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행정안전부. 연합뉴스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법무부가 수사준칙 개정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행정안전부가 여기에 일부 반대하는 검토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준칙 개정을 놓고 법무부의 협상 카운터파트인 행안부가 사실상 경찰 손을 들어주면서 검찰의 수사 권한을 확대하려던 법무부의 수사준칙 개정 추진 행보에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법무부 '경찰 수사종결권' 무력화에 행안부 "조문 삭제 필요"
6일 CBS노컷뉴스가 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개정안'(수사준칙 개정 초안) 행안부 검토 의견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가장 먼저 문제를 삼은 부분은 역시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검찰의 사건 송치 요구 관련 부분이다.
현행법상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하기로 결정할 경우 검사는 한 차례만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만약 검사가 재수사를 요청한 이후 경찰의 사건 처리 과정에서 명백한 법리 해석의 오류나 위법 등이 없으면 검사가 경찰에 다시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없다.
하지만 법무부가 작성한 수사준칙 개정 초안에는 '재수사 요청에 대한 수사가 전부 또는 일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검사는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검사가 언제든 경찰이 종결한 사건을 다시 수사할 여지를 대폭 강화한 셈이다.
이에 대해 행안부는 검토 의견을 통해 "중대한 사유에 한하여 활용하기 위해 규정된 송치요구가 검사의 판단에 따라 늘어날 소지가 있어 '예외적 규정'의 한계를 벗어나고 재수사 요청 사안에 대한 재조사 여부 및 방식은 사법경찰관 재량이라고 판시한 판례(대전지법 2021노3842)와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수사 요청의 운용실태를 보면, 형사소송법상 요건과 같이 '불송치가 위법.부당한 경우'보다는 사건이나 서류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한 재수사 요청이 많은데, 이와 같이 불송치 결정 내용과 근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안에 대한 재수사 요청의 '일부' 불이행까지 송치요구를 할 수 있다면 사실상 송치 여부를 경찰이 아닌 검사가 결정하는 것과 같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법무부) 개정안과 같이 송치요구 요건이 불명확하게 확대된다면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언제든 취소될 수 있어 법적 안정성이 약화되고, 수사 기간이 연장돼 국민이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며 "해당 조문은 삭제가 필요하며 최소한 국민의 예측 가능성을 위해 보다 구체적인 규정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조문 삭제'를 주장했다.
"협력 아닌 수사지휘"…선거법 수사도 이견
황진환 기자 또 경찰이 공직선거법 관련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 3개월 전까지 수사 사실을 검사에 알려야 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행안부는 대립각을 세웠다.
관련 조항은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검찰이 개입할 여지를 대폭 키우는 내용이어서 경찰청에서도 일찌감치 반대 의견을 낸 상태다.
행안부는 검토의견에서 "사실상 일방에만 의무를 부여하는 것으로, '협력'이 아니라 구법상 '수사개시 통보' 내지 '송치 전 수사지휘'와 다름없어 상위법인 형사소송법의 개정 취지에 위배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이어 "(해당 조항은)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며, 삭제가 어렵다면 추가 논의를 거쳐 최소 1개월 등 기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의신청 사건, 檢 직접 해야'…경찰 숙원도 들어줬다
스마트이미지 제공행안부는 또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으로 검찰로 넘어간 사건은 검사가 다시 사건을 경찰로 내려보내지 못하도록 의견을 개진했다.
현행 제도에서는 경찰이 불송치 결정한 사건에 대해 고소.고발인이 이의신청을 하면, 해당 사건은 검찰로 넘어가게 된다. 이의신청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이 1년에 2만 7천여 건인데, 이 중 33%(약 8900건) 정도는 보완수사 지시 형식으로 다시 경찰에 내려오고 있다.
행안부는 검토 의견을 통해 "이의신청은 경찰수사에 대한 불복 절차이자 외부적 통제 장치"라며 "경찰 수사결과에 대한 불복 의사를 밝혀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었음에도 경찰에 다시 사건을 보내서 보완수사를 요구할 경우 당사자인 국민의 의사에 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수사기관 간 사건 떠넘기기로 인식하므로,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하기 보다는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경찰 의견과 궤 같이한 행안부, 법무부 초안에 제동 걸리나
이러한 행안부의 검토 의견은 앞서 경찰이 법무부 수사준칙 개정 초안에 제출했던 검토 의견과 매우 유사하다.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보호하고, 공직선거법 수사에 대한 검찰의 개입 강화 시도에 대한 반대, 그리고 이의신청으로 송치된 사건에 대한 경찰 보완수사 요구 최소화 등은 모두 경찰이 검토 의견으로 법무부에 제출했던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행안부가 사실상 경찰의 손을 들어주면서 윤석열 정부 들어 강도 높게 추진됐던 법무부의 수사준칙 개정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수사준칙 개정과 관련한 협상의 주체는 법무부와 행안부이기 때문에 두 부처가 합의하지 않으면 수사준칙을 개정할 수 없다.
법무부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인 지난해 6월부터 경찰과 검찰, 해양경찰청 및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책임수사시스템정비협의회를 열고 수사준칙 개정 작업을 진행해 왔다.
민주당 이형석 의원은 "지난해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 당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청의 의견을 거의 묵살하다시피 했었다"면서 "이번 수사준칙 개정은 법무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 간의 협의 결정사항인 만큼 행안부가 경찰청의 검토의견을 적극 수용해 법무부와 협의에 나설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