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첫 번째 질의자로 나서 조현동 외교부 1차관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이란 적' 발언에 대해 물었다.
우 의원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면서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인가? 이것은 사실에 부합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조 차관은 "대한민국 외교부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특정국가 간의 관계에 대해 설정하는 그런 말씀은 드리기가 조금 어렵다"고 대답했다.
회피성 답변이었지만 4선 관록의 우 의원은 "차관님 말씀이 맞다"고 역으로 의표를 찔렀다. 이어 "특정국가 간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면서 대통령의 잘못을 차관이 인정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연합뉴스4시간여의 이날 회의는 여러 얘기가 오갔지만 윤 대통령의 외교 설화와 관련한 핵심은 사실 이 문답 안에 다 녹아있다.
수세적일 수밖에 없는 여당으로선 직전 외교통일위원장인 윤재옥 의원의 질의가 그나마 최선의 방어 전략이었다.
윤 의원은 먼저 대통령의 UAE 순방 결과를 언급하며 "정말 엄청난 외교적 성과를 냈는데 불필요하게 확대 해석되지 않도록 외교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된다"고 채근했다. 적당히 잘못을 인정하되 성과도 강조함으로써 타격을 최소화하며 빠져나가려 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여당 의원들의 질의는 이런 전략을 일거에 허물었다.
당 비상대책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은 "저는 외교부 차관의 답변도 참 마음에 안 든다"면서 "아랍에미리트 국민들 입장에서 가장 위협을 느끼는 나라가 어디냐? 실질적으로. 이란 아니냐"고 유도성 질문을 했다.
조 차관이 "그렇게 알려져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답변하자 정 의원은 "왜 사실인 얘기를 갖다가 자꾸 빙빙 돌려서 말이지, 전혀 무슨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한 것처럼 그렇게 대답을 하느냐"고 힐책했다.
정 의원은 "아랍에미리트는 안보적으로 불안하니까 소위 우리나라의 국방력(아크부대)을 지금 갖다가 쓰는 것 아니냐. 왜? 이란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도 말했다.
윤 대통령과 달리 '적'이라고 부르지만 않았을 뿐 이란의 위협을 거듭 강조하며 대통령을 엄호한 것이다.
로이터통신 캡처·연합뉴스태영호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갔다. 태 의원은 "아크부대 장병들 앞에서 대단히 상식적으로 이 나라가 이란을 적으로,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으니 현지에서 아랍군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너희들은 너희 임무에 충실하라. 아니, 군 통수권자가 이 정도 발언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국내에서 이 갈등을 만들고 이란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오히려 더 심각한 한‧이란 관계를 해하는 행위"라는 신묘한 논리로 야당과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하태경 의원은 아예 이란을 "진짜 악당 국가"라고 규정했다.
이란 정부가 시위 사태 진압을 위해 강경 대응하는 것을 거론하며 "너희들이 뭐 잘났다고, 우리 한국의 적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잠재적 위협을 우리 한국 장병들한테 (한 것인데) 사실 국내 정무적 발언이다. 그게 외교적 발언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 의원은 "미국도 경우에 따라서는 '로그 네이션'(rogue nation)이라고 한다. 악당 국가라고… (우리도) 그런 점을 좀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며 이란을 오히려 자극했다.
연합뉴스·윤창원 기자이로써 "(윤 대통령 발언은) 이란과의 관계 등 국가 간의 관계와는 무관한 바, 불필요하게 확대 해석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진화에 나섰던 외교부의 노력은 불과 반나절 만에 퇴색했다.
외교에는 초당적 대처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부와 국회의 입장이 항상 일치할 필요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원적, 또는 이중적 대응이 국익에 더 부합할 수 있다.
하지만 제3국을 특정해 사실관계마저 틀린 주장을 해놓고 오히려 당당하려 한다면, 그것은 외교도 국익도 아닌 상식의 문제다. 적반하장 비판이 싫다면 역지사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