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9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방문해 취재진과 대화하는 모습. 오른쪽은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연합뉴스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이 19일로 48일째 이어지고 있다. 노사는 물론 원청인 대우조선해양과 정부까지 나선 상태지만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좀처럼 잡히지 못하며 손해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하청 노조 "지난해 임금 실수령액, 8년 전보다 30% 감소"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하청업체지회(하청노조) 노조원 150여 명은 지난달 2일부터 △임금 30% 인상 △상여금 300% 지급 △노조 전임자 활동 보장 △단체교섭 인정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협상은 한 달 넘게 제자리걸음 중이고, 하청노조는 지난달 22일부터는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의 5개 도크(배가 만들어지는 공간) 중 가장 큰 제1도크(배 만드는 작업장)를 점거해 진수(공정을 마친 선박을 안벽으로 옮기는 작업)를 막고 있다.
하청노조는 임금 30% 인상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라고 주장한다. 관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선업 구조조정 이전인 2014년과 비교해 2021년 임금 실수령액은 31.7% 줄었다. 이와 관련해 금속노조 관계자는 "임금 30%가 인상돼도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원청의 임금의 52% 수준"이라며 "하청노동자들의 주장은 사실상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금 인상을 위해서는 대우조선이 기성금(발주자가 공정률에 따라 나눠서 지급하는 돈)을 올려줘야한다. 노조의 핵심 요구인 임금 인상이 대우조선의 기성금 인상 없이는 관철되기 어렵다. 노조가 하청업체와 실질적인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대우조선과 그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결단을 촉구하는 이유다.
협력업체 "노조가 협상 거부하고 불법 파업"…대우조선 "인상 여력 없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7.23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세부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류영주 기자하청노조의 주장에 대해 협력업체 측은 '하청노조가 오히려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대우조선 협력사 협의회는 "사내협력회사 협의회 대표들이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노조가 단체교섭 요구안은 제시하고 협상의 의지가 없는 태도로 일하고 있다"며 "협력사들은 불법행위를 감내하며 기다려왔지만 협상에 진전이 없고 경영상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폐업하는 회사가 속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청업체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대우조선 측은 "올해 기성금을 3%가량 인상했다"며 사추가 인상 여력은 없다는 입장이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최근 수주가 이어지고 있지만 실적이 개선되려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되어야 한다"며 "원자재 값이 급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건비나 외부조달비가 더 들어가면 영업 손실이 더 커지고 재무 구조가 악화되면 수주가 금융조달 등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인건비를 쉽게 인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만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인력 이탈로 업계가 인력난을 겪고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나면 일감 소화를 위한 인력 확보를 위해 자연스럽게 임금이 오를 수 밖에 없다"며 "조선업이 막 기지개를 펴려고 하는 아직은 어려운 상황에서 목줄을 쥐고 흔드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노사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사측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가진 뒤 "노사 대화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불법적인 점거 농성을 지속한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19일 "산업 현장에 있어서, 노사관계에 있어서, 노든 사든 불법은 방치되거나 용인돼선 안 된다"며 공권력 투입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노사 모두 임금 인상 필요성엔 동감…'언제부터' 두고 평행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을 찾은 지난 19일 독에서 농성 중인 근로자가 구호를 외치는 모습. 연합뉴스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종합하면 하청노조와 협력업체, 대우조선 모두 조선업 불황기 고통 분담에 동참한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회복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언제부터 임금 회복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온도 차이가 극명하다. 사측은 '조선업 체력이 조금 더 회복되면'을 주장하고 있고 노측은 '이미 한계점을 넘은지 오래'라는 입장이다.
사측과 정부 등은 대우조선이 여전히 높은 부채비율(547%)과 지난해 1조7000억원, 올해 1분기 47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등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보고 있다. 최근 조선업 경기 회복과 수주 확대를 발판 삼은 기업 정상화를 위해서는 노사가 함께 뼈를 깎는 노력을 조금 더 해야한다는 것이다.
반면 노조 측은 사측이 요구하는 고통 분담 수준이 임계치를 넘어도 한참 넘은 데다 '여력이 없다'는 대우조선의 주장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맞선다. 지난 2017년 대우조선을 포함한 업계는 상여금 550% 중 400%를 기본급으로 편입하고 나머지 150%를 삭감하는 방식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했고, 시급은 올랐지만 실질소득은 급감했다는 것이다. 특히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노동강도는 늘었지만 임금은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대우조선은 1분기(연결기준) 영업손실 4701억원을 냈는데 이중 4000억원은 3년치 충당금이다. 대우조선보다 규모가 확연히 큰 한국조선해양 자회사들(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의 충당금 합계치는 1230억원(공사손실충당금 1119억원 제외), 대우조선과 규모가 비슷하거나 조금 작다고 여겨지는 삼성중공업의 충당금은 800억원이었다.
이렇듯 대우조선 상황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이 확연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만큼 사태 해결은 상당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양측이 평행선을 걷는 동안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으로 파업에 따른 누적 손해액이 5700억원에 이른다. 대우조선 측은 매주 고정비를 포함해 일주일에 1310억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대우조선 주장대로 조선업 체력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면 조선업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 정부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업계관계자는 "대우조선은 산업은행으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으로 책임을 떠미는 모양새지만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정부가 대우조선에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촉구하면 노사가 입장차이를 좁힐 수 있는 지점이 있어 보인다"며 "정부가 벼랑 끝에 몰린 조선업 노동자에 대한 금융 지원 등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