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어떤 분은 의료쇼핑이라고 1년에 병원 수천 번을 다니는 분이 있고, 고가의 MRI(자기공명영상) 같은 것을 무제한으로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다시 한번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언급했다. 이는 불과 이틀 전인 13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케어를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규정하며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게 됐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는 문재인 정권에서 건보 보장성을 확대해 심각한 의료쇼핑 실태를 야기했고, 이 때문에 건보 재정이 악화됐다는 논리로 귀결됐다. 자연스럽게
진보와 보수 정권을 떠나 일관되게 추진됐던 보장성 확대에 제동을 거는 근거로도 활용됐다.
보장성 확대와 의료쇼핑은 '동전의 양면'
윤 대통령이 언급한대로 1년에 수천 번 병원을 찾는 경우는 실제로 최근 심심치 않게 지적됐던 내용이다.
건보의 '2021년 외래 진료 횟수 상위 10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0대 여성 A씨는 총 24곳의 의료기관을 찾아
외래진료를 2050회나 받았다. A씨에게
건보 부담금 2690만원이 지출됐다.
나머지 다른 8명도 일년에 1207~2050회 외래 진료를 받으면서 적지 않은 비용을 일으켰다.
비슷한 사례는 2020년 국감자료를 통해서도 공개됐는데, 그 전해에
20대 남성 B씨는 한해 3062번이나 병원을 방문했다. 건보는 3243만원을 부담했다.
이 기간은 문케어로 보장성이 확대되는 시기이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의료쇼핑이 없었을까. 류영주 기자의료수급권자들의 의료쇼핑을 예방하는 활동을 벌이는 전국 지자체에서 의료 쇼핑은 문케어와 무관하게 매년 발견돼 왔다. 충청남도는
2016년 의료기관을 전전하며 4650만원의 의료비를 쓴 C씨, 요양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2580만원의 진료비가 발생한 D씨 등에 대해 의료 사례관리를 실시해 전국 최우수 평가를 받기도 했다.
10여년 전인 2012년 국회입법조사처의 정기간행물(이슈와논점)은 '의료쇼핑의 문제점 및 대응책'을 다루면서 당시 언론에서 의료쇼핑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점을 언급했다.
이슈와논점은 "
사실 의료쇼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면서 "
외래방문일수, 방문한 의료기관수 그리고 투약일수 상위 1%에 해당되는 환자들의 수는 계속적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보다 더 오래된
20여년 전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건보 자료를 보면, 2001년 하루 동네병원을 7~9곳을 가거나, 5~6개월 사이에
항문·백내장·담석증 수술 등을 5~8회나 받은 환자들의 사례가 나온다. 건보는 이때도 "
건보 재정의 부담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우려했다.
윤 대통령과 정부는 문케어로 보장성이 확대된 초음파·MRI에 대한 건보 재정지출을 크게 문제삼고 있다.
뇌·뇌혈관 MRI 재정 지출은 지난해 2529억 원으로 목표액(2053억 원)보다 23% 많고, 하복부·비뇨기 초음파 지출도 목표액 685억 원보다 37% 늘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여기에서도 불필요하게 검사를 하거나 반복하는 '의료쇼핑'이 발생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비춰보면 보장성이 확대되면 '의료쇼핑'도 함께 늘어났다. 환자 부담이 줄어드는 질환의 가짓수가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의료쇼핑보다 심각한 고질적 문제 많아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에서 상인들이 윤석열 대통령 주재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료쇼핑이 문케어 이전에는 없었고, 또 이번 정부가 끝날 때는 없어질 것 같으냐"고 반문하면서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논의해야 할 것은 논의를 안 하고 지난 정부를 공격하는 데만 힘을 쏟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초음파와 MRI 등과 관련한 재정 절감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게 인구 대비
과잉 공급된 병상이 초래되는 과잉진료다. 한국은 2020년 기준 인구 1천명당 병상이 13.2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4개)의 3배 수준이다. 병원들이 보유한 병상이 많다보니 수익을 내기위해 불필요한 입원이 이뤄지고 이는 건보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
김 교수는 "불필요한 입원이 전체의 3분의 1정도 될 것"이라면서 "
병상 공급을 의료법에 따라 조정하면 진료비(건보 부담금) 약 11조 원을 줄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번 정부 들어 감사원이 문케어로 인한 누수 금액이라고 추산한 2천억 원보다 5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또 진료량을 늘려야 수익도 커지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
민간 실손의료보험의 과도한 보장성 등도 문제로 꼽힌다.
아울러
1차 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자에 대한 적절한 관리를 해줘도 수조원의 건보 재정을 아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의료쇼핑이 보장성 후퇴 이유가 될까
문재인 전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제공
해묵은 의료쇼핑 문제로 보장성을 후퇴시키려는 조짐에 대한 우려가 제기 된다. 역대 정권에서 계속 보장성 강화를 일관되게 추진한 것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 주고, 경제적 약자의 의료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문케어에 힘입어 2017년 62.7%였던
건보 보장률(전체 진료비 대비 건보 부담 비율)은 2020년
65.3%로 높아졌다.
하지만
애초 목표였던 70%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OECD 평균인 80%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추가로 보장성을 확대하려는 기존 계획에 대해 재검토에 들어갔다. 어깨 등 근골격계 질환 MRI 급여화부터 불투명해졌다.
'문케어 뒤집기'를 놓고
의료민영화를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건보 노조는 성명을 내고 "재정안정을 강조하고 공적 책임을 국민들에게 전가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조차도 MRI·초음파·중증질환 일부를 급여화시켰다"면서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는 필연적으로 실손보험과 같은 민영보험 시장을 확대하고, 민간병원의 이윤이 극대화되는 의료민영화가 그 종착지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