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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어머니 죽인건 보복 아니다"…스토킹범 궤변에 판사는 호통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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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법정B컷]"어머니 죽인건 보복 아니다"…스토킹범 궤변에 판사는 호통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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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이석준. 박종민 기자이석준. 박종민 기자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에게 지속적인 공포와 불안을 주다 치명적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서 잔혹한 범죄로 통합니다. 피해자의 삶을 서서히 갉아먹다 끝내 파탄에 이르게 하는 범죄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불과 2021년 3월 이전까지만 해도 스토킹 범죄를 그저 경범죄로 분류해왔습니다.

    최근 서울 신당역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여론의 분노가 들끓자 검찰과 경찰이 나서 범죄의 뿌리를 뽑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사실 스토킹 범죄는 계속해 우리 주변에서 이어져 왔습니다. 실제로 9월 23일엔 피해자를 스토킹 하다 살해한 김병찬의 2심 재판이 있었고, 29일엔 스토킹 피해자의 모친을 살해한 이석준의 재판이 있었습니다.

    오늘 '법정B컷'은 피해자를 스토킹 하다 피해자의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항소한, 그리고 법정에서 판사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궤변을 쏟아낸 이석준의 항소심 장면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재판 안 나온 이석준, 이유는 "정신적으로 힘들다"…판사는 분노


    스마틍이미지 제공스마틍이미지 제공
    이석준은 지난해 12월, 전 여자친구이자 스토킹 범죄 피해자인 A씨의 집에 침입합니다. A씨는 집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석준은 집에 있던 A씨의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합니다. 현장에 함께 있던 A씨의 남동생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중태에 빠트립니다. 남동생의 나이는 13살이었습니다.

    보복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석준에게 1심 재판부인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는 지난 6월 21일, 무기징역을 선고합니다.

    이석준은 즉각 항소합니다. 그리고 9월 22일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문광섭 부장판사)의 심리로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립니다.

    그런데 항소심 공판 첫 날 이석준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석준은 이날 오전에 갑자기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합니다.

    22.09.22 서울고법 형사9부 보복살인 이석준 항소심 공판 中
    재판부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이석준 변호인 "그건 아닌데, 1심 판결 부당함과 여러 가지 후회, 정신적 문제 같습니다"

    재판부 "아니 그러니깐 병적으로 질환이 있어서 도저히 올 수 없는 건지, 아니면 개인적 심리 불안 상태인지… 재판을 받으면 마음이 좋지 않은 건 당연하죠. 그런데 그 정도로 지금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는 건가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석준이 첫 공판에 불출석한 이유로 판결에 대한 불만과 정신적 문제를 거론한 겁니다. 판사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22.09.22 서울고법 형사9부 보복살인 이석준 항소심 공판 中
    재판부 "불출석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소명하라고 하겠습니다. 소명 없이 다음에도 나오지 않으면 응분의… 하여튼 피고인에게 절차상 불리해도 진행하겠습니다" (구치소 직원을 바라보며) 구치소에서도 다음부터는 평소 생활하는 것을 보면 의견이 있을 거 아니에요?"

    교정본부 직원 "네. 있습니다"

    재판부 "정말 심리적, 정신적으로 힘들어 보이면 힘들다고 해주시고, 괜찮은 것 같은데 괜히 저러는 것이면 속된 말로 꾀병인 것 같다면 꾀병이라고 의견 내주세요. 재판부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의견 주세요"

     

    "母를 죽인 건 보복이 아니다" 주장에… 판사 "상식적이냐?"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이석준의 불출석과 판사의 단호함에 법정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하지만 이석준 측이 항소 이유를 본격적으로 설명하면서 재판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습니다. 1심 판결이 부당하다고 주장한 이석준의 항소 이유는 '자신에게 보복 살인 혐의를 적용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자신은 A씨에 대한 보복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했는데, 실제로는 피해자가 아닌 A씨의 어머니를 해쳤으니 보복 살인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22.09.22 서울고법 형사9부 보복살인 이석준 항소심 공판 中
    재판부 "딸(A씨)에 대한 보복 목적은 인정했는데, 어머니에 대해선 없었다? 딸에 대한 보복이고, 어머니를 죽인 것이니 어머니에 대한 것은 아니다? 사실관계나 법리적으로 볼 때 과연 피고인이 가족에 대한 보복 목적이 있었는가를 말하는 거죠?

    이석준 변호인 "네"

    재판부 "생각해보세요. 보복 목적은 딸인데 실제로 죽인 것은 가족이다? 변호사님, 제가 변호사님한테 악감정을 갖고 자제분을 해쳤다면 죄가 됩니까? 안됩니까?"
    "(보복살인이) 보복 목적 대상과 실제 피해자가 반드시 일치해야만 성립하는 범죄입니까?"


    이석준 변호인 "검토해보겠습니다"  

    황당함을 감추지 않은 재판부는 변호인을 향해 이렇게 지적합니다.

    22.09.22 서울고법 형사9부 보복살인 이석준 항소심 공판 中
    재판부 "변호사님, 예를 들어 A에 대한 보복 목적으로 B를 죽였어요. A와 B가 남남이면 성립 안 되지만, 거의 동일시할 수 있는 가족 관계일 때 그 사람이 해쳐짐으로 인해서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러면 앙갚음이 되는 거죠"

    "목적과 행태를 세분해서 이것 따로 저것 따로 연관성 없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나요? 상식적으로 하세요. 상식적으로" 


    "저도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상식에 맞는지 이게… 변호사님도 상식에 맞는 거라면 왜 맞는지, 아닌 것 같으면 재고해보세요"

    이처럼 이석준 측의 다소 황당한 주장과 판사의 호통이 오간 이날 항소심 첫 공판은 이석준의 불출석으로 연기됐고, 약 30분 만에 종료됩니다.


    일주일 만에 등장한 이석준… 보복살인 여전히 부인



    일주일 뒤인 29일 다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이석준은 출석했습니다. 판사는 이석준의 건강 상태부터 체크합니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라는 질문에 이석준은 "아직 좀"이라고 답합니다.

    곧장 재개된 공판에서 이석준 측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보복 살인 혐의를 부인합니다.

    22.09.29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 보복살인 이석준 항소심 공판 中
    재판부 "딸에 대한 보복 목적은 인정하는데 어머니에 대해선 없었다는 거죠?"

    이석준 변호인 "네. 특가법상 대상이 가족, 친지로 확대되지만…"

    재판부 "근데 이 사건에서 어머니가 개입하지 않은 사건이면 주장이 되는데, 이 사건은 마침 어머니가 개입해서 신고도 하고 조사도 받았는데 어머니를 어떻게 (사건과) 분리하죠? 나는 여기까지만 보복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고 명확히 구분할 수 있나요?"

    이석준 변호인 "지난번에 지적해주셨지만, 목적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재판부 "검사님, 보복 살인 목적에서 A에 대한 보복 목적으로 가족을 살해했을 때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 관련해서 사례나 다른 의견 있나요?"

    검사 "보통 A를 죽이려고 했는데 실제는 B가 된다면 대체자니깐 그대로 고의가 인정됩니다. 또 이번 경우엔 어머니가 신고한 사람입니다. A에 대한 보복 목적 현장에서 죽인 사람이 모친이어도 보복 목적이 인정됩니다"
     

    현행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우리나라는 '보복 목적으로 살인, 존속 살해를 한 자에 대해서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석준 측은 보복 대상은 그저 A씨였을 뿐이라며 이 부분을 다퉈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항소심 공판에서 이석준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관련해서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석준은 이번 범행을 준비하며 이른바 '흥신소'를 통해 피해자의 집 주소를 알아냈는데, 불법 정보인지는 몰랐다는 겁니다. 이석준 측은 1심 재판에서도 이 주장을 펼쳤습니다.

    22.09.29 서울고법 형사9부 보복살인 이석준 항소심 공판 中
    재판부 "결과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되는 것은 인정하나요?"

    이석준 변호인 "아닙니다"

    재판부 "정보 주체(피해자)의 동의를 안 받았다는 사정을 알면서 (집 주소 정보를) 받았는지, 모르고 받았는지를 다투는 건가요?"

    이석준 변호인 "그 부분에서 몰랐다는 겁니다"

    재판부 "(집 주소 정보가) 나에게까지 오게 된 경위에 대해 인식이 없었다는 건가요?

    이석준 변호인 "네. 인식이 없었다는 겁니다"

    재판부 "이 정보가 누구로부터 어떻게 왔는지 구체적 경과는 모르겠죠. 근데 어디선가 잘 못 유출돼서 떠도는 정보를 이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서 입수해서 나에게 줬다는 것도 몰랐다는 건가요?"

    이석준 변호인 "처벌 규정에선 아니라는 겁니다" 

    양측의 입장을 확인한 재판부는 이제 이달 20일부터 증거 조사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이후 재판에서도 보복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를 두고 양측의 대립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스토킹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만큼, 법원에서도 수많은 스토킹 범죄 사건이 진행 중입니다. 기자가 돌아다니며 본 스토킹 범죄 공판에서 피해자들이 하나 같이 원하는 것은 스토킹 범죄자와 사회의 영원한 격리였습니다.

    스토킹 범죄의 특성 중 하나가 지속적인 괴롭힘과 범행입니다. 피해자가 원치 않다는 의사를 밝혔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범행이 계속되는 것이죠. 또 보통 지인들로부터 범죄 피해를 당하는 것이어서 보복에 두려움으로 인해 신고조차 망설이는 특성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피해자 가족들은 더욱 스토킹 범죄자들과 사회와의 격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출소 후 자신들에 대한 보복이 두렵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우리나라는 2021년 3월에서야 스토킹 범죄를 경범죄에서 빼냅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10년 이상 뒤쳐진 조치였죠. 그릇된 그릇된 집착과 명백한 범죄 행위를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는 등의 인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한 결과물일지 모릅니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했고, 그리고 그 호소에 이제나마 사회가 응답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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