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전문가들이 최적 노선에 대해 검토한 고속도로입니다. 과학과 기술이 거짓 선동에 굴복하고 상황이 끝나버리는 사례를 다시는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해 '일타(1등 스타) 강사' 유튜브 방송에서 한 말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도 '전문가의 과학적 의견'으로 사태가 정리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학'적 근거에 의한 최적의 노선안을 검토했다는 취지로,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의혹에 대해서는 '비과학'적 의혹 제기로 일축해 왔다.
그의 말대로 국토부가 변경안(강상면안)이 최적이라고 판단한 과학적 근거는 설명자료에 적힌 '교통량 많고, 환경 훼손이 적으며, 강하IC 설치가 가능한 합리적 대안'이라는 게 핵심이다.
CBS 노컷뉴스는 그동안 국가 싱크탱크인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2년간 예비타당성조사(예타)로 도출한 노선안이 본사업 타당성조사(본타) 시작 후 단 50일 만(과업 공정표 기준 20일 만)에 종점이 바뀐 과정이 석연치 않고 그로 인해 본래 사업목적도 무색해졌다는 점 등을 지적해왔다.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 제기가 과연 비과학적인 것일까. CBS 노컷뉴스는 지난 21일 연구용역 분야에서 일명 '선수'로 알려진 전문가 3인의 과학적 견해는 어떤지 들어봤다. 특히 이들 가운데 2명은 실명으로 국토부가 제시한 '강상면 종점안'을 정면으로 조목조목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발언 원문을 중심으로 싣는다.
착수보고 때 '대안 노선 제시?'…"흔치 않은 일"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일대. 연합뉴스첫째는 본타 연구의 착수 단계에서 민간 설계사가 발주처인 국토부를 상대로 예타안을 뒤집은 '대안 노선'을 먼저 제시하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반적이지 않다"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18년간 국책과 민간 사업을 망라해 연구용역을 수행해온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빅데이터연구소장)의 얘기로 시작한다.
"예타안이 있는데 24억 원 규모의 연구용역 착수보고회 때 대안 노선부터 내놓는다? 발주처(국토부)에게 '너희가 기존에 잘못 했어'라고 말하는 것인데, 어떤 용역업체가 그렇게 하겠는가." (우석진 교수) '그럴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 않나'라는 반문에도 단호했다.
"미리 힌트를 줬거나, 업체 선발 과정에 경쟁 PT(발표)를 하면서 안을 미리 준비했다면 가능할 수는 있겠다. 그렇더라도 대안을 들고 있다가 중간보고 때쯤 얘기를 꺼내지, 착수 시점부터 이게 더 낫다고 제안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른 예타 선수들도 똑같이 말하더라." (우석진 교수) '설계사가 현장 문제점을 발견해 변경안 검토를 제안했다'는 국토부 해명에도 의문을 던졌다.
"처음 제기된 문제가 아니었다. 예타에도 (종점부 구조물 설치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현장을 가보니 페이퍼(문서)와 상황이 다른 것을 문제제기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변화 폭이 큰) 특별한 대안이 불쑥 나오는 것은 업계에서 상식적이지 않다.
예타안은 사람들의 '욕망이 응축된 안'이다. 여러 기관들이 잠정 합의를 본 것이다. 특정 대안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은 (충분히) 스터디를 해야 할 사안이다. 본타 과업지시서에 적힌 '대안 노선 검토' 내용은 늘 그런 것(정형화된 양식 문구)이다. 문제가 생기면 대안을 만들라는 의미다. 노선이 휘거나 시종점도 바뀔 수 있다. 대신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먼저 바꾸고 근거를 만드는 순서는 (보수적인) 공무원 세계에서 받아주기 힘들다." (우석진 교수) '서울-양평 고속국도 타당성 조사(평가) 용역 과업지시서' 내 예정공정표. 예정대로 2개월 차부터 노선선정을 검토했다면 대안 노선을 제시하는 데 20일도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문서 캡처30년차 베테랑 공학박사인 이찬우 한국터널환경학회장과 익명을 요청한 설계 연구용역 분야의 A박사(연구위원)도 '업체 제안'으로 고속도로 노선 방향이 급변한 데 대해 고개를 저었다.
"일부 방송 패널들이 10여 년간 종점부 변경 건수가 '네 건이나 있다'고 말하던데, 중요한 것은 '네 건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가 수백 건 있을 텐데 거의 없다는 뜻이다. 통상적이지 않은 형태다. 국토부 의견 없이 제안됐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 민원, 교통량 조사, 공사비 등이 구체적으로 다 나온 뒤에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찬우 학회장)
"누가 예타안을 흔들어 본타로 갔느냐를 놓고 '내가 했다'고 손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용역사는 철저한 '을'로서 발주처의 기술적 과제를 받는 것이지, 스스로 중대한 결론을 못 낸다. 도장 찍어주고 돈 주는 사람이 '갑'이다. 이쪽(강상면쪽)으로 검토해달라고 요구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느 쪽(기관)도 흔적을 남기기 싫어했을 것 같다." (A 박사) "비용, 편익 분석 없이 '환경'부터 고려?…통상적이지 않아"
이런 맥락에서 서둘러 제시된 변경안의 주요 근거 중 하나였던 '환경 훼손 최소화'라는 명분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본타 시작 단계였는데, 전략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야 할 환경문제를 앞세워 예타를 뒤집는 것 자체가 "통상적이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엔 (예타안 종점) 교량의 환경 훼손 우려를 종점 변경 이유로 내세우더니, 나중에는 양평군민 민원(예타안 JCT 설치 반대 및 강하IC 요구)때문이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본타에서 교통량 조사, 공사비 책정 등이 대략적으로라도 나와야 시종점이든 세부 노선이든 바꿀 수 있다. 공사비도 안 나왔는데, 단지 상수원보호를 이유로 원안을 뒤집는 게 말이 되나." (이찬우 학회장) 사업 절차마다 과업의 '우선순위'와 '기준점'이 정해져 있는데, 이를 뛰어넘어 '비합리적'으로 노선 변경이 이뤄졌다는 판단이다.
"타당성조사는 철새 도래지나 수질 보호 같은 게 중요한 연구 대상이 아니다. 과업 목표가 공사비 검토, 교통량, 민원 이런 부분들이다. 전략환경영향평가라는 별도 절차가 있지 않나. 용역 범위가 정해져 있는데 내용의 깊이도 없는 상태(착수 시기)에서 상수원보호구역을 피해, 환경 훼손 지역이 적은 강상면으로 종점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을 했다는 게 납득하기 힘들다. 전략환경영향평가도 과업 기준이었던 양서면 종점의 원안이 중심이 돼야 한다. 시점부에서는 남한산성 도립공원을 터널로 관통한다. 이 부분은 안 바꾸면서 터널 많아져 비용도 늘어나는 종점 변경안을 들고 나왔다. 본타에서 중요한 요소인 비용을 뒤로하고 환경 사유를 강조하면서 대안 노선의 당위성을 주장하면 누가 이해할 수 있겠나.
예타안으로 했을 때 적어도 터널 측면에서는 환경적으로 문제될 것도 없다. 또 다른 (사업들의) 교량들도 상수원보호구역 관통하는 경우 많다. 어떻게 환경 영향 줄여서 할지 검토하면 될 일이지, 갑자기 이를 이유로 종점을 트는 건 기형적이다. 상수원 보호 같은 환경 문제에 대한 방안 논의는 실시설계 과정에서 나오는 게 통례다." (이찬우 학회장) 그럼에도 환경문제가 부각된 이유에 대해서는 우 교수가 비교적 간단하게 풀이했다.
"타당성조사의 BC(비용 대비 편익)는 이미 나왔어야 했다. 작년 3월 말 용역 착수 후 수행기간이 1년이다. 벌써 1년이 훨씬 지났지 않나. (공개는 안 됐지만) BC가 아마 나와 있을 것이다. 그 BC 값이 잘 안 나올 것이기 때문에 환경영향 부분을 강조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우석진 교수) "본래 사업목적 적용 시 '변경안 BC', 예타보다 상당히 내려갈 것"
서울-양평 고속도로 추진 재개 범군민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지난 10일 오후 경기 양평군청 앞에 사업 재개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박종민 기자우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국토부가 변경안의 BC에 대해 '자신이 없어 제시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변경안의 근거가 객관적(과학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이유다.
이에 대해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의 당초 '사업목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이를 적용하면 변경안의 BC 값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예타 결과 보고서 전반에 명시된 주요 사업목적은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국도6호선·서울-춘천 고속도로 교통정체 완화'다. 예타안의 BC는 0.82다.
"변경안에 따르면 아마 BC가 0.6도 안 나올 수 있다. 본타 착수 시기는 BC 조사를 새로 할 수 없었던 시점이었다. (변경안의) 비용은 광주산맥이 있어서 터널도 더 많이 뚫어야 하고, 계곡과 계곡을 넘어가는 교량도 더 많이 넣어야 한다. 몇 번 수정을 거쳐 상당히 많은 교량과 터널이 만들어지는 변경안이 됐다. 1㎞에 하나씩 만들어지면 비용은 확실히 늘어난다." (우석진 교수) 비용 증가는 물론, 근본적인 사업목적을 기준으로 한 '편익'의 변화도 변경안 추진의 근거에 객관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국토부는 강상면 쪽으로 가서 강하IC를 만들면 이용 차량이 늘어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고속도로 편익의 주된 내용은 '서울에서 출발하는 차량이 두물머리(6번 국도) 쪽으로 갔을 때 얼마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느냐'다. 기존 양서면 쪽으로 가는 노선은 하남에서부터 고속도로를 거의 직선으로 뽑았다. 예타 때 편익을 극대화하려던 것이다.
반면 강상면으로 가게 되면 돌아가게 된다. 통행시간이 늘어난다. 27㎞였던 게 29㎞가 되고 거기서(강상면 종점에서) 내려 두물머리 쪽으로 가려면 한참 더 (중부내륙고속도로, 제2순환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거의 10㎞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편익이 제대로 나올 수가 없다. 비용은 늘어나고 편익은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예타 BC보다 상당히 내려갈 것이다." (우석진 교수) 지난 10일 발표된 국토교통부의 서울-양평 고속도로 현안 설명자료. 문서 캡처"당연히 BC는 떨어진다. 사전타당성조사(예타 이전 단계)를 한국도로공사에서 하는데, 가장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예타 통과를 위해 BC가 잘 나오는 돈이 적게 드는 노선안을 만들었을 것이다. 예타 보고서 보면 하남 쪽 상사창IC를 내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눈물겹게 BC를 올려주기 위해 쥐어 짠 것이다.
그런데 BC를 올리는 데 있어서 양평군 쪽(교통 수요 등)은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양평에 노선을 늘이든 IC를 만들든 BC를 떨어트리면 떨어트렸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요소다. 양평군민을 위해 노선을 지금처럼 바꾸는 것 자체가 BC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의미다." (A 박사) '변경안으로 양평 주민들이 얻는 편익을 무시할 순 없지 않나'라는 반박에 대해서는 국책사업으로서 수도권 전체를 놓고 분석해야 사업목적에 부합한 편익을 산출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두물머리를 염두에 두고 6번 국도 정체 해소하려던 것 아닌가. 6번 국도로 갔을 때 걸리는 시간하고, 고속도로 탈 때 걸리는 시간과의 차이만큼 이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 사업의 주된 흐름은 이것(두물머리 방향 정체 해소, 이동시간 단축)이다. 이를 기대하던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이용객들의 편익이 줄어들고, 양평군민들이 서울로 오고 갈 때 중간에서 빨리 타니까 그 편익은 늘어난다. 하지만 양평군민이 12만여 명이지 않나. 이 편익이 늘어나봐야 (서울에서 몰려드는 두물머리 쪽 차량 감소 기대분을) 상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인구하고 양평군민 중 (강상면 종점안으로) 혜택 보는 사람들하고 비교해 보면, 전체 편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석진 교수) "변경안은 전혀 다른 노선… 예타 다시 하면 통과 쉽지 않아"
결국 국토부의 변경안은 '전혀 다른 성격의 노선 계획'이라는 진단이 뒤따른다.
이로 인해 BC와 함께 기존 예타의 최종 결과치인 AHP(정량, 정성 평가 종합 결론 수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 예측이다. AHP의 사업추진 적합도 기준은 0.5로, 예타 당시 이번 사업의 AHP는 0.508이다.
특히 A박사는 노선 방향성이 바뀌었는데,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한 기존 예타 결과를 변경안 추진의 명분으로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여러 해명을 내놓으면서 '예타는 이랬지만, 본타는 이렇게 가겠다'고 하고 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게 두 안이 전혀 다른 노선이다. '예타 통과 됐으니까 그냥 이렇게 가겠다'는 식으로 해 놓고, 본타에서 예타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IC도 달라지는 등 사업이 크게 변화된 상태에서 BC 조사 다시 하고, AHP 다시 돌리고 해서 예타를 다시 진행 한다면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A 박사)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사업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 표지. 문서 캡처
문제는 현행 법률로는 예타를 다시 진행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국가재정법상 총사업비가 10~20% 이상 늘거나, 수요가 30% 떨어지지 않는 한 재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는 타당성 재조사 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만큼, 관련 법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지목됐다.
"'교통존'이라는 게 있다. 사업 영역 구간을 세분화해서 종점 구간 중 일정 수준을 벗어나면 같은 노선이라고 여기지 않는 개념이다. 시종점이 바뀌면 예타를 다시 받으라는 규정이 필요하다. 법으로 사업비와 수요 달라지는 것만 재조사 기준으로 규정한 게 근본 문제다.
법개정을 해서라도 도로의 경우 '시종점'과 'IC' 등 본질적인 부분이 달라질 경우, BC를 다시 산출해서 예타 범위 안에 있으면 그대로 가고, 이를 벗어나면 예타를 다시 받도록 해야 된다." (A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