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을 두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전하는 게 타당하다"는 정부 측 입장을 밝혔다. 홍 장군의 '공산주의 전력'을 문제 삼은 국방부에 국무총리가 직접 손을 들어주면서 정부 전체의 입장으로 해석하도록 공간을 열어준 셈이다. 홍 장군 논란에 내심 '선 긋기' 바랐던 여당 측의 속앓이는 계속되고 있다.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한 한 총리는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의 관련 질의에 "육사에서 사관학교 정체성이나 생도 교육에 부합하도록 교내 기념물 재정비 계획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타당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반드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우리 헌법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초 육사와 국방부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논란에 관해 공식적인 행정부 차원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날 폴란드 국제방산전시회 관련 일정으로 출국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자리에 없었지만, 한 총리의 답변으로 이것이 국방부 측에 국한한 판단은 아니란 점이 부각됐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역시 이날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을 통해 이와 유사한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흉상 이전이 "적재적소의 재배치 문제"라고 일축하면서 "처음에 설치될 때 국민적 합의나 육사, 국방부의 의견을 제대로 들은 건지, 아니면 지난 문재인정부 때 밖에서 강하게 '푸시'한 것인지 논란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정부가 홍 장군에게 훈장을 중복 서훈했다는 문제도 거론했다.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에 나온 조태용 국가안보실장도 방침을 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육사 생도들의 사표가 될 수 있느냐고 밝혀 철거론쪽에 무게를 실었다.
정부 입장이 이렇게 강경해지는 만큼 홍 장군 논란이 확대되는 데 대한 여당의 '선 긋기'는 어려워진다.
당내 일각에선 안 그래도 "홍 장군 논란이 커지는 건 곤란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이념 논란이 중도층 민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당 지도부 역시 그간 "정부 입장을 존중한다"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왔던 이유다.
하지만 정부 인사들이 연달아 국방부 장관의 견해에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만큼, 입장이 난처해지는 당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당내 한 의원은 "홍 장군 사안은 정율성 논란과 달리 당 차원에서도 반대 의견이 만만찮은 내용이다. 한 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의 답변이 이해가 안 된다"며 "대통령은 홍 장군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얘기하지 않았다는 게 대통령실 측의 설명인데, 그럼 그 부분도 적절히 선을 그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소속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이날 BBS라디오에 나와 "홍 장군이 영웅이라는 것에 대해선 보수 진영에서도 이미 역사적인 합의가 있다"며 "설치된 흉상을 제거해야 할 정도로 홍 장군이 도저히 안 되는 분이라면 그때(서훈, 함정 명명 등 당시) 단식 투쟁을 하든 머리를 깎든 했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