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공장 바라보는 한미정상.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3월 한국과 대만, 일본 세 나라에 '칩4동맹'을 제안했다. 한국에 참여할지 여부를 8월말까지 결정해 달라고 했다는 소식이 최근에 알려지면서 우리 정부가 어떤 결정을 할 지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미동맹 강화를 외교의 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당연히 가입하지 않겠냐고 하고, 일부 언론에서는 일본과 대만의 가입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칩4에 들어간다고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중국은 쿼드, IPEF에 이어 중국을 쏙 빼고, 오히려 노골적으로 자신들을 견제·고립시키려는 칩4 동맹에 한국이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비교적 온건한 어조로 한국을 만류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의 의중을 나타내는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의 반도체 수출 가운데 중국과 홍콩에 대한 수출 비중이 60%에 달한다며 이렇게 큰 시장과 단절하는 것은 상업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고 반협박 비슷한 어조로 나오기까지 했다.
중요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미국이 제안한 칩4 동맹을 거부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반도체 시장 뿐만 아니라 중국 의존도가 75% 이상 되는 품목이 700여개 이상 되는 상황에서 가입했을 경우 중국의 반격 가능성도 상정해야 한다.
특히 28년 만에 처음으로 5월과 6월 대중국 무역이 적자를 기록했다는 사실 하나에도 시름이 깊어지는 데 어느 것이 어떻게 얽혔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하나만으로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요소수 사태는 중국을 무시하고 깔보다 큰 코 다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교훈으로 가르치고 있다.
마침 우리 외교부 당국자가 25일 미국이 칩4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에 대해 가입 제안이라고 하기 어렵고 답변 시한이 정해져 있다는 데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히면서 칩4 동맹 논란은 다소 가라앉을 전망이다.
연합뉴스
이번 칩4 동맹 논란은 복기를 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 언론이 미국이 8월말까지 참여할지 여부를 답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하면서 불거지고 중국 관영 언론이 이에 반발하면서 파장이 커졌지만 칩4동맹이 뭐하자는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하면서 칩4 동맹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데 중국의 보복이 걱정된다는 식으로 사회적 논의를 전개해 나간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미국이나 일본도 그렇지만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대만에서 칩4 동맹 참여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점이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 대만에 서로 다른 수준의 제안을 하면서 답변 시한을 달리 요구했을 가능성 보다는 칩4 동맹이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컸고 외교부 당국자를 통해 이게 확인된 셈이다.
국내의 한 교수는 최근 칩4 동맹 논란을 보면서 2년 전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논란의 데자뷰를 경험하는 중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 교수의 예감이 대체로 맞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든다.
트럼프 정부 말기에 미국이 한국 등 10여 개 국에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끼리 경제동맹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서 뭔가 세상을 바꾸자는 엄청난 제안처럼 보였고 한국이 여기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정작 미국 내에서는 EPN을 놓고 무슨 토론이나 세미나가 벌어진 흔적이 영 없었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