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서 낙태권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50여년간 미국 여성의 낙태권을 임신 6개월(약 22~24주)까지 인정해온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례가 폐기된 지 만 1년이 지났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년 전 이맘때 쯤 1973년에 내려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번복하고 각 주가 자체 입법을 통해 낙태 문제를 결정하도록 했다.
이에 보수 성향의 주지사가 있는 주(州)에서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냈다. 실제로 미국의 50개주(州) 가운데 절반인 25개주가 곧바로 낙태 제한 입법을 할 정도였다.
말 그대로 이 이슈에 대한 찬반으로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있어, 낙태권 문제는 내년 11월 차기 대선에서도 핵심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낙태권을 바라보는 시각은 민주·공화 양당이 천지 차이지만, 이를 다가올 대선에 표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마음은 양측이 똑같다.
민주당은 패배가 예상됐던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나름 선전을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낙태권 이슈'라고 보고, 계속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갈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로 대 웨이드' 판례가 깨진 지 만 1년이 된 지난 24일(현지시간) "공화당 의제는 극단적이고 위험하며 대다수 미국인 뜻과 다르다"면서 "정부는 계속해서 낙태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공화당은 '낙태권 제한'을 우파 세력 결집은 물론,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확산시켜 중도층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이용한다는 전략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4일 '신앙과 자유 컨퍼런스'에서 "우리는 낙태권을 폐지했다"며 "태어났든 태어나지 않았든 모든 아이는 신의 신성한 선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6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시계를 2008년으로 되돌려 봐도 '낙태권'에 대한 민주·공화 양당의 입장은 지금과 같았다.
당시 미 대선 민주당 후보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은 릭 워렌 목사가 주최한 좌담회에 나란히 참석했다.
워렌은 두 후보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태아는 언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게 됩니까?"
이에 오바마는 "저는 그것을 알 위치에 있지 않다"고 즉답을 피해간 반면, 매케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수정된 순간이다"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생명 기원의 시점이 어디인지에 대해 단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보다는 임신한 여성에게 인생 최대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출산·낙태의 선택권을 보장해야한다고 말한 것이다.
반면, 매케인은 여성의 몸에서 수정이 이뤄지는 순간부터 인간으로서의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고 낙태는 엄밀히 말해 살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1969년 텍사스주 댈러스에 살고 있던 노마 매코비가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제기해, 1973년 대법원으로부터 7대2의 위헌 판결을 받아낸 데서 유래했다.
남편과의 이혼 뒤 세 번째로 임신을 하게 된 매코비는 낙태를 원했지만, 당시 텍사스주 법률은 강간이나 근친상간 등에 의한 임신, 임부의 건강이 위협을 받는 이례적인 경우 외에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었다.
이에 매코비는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으로 당시 댈러스 지방 검사 '헨리 웨이드(Henry Wade)'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로 대 웨이드'의 이름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당시 대법원은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명시된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고 봤다.
지난해 6월 24일(현지시간) 낙태권 보장 판례를 뒤집은 미 연방대법원 판결 직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주의사당 건물 근처에서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매코비는 소송에서 승리했지만 판결의 결과로 얻어낸 낙태의 권리를 행사할 기회는 놓치고 말았다. 소송 제기부터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려 4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후에 매코비는 비록 자신은 낙태를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통해 낙태의 전국적인 합법화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데 대한 후회 등으로 인해 결국 낙태 반대 운동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한편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폐기된 것은 현재 연방대법관 9명중 6명이 보수 성향 판사라는 점에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대법원 구성에서 보수 성향이 압도 우위가 된 것은 트럼프 정부 들어서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 '낙태권 판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실제로 당선 뒤 보수 성향 판사 3명을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