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안전한 교육환경을 위한 법 개정'을 촉구하며 서울 종각역 부근에 집결한 교사들. 우중에도 3만 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 '아동복지법 개정' 등을 당국에 거듭 요구했다. 이은지 기자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으로 촉발된 교원들의 '교권 보호' 촉구 집회가 4주째 이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서울 도심에 집결한 3만여 명의 교사들은
정당한 교육활동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입법 조치를 정치권과 교육당국에 거듭 요청했다.
12일 오후 2시 서울 종각역과 을지로입구역 일대에서는
교사 약 3만 5천 명(주최 측 추산)이 모인 가운데 '안전한 교육환경을 위한 법 개정 촉구 집회'가 열렸다. 앞서 지난달 18일 서이초에서 근무하던 2년차 담임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토요일마다 개최된 4번째 집회다.
집회 1시간여 전부터 종각역 및 청계천 부근에 집결하기 시작한 교사들은 검은 상복 차림에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침부터 이어진 빗줄기에도 우비를 위에 덮어쓴 채
앞뒤로 '아동복지법 개정', '생활지도권 보장'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속속 모여 앉았다.
그간의 집회가 주로 서이초 사건 관련 진상 규명과 학교 현장에서 겪는 교권 침해사례 공유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날 집회는
작금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전국 교사 일동은 "교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르쳐야 하고, 학생은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하지만
교사의 말 한 마디, 눈빛 하나가 학생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고 관리자나 교육청, 교육부 누구 하나도 교사를 보호해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숨진 교사 A씨 등을 추모하며 묵념 중인 집회 참가자들. 이은지 기자이들은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과 함께 교사의 생활지도권이 법적으로 보장돼야 실질적 교육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과 아동학대처벌법, 아동복지법('정서적 학대' 관련 제17조 5항), 교원지위법 등 관련 법안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금 선생님들은 생활지도에 있어서 손발이 묶인 상태로 자기 자신도, 다른 학생들도 보호해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교사 스스로와 모든 학생을 보호해 평화로운 학급을 만들 수 있게 교사들의 묶인 손발을 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선행 집회들이 특정 단체와 무관하게 교사 개개인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된 반면, 이날은
6개 교원단체들(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사노동조합연맹·전국교직원노동조합·새로운학교네트워크·실천교육교사모임·좋은교사운동)이 함께 공동결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 단체는 "눈앞의 한 사람을 사람으로 길러내는 '교육'을 하고 싶다는 전국 50여만 교원의 깊은 바람을 이어받아 각 단체가 결성된 이래 처음 한 자리에 모였다"며
"모든 교사들이 더 이상 가르치는 일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업무를 처리하는 행정보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을 우선할 수 있도록, 갑질과 민원이 아닌 소통의 학교를 만들기 원한다"고 밝혔다.
국회와 정부, 교육당국에 4가지 요구안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즉각 개정할 것 △교사가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민원창구 일원화 및 악성 민원방지 방안 마련 △교육권 침해 학생은 수업에서 즉각 분리할 것 △학급에서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정서행동 위기학생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할 것 등이다.
서이초 사건 이후 해당 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온 학생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고등학생인 A양은 "이번 교육권 침해 문제는 선생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저희 또한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라고 말했다.
A양은 "교사를 꿈꾸던 저는
현실을 깨닫고 교사라는 진로를 포기했다"며 "몇 년 동안 잠도 자지 않고 공부해 힘들게 사범대에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을 받았는데 이번 사태와 교실붕괴 현상을 보며 쌓아 온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문제행동을 보이는 동급생에게 주의해 달라는 말을 했다가 우산으로 찔리는 보복성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며 "교육권을 침해하는 학생을 교실에서 분리시키지 못하면 언제든 더한 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2일 서이초 사건 등은 교사들만의 '교육권 침해'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도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받은 '피해자'라고 발언 중인 고등학생 참가자. 이은지 기자
B양 역시 "어느 수업시간에 몇몇 학생들이 선생님의 이름을 친구 부르듯이 함부로 부르고 선생님의 특정 신체부위를 가사로 한 노골적 노래를 불러도 (선생님은) 웃어 넘기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말로 주의를 주면 정서적 학대, 제지를 하고자 학생의 손을 잡으면 물리적 학대를 했다고 낙인이 되는 세상에 선생님들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겠나"라며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그날 선생님께서 조롱당하시는 모습을 보며 무기력해졌고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고 돌이켰다.
이들은 "교사와 학생 모두를 위해 실효성 없는 분쟁조정위원회, 교원 역량강화 연수원 정책, 무조건적인 학생인권 탄압이 아닌
교육권 침해 발생 시 문제 학생의 즉각적인 분리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통해 교육 현장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가 아님을 명시해 달라"며 "또한
대책 마련 시, 교권과 학생인권이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닌 '공생관계'임을 확실히 해 달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국 교육대학교 총동창회 협의회와 전국 교대 교수협의회 연합회, 서울초등수석교사회 등도 교사와 학생 모두의 수업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정비와 지원책이 시급하다며 비슷한 취지의 성명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