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근 상병은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연합뉴스 고 채수근 상병 사건을 둘러싼 해병대의 '항명' 파동이 일파만파 커지자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개인정보 공개 의사까지 밝히며 공세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신 차관은 10일 자신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 사건 처리 방향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포렌식이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문자 메시지의 존재 여부는 그 자체로는 중요하진 않지만 이번 사건의 진실공방을 가릴 단초가 될 수 있다. 거짓으로 판명되는 쪽은 모든 주장의 신빙성에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보직해임 된 박 대령은 11일 2차 수사를 앞둔 상황에서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김 사령관이 신 차관에게 받은 문자 메시지를 읽어주며 사건 처리 방향을 압박했다고 주장해왔다.
박 대령이 앞으로 문자 메시지의 존재를 어떻게 입증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객관적이고 투명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의혹이 여전히 남을 공산이 크다.
휴대폰 포렌식이라도 하겠다지만…풀리지 않는 '항명' 의혹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신범철 국방부 차관. 연합뉴스 사실관계 입증이 그나마 쉬운 문자의 존재 유무와 달리, '명시적 지시' 여부와 이 과정에서 특정인의 혐의 삭제 요구 같은 사실관계는 더욱 가려내기 어렵다.
신 차관은 10일 출입기자단과 국회를 잇달아 접촉해 적극 해명했지만 의혹은 풀리지 않고 오히려 커진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것은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간단한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장관과 차관이 해병사령관에 수차례나 연락을 취한 이유가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종섭 장관은 지난달 31일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앞두고 해병사령관에게 전화 지시를 한데 이어, 이날 서울에 온 해병 부사령관을 불러서도 지시를 거듭 전달했다.
이 장관의 출국 뒤에는 신 차관이 바톤을 이어받아 31일과 1일 해병사령관에게 3차례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점검했다.
이와 별도로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과 사건 처리를 놓고 수차례 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언성을 높이며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이첩 보류' 지시할 것이라면 수차례 전화할 필요 있었나
연합뉴스주목할 점은 장관, 차관, 법무관리관이 한결같이 혐의 삭제 등의 지시나 요청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법리적으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니 경찰 이첩을 중단하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수사기관의 장에 대한 일반적 지휘만 할 뿐 사건에 구체적 명령을 내릴 수 없도록 한 규정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자칫 직권남용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지난 4일 언론공지에서 "장관이 조사 결과의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하면서 '특정인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신 차관도 10일, 출장 중인 장관 지시를 따른 것이라면서 "법리적으로 복잡하니 (장관이) 오시면 판단하자는 것" 외에 다른 내용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첩 보류 지시가 목적이라면 이틀 사이에 3차례나 해병사령관과 통화할 이유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군에 명령을 하달해놓고도 혹시 이행되지 않을까 미리 염려해 장‧차관이 나란히 노심초사했다는 얘기인데 객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실제 통화에선 또 다른 이야기도 있었고, 이를 놓고 상당한 잡음이 있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해병대가 지금까지 수사를 진행해온 것을 보고하고, 그것을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을 보면 왜 3번 통화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매한 설명이지만, 이는 박 대령이 국방부로부터 '혐의 내용과 죄명 등을 빼라'는 지시를 수차례 받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에 대한 방증이 될 수 있다.
"특정 혐의 빼라" 朴대령 주장 뒷받침 방증…맞다면 직권남용
또 다른 쟁점인 '명시적 지시' 여부도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있다. 주관적 판단의 여지가 큰 만큼 양측이 팽팽히 맞설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구두명령인 만큼 근거도 남아있지 않다.
박 대령 입장에선 실체가 뚜렷한 명령(7월 30일 결재 보고서)이 있음에도 애매한 구두명령을 따랐다가 자칫 혼자 덤터기 쓰는 상황을 우려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는 그에게 씌여진 항명 혐의와도 관련 있다. 김병주(예비역 육군 대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일 신 차관의 보고를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나 '명령 불복종'과 '지시 불이행'의 차이를 거론하며 맹점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통상 군에서는 지시 불이행이면 징계 정도 사유로 간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항명으로) 조사하는 것은 뭔가 축소 은폐한다든지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