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청구가 기각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5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의 자택을 나서며 수해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논란으로 청구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이 기각됐다.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및 품의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는 별개의견을 제시한 재판관들도 법 위반의 중대성 측면에서 파면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25일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국회의 탄핵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69일 만이자 국회가 탄핵 소추를 의결한 지 167일 만이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재난대응기구의 설치·운영 및 재난관리 총괄·조정 등에 관한 재난안전법과 공무원의 성실의무 등을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그러면서 "피청구인이 재난관리 주무부처의 장인 행정안전부장관으로서 재난대응 과정에서 최적의 판단과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재난대응의 미흡함을 이유로 그 책임을 묻는 것은 규범적 심판절차인 탄핵심판절차의 본질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행정안전부의 장이므로 사회재난과 그에 따른 인명 피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도 "이태원 참사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하고 확대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주최자 없는 축제의 안전관리 및 매뉴얼의 명확한 근거규정이 마련되지 않았고, 각 정부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대한 통합 대응역량을 기르지 못한 점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규범적 측면에서 그 책임을 피청구인에게 돌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입장을 밝히는 도중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헌재는 △사전 예방조치 △사후 재난대응 △사후 발언 등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 모두에서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헌법과 법률 위반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우선 "피청구인은 재난안전법상 안전관리계획 수립 대상 축제 중 대규모·고위험 축제에 대해 미비점 개선·보완 요청 등을 했다"며 "다중밀집사고 자체에 대한 예방·대비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장관이 재난안전통신망을 사전에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재난안전통신설비의 신규 도입·교체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며 "구축·운영의 책임과 사용의 책임은 구분되므로 미흡한 사용이 있었더라도 피청구인이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사후 재난대응 조치와 관련해서는 이 장관이 중앙재난안전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바로 설치하지 않았다는 국회 측 탄핵 청구 사유에 대해 " 실질적 초동대응이 우선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 현저히 불합리해 사회적 타당성을 잃은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정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의 대표 직무대행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 방청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황진환 기자헌재는 "피청구인은 참사 현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관계 기관의 보고를 받고 지시 및 협력 요청을 계속했다"며 "공적 신뢰를 현저히 해할 정도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했다거나 유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마지막으로 참사 원인이나 '골든타임'과 관련한 발언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는 것으로 부적절하다면서도 "국민의 신뢰가 현저히 실추됐다거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재난 및 안전관리 행정의 기능이 훼손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탄핵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장관의 사후 대응과 발언에 대해서는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및 품위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는 별개의견이 나왔다. 이 장관은 국회 상임위에서 참사 관련 질의에 대해 "지휘 권한이 없다"거나 "도의적이나 정치적인 책임은 있을 수 있으나, 법적 책임은 당연히 없다"고 했고, 현장에 늦게 도착한 것에 대해 "이미 골든타임이 지났다"고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3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 후 이동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이 장관이 참사 직후인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11시 20분경 첫 보고를 받은 뒤 두시간이 더 지난 뒤에야 현장지휘소에 도착한 점을 꼬집었다.
이들 재판관은 "성실한 업무수행을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긴급 상황에서 재난 안전관리 조정 책임자에게 기대되는 모습으로 기대되는 모습도 아니다. 평균적 공무원 시각에서 보더라도 상식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정정미 재판관은 이 장관의 일부 발언에 대해 "공직자가 하는 말의 무게는 그가 가진 권한의 크기에 비례한다"며 "피청구인의 발언은 다시는 참사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것인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태도라기보다 참사 책임 회피에 연연하는 것으로 보이는 언행"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 네 명의 재판관들도 이 장관의 사후 대응과 발언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와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것이지만 법 위반행위가 중대해 파면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