법 위반이 될 수 있다"며 "(김 후보자가 돈을 반납한 것도) 행위 시점에 법을 어겼으면 법 위반이 되는 것으로 뒤늦게 갚았다고 죄가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처벌된 사례도 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국회의원 임기 종료 직전 정치후원금 5천만원을 자신이 소속된 의원모임에 연구기금 명목으로 기부한 혐의로 지난해 벌금 2백만원이 확정됐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의원 시절 정치자금 약 19만원이 아들의 육군훈련소 수료식 날 충남 논산의 주유소와 식당에서 사용됐다는 의혹으로 약식기소를 거쳐 벌금 50만이 부과됐다.
명확한 정황에도 선관위 "사실확인" 입장만…'눈치보기' 지적
이처럼 선례들을 볼 때 김 후보자의 경우에도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짙어 보이지만 정작 선관위는 의혹 보도 직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뒤 추가 조치 등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사실관계 확인은 선관위가 단순 경위 파악을 하는 과정으로 법 위반이 명백할 때 실시되는 '조사'의 사전 단계다. 김 후보자가 의혹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고 선관위 문의를 거쳐 문제의 돈을 반납까지 했는데도 선관위는 여전히 사실관계 확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셈이다.
선관위는 렌터카 보증금 의혹 보도 직후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위법 소지 유권해석 요청에도 "기사 내용만으로는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길 바란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기도 했다.
정치자금법상 선관위는 법에 위반되는 사실이 있다고 인정되는 때 관할 수사기관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 혹은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돼있다. 그럼에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판단에 선관위가 법 위반 소지 여부와 별개로 김 후보자를 임명한 정부의 눈치와 인사청문회 진행 여부 등을 살피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김 후보자가 (렌터카 매입 등 의혹 보도에 대해) 언론에 인정을 한 것이고 저희 쪽에 인정을 한 건 아니라 그 부분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인사청문회 진행 여부나 개최 전후에 따라 확인 또는 조사를 당기거나 늦추거나 이러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