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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화나는 건 교육부"…교사들, '집단트라우마'에 빠졌다

보건/의료

    "정말 화나는 건 교육부"…교사들, '집단트라우마'에 빠졌다

    핵심요약

    4일 "집단행동한 교사 처벌하겠다"더니 말 바꾼 교육부
    초등교사들 "교육부 대처가 가장 화난다", "절망적"
    교사 16% '자살 생각한 적 있다', 일반 인구에 비해 2~5배 높아
    트라우마 악화 시 "교사 퇴직·휴직 늘어나 인력 문제 발생할 것"
    "개인의 병세로 여겨선 안돼", "진상규명과 법제도 개선 이뤄져야"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서울시 교육청 주최로 열린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제'에 동료 교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종민 기자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서울시 교육청 주최로 열린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제'에 동료 교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종민 기자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교사들은 "다음은 없어야 한다"는 절박함과 교권을 보호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좌절감에 빠졌다.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은 작금의 현상을 '집단 트라우마' 상태라고 진단했다.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대안학교 교장인 김현수 교수는 "교사들이 집단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법·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악성 민원, 교육부 대처가 집단트라우마 키웠다"


    집단 트라우마는 고통스러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집단이 경험하는 심리적 영향을 뜻한다. 개인 트라우마와 다르게 집단 전체가 상처, 두려움 또는 취약성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집단 내 사람들은 해당 사건이나 사람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서이초 교사의 사망이 발단이 됐고, 교육부의 대처가 교사들의 '집단 트라우마'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두 달 만에 세 명의 교사가 연이어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며 교사들의 분노는 쌓여갔다. 지난 7월 서초구 서이초의 신규 교사가, 지난달 31일 양천구 신목초 중견 교사가, 지난 3일 경기 용인시의 정년퇴직을 1년 앞둔 원로 교사가 숨졌다.  

    이 가운데 교육부가 내놓은 대처는 교사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 집회에 대해 교육부는 '연가·병가·재량휴업일 등 집단행동을 한 교사와 교사의 복무를 결재한 관리자(교장, 교감)까지 처벌하겠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하지만 지난 2일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에 교사 20만명(주최 측 추산)이 모이는 등 반발이 거세지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3일 "학교를 지켜달라"는 호소문을 발표하는 등 징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수위조절'에 나섰다.

    집회 하루 후인 5일 이 부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교권회복을 바라는 대다수 선생님의 마음을 알게됐다"며 "교사들을 징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징계 방침을 철회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5일 9·4 '공교육 멈춤의 날'에 연가·병가를 낸 교사들을 징계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공식 철회했다. 박종민 기자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5일 9·4 '공교육 멈춤의 날'에 연가·병가를 낸 교사들을 징계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공식 철회했다. 박종민 기자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 집회에 참석한 2년 차 울산의 초등교사 박 모 씨(25)는 "정말 화가 나는 건 교육부 대처"라고 했다. 박 씨는 "교사에게 악성 민원이 들어왔을 때 교육청, 학교 관리자도 교사를 지켜주지 않았다. 이제 교육부까지 교사에게 칼을 겨눴다"며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경기 성남시의 초등교사 이 모 씨(25)도 "교육부가 교사를 징계하고 억압하기 위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절망적이었다"고 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의 교장인 김현수 교수는 5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교사들이 반복적인 악성 민원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가운데 교육부가 교사들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아 집단 트라우마가 촉발된 것"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코로나 3년 사회적 거리두기 안에서 교권 추락 문제가 누적돼 왔을 것"이라며 "교사들의 추모 행렬이 학교의 위기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퇴사·휴직 많아져 교사 인력난까지 발생할 수도"

    '공교육 멈춤의 날' 비어 있는 교실. 연합뉴스'공교육 멈춤의 날' 비어 있는 교실. 연합뉴스교사들의 사망 사건이 알려지며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본 교사들의 비율이 비(非)교사 일반 인구보다 2~5배가량 높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와 녹색병원이 지난달 16~23일 교사 3,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16%였다. 4.5%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고 했다.

    일반 인구의 자살 생각은 3~7%, 자살 계획은 0.5~2%인 것에 비하면 교사들의 극단선택 위험이 2~5배 정도 높은 것이다.

    하지만 교사들에게 이는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초등교사 이 모 씨(25)는 "악성 민원으로 인한 교사들의 고통은 학교 현장에서 당연시되고 있다"며 "동료 다수가 민원으로 우울증 및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했다.

    김현수 교수는 "해당 설문조사에 관해서는 심층적인 조사가 더 필요하지만 (교사들의) 여론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오상훈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집단 트라우마가 악화되면 학교 인력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오 교수는 "집단 트라우마가 악화되면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나아가 퇴사하거나 휴직하는 교사가 많아져 인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했다.

    집단트라우마 벗어나려면… "법제도 개선이 가장 중요"

    4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 에 참가한 교사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 기자4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 에 참가한 교사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 기자김현수 교수는 "집단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진상규명과 법제도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사망자가 (원래) 심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것처럼 교권 침해 문제를 개인의 병세로 여겨선 안 된다"고도 비판했다.

    이어 교사가 학부모 민원을 해결하도록 하는 구조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병원에서 의사에 민원이 생기면 의사가 접촉하지 않고 병원 문제 서비스팀에서 해결한다"며 "개인에게 모든 부담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종우 교수는 "연이어 교사들이 사망해 유가족과 교사들의 충격이 클 것"이라며 먼저 정신건강 전문가를 통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그런 다음 원인을 진단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절망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다""주변 사람이 빨리 발견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훈 교수는 "집단 트라우마가 발생했을 때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들이 신속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대중에게 집단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교육하고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사들은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아동학대 신고를 막고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매주 주말마다 대규모 도심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교사들은 연가나 병가를 내고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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