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4일 참사 100일 거리 행진' 도중 서울광장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5일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은 오전부터 가족 단위 시민들로 붐볐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다소 쌀쌀한 날씨에 아이들의 볼은 붉게 상기됐지만, 가족과 함께 나온 주말 나들이에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가족·친구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한 스케이트장 바로 옆, 광장 한편에 마련된 핼러윈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날 차려진 분향소엔 참사 희생자 159명의 영정이 놓여 있었고 추모 분위기를 더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스케이트장을 찾았던 시민들도 분향소에 들러 아이들과 함께 헌화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자녀 3명과 함께 스케이트장을 찾았던 임상현(51)씨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게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아이들을 데려왔다"며 분향소 설치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걸 떠나서 일반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게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며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5일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선 주말 나들이를 나온 가족·연인·친구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박희영 기자서울광장 지나던 시민들도 분향소 찾아…"유가족 위로하고파"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분향소를 찾은 박광호(48)씨도 "아이와 서울 구경 왔다가 분향소 있는 것을 보고 들렀다"며 "분향소 설치한다고 완전히 치유되진 않겠지만 (유가족에) 위안이 될 때까지 같이 슬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날을 딱 정해놓고 언제까지만 (애도)하라 그런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전했다.
서울광장에 분향소가 다시 설치된 것은 91일 만이다. 앞서도 이곳에서 참사 직후인 지난해 10월 31일부터 11월 5일까지 분향소가 한시적으로 운영된 바 있다. 핼러윈 참사 99일을 맞은 지난 4일 이곳 서울광장에 합동 분향소가 다시 설치돼 밤늦은 시간까지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서울시는 애초 참사 발생 장소 근처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 분향소를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유가족들은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추모할 수 있도록 광화문광장에 분향소 설치를 원했지만 서울시는 '열린광장' 운영 원칙을 들며 거부했다.
서울시의 시설 보호 요청에 따라 경찰은 광화문광장에 차벽까지 치고 추모행렬을 막았다. 결국 지난 4일 유가족 150여명과 추모대회 참가자들은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출발해 5㎞가량을 행진하던 중 오후 1시 10분쯤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서울도서관 정문 왼쪽에 분향소를 예고 없이 설치했다.
추모객들은 핼러윈 참사 발생에 직접 책임을 져야하는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가 분향소 설치까지 가로막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 은평구에서 분향소를 찾은 박모(69)씨는 "꼭 와봐야 될 것 같아서 방문했다"며 "하루아침에 젊은이들이 간 게 나이 든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서 "너무 답답하다. (유가족들) 마음도 다스려주고 편안하게 해줘야지. 광화문에 분향소 설치하게 해주고 충분히 위로 받게 해주면 그냥 조용하게 할 일을 자꾸 이렇게 복잡하게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뜻을 전했다.
참사 100일째인 이날 오전 최저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며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이따금 추모객들이 분향소를 찾아와 국화꽃을 놓고 숙연한 표정으로 묵념했다. 금방 발길을 떼지 못하고 분향소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 가는 시민들도 보였다.
5일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박희영 기자지방에서 온 시민들도 분향소를 찾았다. 전남 해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고관용(63)씨는 "옛날에 세월호나 이번 참사나 마음에 짐을 지고 있었다"며 "시민의 한 사람이지만 아프고 슬픈 마음에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누군가가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을 지면 유족들이 덜 슬플 텐데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을 안 져서 슬픔을 더한 것 같다"며 "꽃피워보지도 못한 젊은 자식들 보내는 부모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서울시, 강제 철거 통보…추모객들 "광장, 시민 위한다면 공간 내주길"
전날에 이어 참사 100일을 맞은 이날도 시청 앞에는 혹시 모를 충돌에 대비해 경찰 기동대가 곳곳에 배치돼있었다. 서울도서관 입구 쪽에서 분향소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고 채증하는 경찰도 보였다.
서울시가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겠다며 행정대집행을 예고하면서 난로·난방 연료 반입까지 막은 바람에 분향소에서 추모객을 맞는 유족 등들은 난로 1개에 의지하며 매서운 추위를 버텨야 했다.
핼러윈 참사 분향소 설치에 대한 서울시가 보인 일련의 불허-강제 철거 움직임은 오세훈 서울시장 집권 이후 세월호 기억공간에도 일어났던 일이다. 세월호 기억공간은 지난 2019년 4월 광화문광장에 설치됐으나 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이유로 2021년 11월 서울시의회 앞에 임시 이전됐다.
광화문광장은 지난해 8월 재개장했지만 세월호 기억공간은 원래 있었던 광화문광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는 지난해 6월부로 임시공간 운영 기간이 지났다며 단전·단수를 통보하는 등 사실상 철거 의사를 밝힌 상태다.
참사 100일째를 맞은 5일 시민들은 귀가 빨개질 정도로 추운 날씨에도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박희영 기자오후 3시 무렵이 되자 영정 앞엔 시민들이 헌화하고 간 국화가 빼곡하게 쌓였다. 추모객들은 광장에 분향소가 마련돼야 한다는데 대부분 공감의 뜻을 표했다.
예정에 없이 분향소를 찾았다가 영정의 앳된 얼굴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시민도 있었다. 경북 구미에서 서울에 왔다가 분향소를 찾은 이은나(47)씨는 "뉴스에서 보다가 막상 이렇게 돌아가신 분들 사진을 보니까 너무 어리다"며 "가족도 아니고 친인척도 아니지만 저희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가족들 너무 힘드실 것 같다"며 눈물을 닦았다. 이씨는 "서울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참사이고 해결될 때까지는 기억하는 장소가 필요할 것 같다"며 "서울광장이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이런 일이 있을 때도 (분향소로서) 같이 쓸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주말 나들이를 왔다가 분향소에 방문했다는 김신응(57)씨도 "합동분향소에는 처음 왔다. 시청 앞에 마련됐다고 해서 방문했다"며 "허가·승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모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서울시가 전향적이고 긍정적으로 많은 분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내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또 김씨는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뒤로 숨지 말고 떳떳하게 책임지고 처벌받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말했다.
20대 자녀 두 명을 두고 있다고 밝힌 이은자(55)씨는 "내일 분향소를 없앤다는 말이 들려서 꼭 와야겠다는 생각에 방문했다"고 밝히며 "대한민국 엄마로서 도저히 집에만 있기에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서 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분향소를 철거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 같다"며 "오죽하면 여기에 (설치)하셨겠냐"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또 "(참사 당시는)가족행사 때문에 못 갔지만 우리 딸도 자주 찾던 (핼러윈) 행사였기 때문에 남 일 같지 않다"며 "유가족 대표가 (분향소 철거에 항의하며) 휘발유까지 준비했다는 말 듣고 너무 놀랐다. 끝까지 힘내시고 잘 버티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날에 이어 이틀째 분향소를 찾았다는 정해춘(65)씨는 "자녀를 키워본 사람으로선 마음이 좀 심하게 아프다. 이 얘기 하니까 또 갑자기 눈물 나오려 한다"며 "어제 분향소 설치할 때 경찰이 제지를 강하게 하는데, 진행본부 측 아가씨가 밀지 말아 달라고 읍소하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 나도 모르게 앞사람 다칠 수 있으니까 우리 밀지 말자고 주변에 말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사실 녹사평역 지하에는 아는 사람 말고는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광장에 있으면 몇십 년씩 하는 것도 아닌데 지나가던 이들이 한 번씩 들여다보면서 같은 마음 느끼지 않을까"라며 "시민의식이나 민주사회가 자리 잡는데 진일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 나온 유가족들 "널리 알려 하루빨리 진실규명·일상회복 하고파"
하루빨리 참사의 아픔을 딛고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은 이들은 다름 아닌 참사로 가족·친구를 잃은 이들일 것이다.
친구를 잃은 박혜림(29)씨는 "하늘에 간 친구들 좀 제발 편안하게 갈 수 있게끔 도와주면 좋겠다"며 서울시의 분향소 철거 강제집행 예고에 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분향소를 꼭 마련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많은 사람이 잊지 않고 유가족을 생각해서 많이 와주시고 좀 더 많이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며 광장에 분향소가 설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 5일이 생일인 한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가 딸의 사진을 쓰다듬고 있다. 박희영 기자참사로 자식을 잃은 50대 남성 이모씨는 "100일이 지나도록 어느 누구, 대통령이나 책임 있는 사람의 공식적인 사과도 없었고, 국정조사를 했는데 밝히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아 유야무야됐다"며 "저희 유가족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진실규명이 돼야한다. 후련하게 자기 원위치로 가고 싶다. 모든 분이 신경 써주셔서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많은 분께서 알아주십사 시청에 분향소를 설치했다"며 "하루속히 (진실규명이) 마무리되면 좋겠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