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작곡가 유희열. 안테나 공식 홈페이지"검토 결과 곡의 메인 테마가 충분히 유사하다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긴 시간 가장 영향받고 존경하는 뮤지션이기에 무의식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되었고 발표 당시 저의 순수 창작물로 생각했지만 두 곡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희열)
유희열은 지난달 14일 인스타그램으로 피아노 소품 시리즈 '유희열의 생활음악'의 두 번째 트랙 '아주 사적인 밤'(2021)과 일본의 피아노 연주가이자 작곡가인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2010)가 유사하다는 제보를 받았고, 확인 결과 두 곡이 유사한 부분이 있었다며 그날 저녁 사과문을 게재했다. 호의적이었다. 빠른 대처, 솔직한 인정, 후속 처리 계획 공개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기에, 오히려 그를 응원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아쿠아'의 원저작자인 사카모토 류이치는 "음악적인 분석의 과정에서 볼 때 멜로디와 코드 진행은 표절이라는 논점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라며 "유희열씨의 곡은 어떠한 표절에 대한 법적 조치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을 5~10% 정도 가미한다면 그것은 훌륭하고 감사한 일"이라며 유희열에게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시길"이라고 격려했다.
'아주 사적인 밤'과 '아쿠아'의 유사성 의혹은, 원저작자인 사카모토 류이치의 '표절 아님'이라는 발표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시작이었다. 유희열이 낸 음악들이 줄줄이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그중에서도 성시경이 부른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 2002)는 타마키 코지의 곡(1998)과 제목까지 같다는 점에서, '무한도전-자유로 가요제'에서 발표한 '플리즈 돈트 고 마이 걸'(Please Don't My Girl, 2013)은 안무마저도 퍼블릭 어나운스먼트의 '바디 범핀'(Body Bumpin, 1998)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아쿠아'를 두고는 이례적으로 유사성을 시인하고 크레디트를 정리하겠다고 알린 유희열은, 그 후 뒤따른 의혹에 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밝혔다. 지난달 22일 소속사 안테나를 통해 "의혹이 제기된 추가 곡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면서도 "단순 비교로 논란이 되는 부분은 동의가 어렵다"고 했다. 지난 18일 낸 입장에서도 "지금 제기되는 표절 의혹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올라오는 상당수의 의혹은 각자의 견해이고 해석일 순 있으나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라고 말했다.
'유사성'과 '표절' 사이
유희열의 기존 발표곡이 다른 곡들과 유사하다는 의혹은 한동안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고, 1990년대부터 2022년 현재까지 약 30년 동안 쌓아온 '음악가' 유희열은 큰 타격을 입었다. 13년 3개월 동안 진행한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도 자진 하차했다. 매주 여러 가수의 무대를 생생한 라이브로 들려줬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음악평론가 등 업계 전문가들은 '표절'은 창작자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니 더욱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표절은 원저작자가 유사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을 때 '법적 판단'에 따라 확정되기에, 곡이 유사하다고 하는 것과 이를 곧장 '표절'로 규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는 게 요지다.
일본의 피아노 연주가이자 작곡가인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 공식 페이스북유희열과 같은 소속사인 싱어송라이터 박새별이 올린 글이 대표적이다. 박새별은 "법적으로 말한다면, 현재 표절 논란의 모든 곡들은 표절에서 제외될 것"이라며 "'표절인가'와 '비슷한 곡인가'는 같은 것이 아니며 부분을 잘라서는 절대로 법적 효력이 없"다고 썼다. 또한 표절은 △음악 내적 요인 △심리학적 요인 △음악 외적 요인이 뒤섞인 어려운 이슈여서 "지난 50년간의 100개가 넘는 판결을 다 뒤지면서도 나는 정확하게 정량적 measure(측정치)를 찾을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레코드 레이블 영기획의 하박국 대표도 "'레퍼런스 의존도가 심하고 창의력이 부족하다'라고 의견을 내는 것과 '표절이다'라고 확정 지어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다른 일"이라며 "전자만으로도 충분히 아티스트에 대한 비판과 발전적인 논의는 가능하지 않을까. 음악이란 복잡하고 미묘하며 그리하여 아름다운 예술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이를 사이다 서사로 소비하거나 마녀사냥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글을 남겼다.
음악과 음악가를 '단죄'하는 형태의 의혹 제기에 '우려' 나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표절 의혹 제기 방식과 내용이 과도하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정민재 음악평론가는 "전체 4분 정도의 곡에서 네 마디 정도가 비슷한 것을 표절이라고 단정하거나, 속도를 바꾼다든지 피치를 올린다든지 해서 더 비슷하게 들리게 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전혀 비슷하지 않은 곡들도 딸려 나오고 있는데, 좀 더 분별력 있게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가요 기획사 관계자 A씨는 "제한된 음계 안에서 멜로디와 화음 코드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는) 흡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다"라며 "표절은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인데 단순히 빠르게 단죄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면 자칫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의혹 제기에 나서는 유튜버들을 두고는 "이처럼 확신하며 이야기하는 데에는 공명심이나 본인 채널을 알리기 위한 의지가 반영됐을 텐데, '내 귀에 비슷하게 들린다'고 하면서도 (향후 사태를) 책임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우려스럽다"라고 전했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는 "표절이 비양심적·비윤리적 행위이기에 경각심을 갖자는 데는 동의하지만, 뮤지션들이 사람들을 속여 돈을 벌고 있다는 편견이 (이번 사태의) 기본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감시'의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조리돌림'에 가깝게 폭력적인 '찍어 내리기' 스포츠로 가는 양상이 굉장히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가요 기획사 관계자 B씨도 "우리나라는 표절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모호하다. 본인의 '양심선언'을 기다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라며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문제인데, 비슷하게 들리는 부분만 짜깁기해서 온라인 바이럴이 되니까 이미 (표절이라는) 판결을 받은 느낌이다. 표절 여부가 확실치 않은데 너무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닐까"라고 바라봤다.
'레퍼런스'에 의존해 온 작법 관행 재조명되기도
유희열은 유사성 논란으로 인해 13년 3개월 동안 진행한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하차했다. 프로그램은 600회를 끝으로 22일 종영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공식 홈페이지비단 가요계뿐 아니라 창작의 영역에서 기존 발표작을 참고하고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문가들도 '레퍼런스'를 가지고 곡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데 공통된 의견을 냈다. 하지만 재창조 시도나 색다른 해석의 여지 없이 좋은 레퍼런스에 지나치게 기대는 작법 관행이 있는 건 사실이고, 별다른 제재 장치 없이 관대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유희열은 발표한 작품에 스며있던 특유의 '감성'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것인데, 타인의 작품을 레퍼런스 삼아 그 분위기까지도 빌려오고자 했다는 점이 이번 사태로 부각된 만큼, 대중이 실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유희열씨가 '유사성이 있다'라고 말해서 이 논란 자체가 엄청 커졌다. 이번 일로 유희열씨 이미지와 그간 '멘토'로 여겨지던 음악가로서 소비되어 온 맥락이 부정당하고 있다. 본인에게 실망한 대중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팬들 입장에서는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 시간이 부정되는 경험이었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가요계에) 경각심을 줬다고 생각한다. 어떤 스타일을 가져가는 것 자체를 흠잡을 순 없지만 아이디어까지 다른 데서 따오는 일도 많다. 레퍼런스를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아티스트가 표절에 안 걸리려고 노력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좋은 것을 참고하되 자신만의 것을 담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대화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역시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샘플링이든 송캠프든 리믹스든 뭐든 유사성의 정도가 너무 높으면 당연히 표절 의혹이 나올 수 있다. 창작 방식의 다양함과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의견을 냈다. 그는 "내 생각에 유희열은 레퍼런스와 창작의 경계가 아슬아슬한 사람"이라며 "정도가 지나치다 생각하면 스스로 멈춰야 한다. 그런 것에 관대해지면 결국 이런 문제들이 터진다. '레퍼런스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나중에 문제 된다'의 예로 평가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썼다.
현직 아티스트 C씨는 유희열의 표절 논란에 관해 "선량한 대부분 음악인들의 자존심에 먹칠을 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씁쓸하다. 한편, 이 사건으로 인해 제 발이 저려 벌벌 떨고 있을 중견 뮤지션들도 많이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관대'는 절대 틀린 답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댓글을 달아 동조하기도 했다.
'K-팝 신화의 그림자' 저자인 강일권 음악평론가는 이렇다 할 진전이나 개선 없이 유사성 논쟁이 반복되는 상황을 언급하며,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일권 음악평론가는 "표절은 또 다른 창작자에게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표절 여부를) 창작자의 양심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법제화가 필요하다. 표절을 근절하는 것은 어렵겠으나 줄일 수 있도록 경각심을 갖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