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제공▶ 글 싣는 순서 |
① 일본 변방 '히라도시'가 일군 고향납세 '기적' ② 일본 히라도 농수산물 답례품 호응 비결 ③ 국내 고향사랑기부제 선도 지역, 활성화 전략1 -전북 임실 '임실 치즈'로 기부자 마음 선점 ④ 국내 고향사랑기부제 선도 지역, 활성화 전략2 -경북 경주, 경기 가평·의정부를 중심으로 ⑤ 국내 고향사랑기부제, 제도 안착 방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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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향납세 8조원 규모…13년 만에 100배 ↑
고향사랑기부제는 2008년 일본에서 시행한 '고향납세' 제도를 롤모델로 한다. 우리나라보다 한 발 먼저 고령화와 저출산 등으로 지방 소멸 위기를 경험한 일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향세를 도입했다.
우리나라 역시 각 자치단체의 자주재원 확대와 지역소멸 위기 극복 등을 위한 해결책으로 올해 1월부터 고향사랑기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자신의 거주지 외의 모든 지자체에 1인당 연간 500만 원까지 기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세액공제(10만 원까지 100%, 10만 원 초과 16.5%)와 기부금 30%가량의 답례품을 제공받을 수 있다. 건전한 기부문화 정착과 지역 간 재정자립도 격차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일본 총무성의 '고향 납세에 관한 현황 조사'에 따르면 고향납세 시행 첫해에는 81억 엔(약 800억 원), 이듬해에는 76억 엔으로 줄어드는 등 시행 초기에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2014년부터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제도 도입 이래 처음으로 고향납세제 활용 건수가 100만 건을 넘었고, 기부금은 388억 엔(약 3830억 원)에 달했다. 이후 2021년 8320억 엔(약 8조 원)으로 100배 가량 증가하며 지역 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성장에는 세액공제의 확충과 충실한 답례품 등 기부로까지 이끌어낸 일본 정부와 지자체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이 중 일본 내에서도 고향납세 제도로 '성공 신화'를 이뤄낸 '히라도시(市)'를 직접 찾아 성공을 거둔 차별화 전략 등을 살펴봤다.
인구 2만 9천명 '히라도시'…변방에서 일군 기적
일번 히라도시 청사에서 바라본 히라도시 전경. 박정민 기자일본 규슈 최서단 나가사키현에 있는 인구 2만 9천여 명의 작은 마을 히라도시. 크고 작은 40개 섬으로 이뤄진 이 곳은 현지에서도 이름조차 낯선 일본 최서단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일본 내 고향납세 기부액 1위에 오르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013년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가 공표한 장래추계인구에 따르면 히라도시는 2040년쯤 인구가 1만 6천 명 정도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측돼 '소멸가능성도시'로도 지정됐던 터라 그야말로 변방에서 '기적'을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작은 미약했다. 고향납세를 시작했던 2008년의 기부액은 37건 145만 엔에 불과했고 2009년 240만 엔, 2011년에는 84만 엔까지 떨어지면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히라도시만의 발상의 전환으로 답례품의 차별화, 적극적인 마케팅 등의 전략을 통해 2014년 14억 엔(약 128억 원)을 기록하며 일본 내 실적 1위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2015년 32억 엔, 2016년에는 33억 엔을 돌파하며 급성장했다.
발상의 전환…진화하는 '답례품 아이디어'
히라도시 고향납세 특전 카탈로그. 히라도시 제공히라도시가 고향납세 1위에 등극했을 당시 지역 인구 2만 9천여 명보다 훨씬 많은 3만 7천여 명으로부터 기부를 받았다. 이 같은 성과를 거둔 배경으로 주목할 점은 자치단체장과 공무원의 '발상의 전환'이 기부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히라도시는 답례품 카탈로그를 단순한 상품 소개 자료에서 벗어나 즐겁고 흥미로운 내용으로 구성했다. 기존 카탈로그의 활용에서 벗어나 전면 리뉴얼로 진화해 기부자들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하고 그 감정이 곧 기부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히라도시 고향납세 담당자인 구로세 직원은 2013년 히라도산만 취급하는 세토시장에서 선물용으로 판매하기 위한 고향납세 특전 카탈로그를 창안했다. 당시 상품을 단순히 라인업한 것을 그대로 활용하고 가격을 포인트로 교환하는 정도였다.
구로세 직원은 새로운 발상과 함께 전면 리뉴얼을 통해 '백화점의 '우수 단골고객용 카탈로그'처럼 수준 높고 매력적인 것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꿨다. '한 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편집'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것이 어떤 상품인지 궁금하게 하고 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든 것이다.
이를 일본 대표 고향납세 사이트인 '후루사토초이스'에 올려 인터넷상에서 기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고, 신용카드 결제도 가능하도록 해 편리성을 높이는 등 '고객 눈높이'에 맞도록 개선했다. 후루사토초이스 홈페이지는 답례품을 금액별, 카테고리별, 지역별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다. 2014년에는 그동안 26종에 불과하던 메뉴가 83종으로 크게 늘었고 2016년에는 110종으로 증가하며 더욱 세련된 카탈로그로 진화했다. 이와 함께 히라도만의 '고향납세 특설 사이트'를 개설해 더욱 접근성을 높였다.
답례품 포인트제 시행…기부자와 '연결고리' 효과
히라도시에서 나오는 생산품으로 만든 답례품을 유통하고 있는 세토시장. 박정민 기자여기에 답례품 포인트제까지 더해지며 성공신화를 써내려갔다. 답례품 일부는 계속해서 사용 가능한 포인트로 전환해 답례품을 '일회성' 거래에 멈추지 않게 했다.
기부자의 선의를 바라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스토리, 게임성으로 고향세 전략을 전환한 것이다. 포인트를 모아 고액의 상품도 답례품으로 받을 수 있는 '지역화폐'라는 기대감과 즐거움이 새로 생긴 것이다.
포인트제도는 고향납세제도 도입 이후 생겨난 전국 최초의 아이디어로 기부자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았고 고향기부금 실적에서 전국1위라는 영예를 안게 해줬다. 적립된 포인트를 사용해 히라도시를 여행할 수 있는 '체험형 관광'도 새롭게 추진하면서 관광객들을 지역으로 오게 하는 역할도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히라도시와의 '관계 인구'를 늘려가는 것이 장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전국에서 들어온 기부금의 사용처에 대한 정보공개와 자세한 설명도 기부의 동기를 부여한다. 히라도시는 고향납세 기부금을 '야란바! 히라도 지원기금'에 적립하고 있다. '야란바'는 나가사키 사투리로 '해내자'는 구호로, 지역 진흥의 강한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히라도시는 △빛나는 인재 만들기 프로젝트 △지역의 보물 같은 자원을 살리는 프로젝드 △계속살고 싶은 마을 창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기부금으로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역발전사업을 추진하면서 기부자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2022년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 97.7%가 기부금의 용도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소량 다품목 세트화·스토리화…지역브랜드 전략
'히라도 나쓰카'라는 히라도산 여름 오렌지로 고향 납세 답례품을 공급하고 있는 곤도 젠자부씨가 취재진들에게 답례품 생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정민 기자 "팔리는 상품 중심의 다양한 구색'에서 '히라도산만 취급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조금 비싸도 좋은 상품만 갖추는 전략으로 변경하니 변화가 시작됐다"히라도시는 계절 한정의 소량 다품목이라는 이유로 브랜드화에 대응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이 같은 방법으로 타개했다. 인기 상품인 '히라도세토 이야기'는 부채새우, 소라, 참굴(석화), 보라주머니가리니 모듬이다. 즉 하나의 품종으로 잘 팔리지 않는 어개류를 조합해 상품의 가치가 높아지고 '히라도에서 밖에 팔지 않는다'는 오리지널 상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날치와 고래 가공품 등 고급품만을 패키지로 한 '히라도 날치 모음' 같은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상품들도 계속 생겨났다. 정시·정량공급이 필요한 '상품 브랜드 전략'에서 '히라도 코너'를 설치해 계절별 소량 다품목을 제공하는 '지역브랜드'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생산 능력과 계절적 제약으로 수량이 한정된 상품은 정기배송 방식과 회원 한정 특전으로 품절되지 않도록 구성했다. 예를 들어 '나가사키 히라도의 우마카몬' 상품은 계절 어개류와 야채류 등의 신선 식품을 정기배송해 만족도를 높였다. 히라도 특설 사이트에 회원 등록을 통해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도 한정된 상품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획하며 인기 메뉴로 진화했다.
고향납세 '1위' 히라도시…어떻게 달라졌나
일본에서 고향납세로 기적을 일군 구로다 나루히코 히라도시장이 강원CBS 취재진과 현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박정민 기자히라도시의 고향납세 기부액이 '일본 제일'을 기록해 각종 미디어에 널리 소개된 후 가장 큰 변화는 답례품을 보내는 생산자들의 의식이다. 자신들이 정성껏 생산한 상품이 최고가 됐다는 자긍심은 이들로 하여금 답례품으로 출하하는 것은 가장 멋지고 더 품질 좋은 것으로 준비하는 경향으로 두드러졌다.
'자신들의 노력이 평가받는다'는 느낌 그 자체가 그대로 생산 의욕 고취로 이어졌다. 이는 자녀가 후계자가 돼 고향으로 돌아온 경우와 젊은 감성으로 새로운 상품 개발에 영향을 준 사례도 있다.
그동안 독자적인 판매망을 갖고 독보적인 경영을 하던 생산자들은 지난 2011년 히라도산만 취급하는 세토시장의 탄생으로 모든 사업자가 처음으로 동일한 판매장에서 나란히 판매하게 됐다. 이웃 사업자의 진열대를 곁눈으로 관찰하면서 서로 좋은 자극을 주고받는 플러스 상승효과로 경쟁 의욕을 북돋웠다. 특히 생산자가 고객을 명확히 의식하도록 새롭게 바뀐 것은 고향납세 일본 제일이라는 쾌거가 이뤄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TV와 신문에서 고향납세와 관련해 '히라도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히 시민의 의식개혁에도 커다란 영향을 줬다. 이는 히라도 시민의 자랑이자 참여로도 연결됐다. 여러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고향납세가 화제로 자주 오르내리면서 "시골에서는 아무것도 없고, 기회가 없다"와 같은 패배주의에서 "하면 할 수 있다"라는 의욕을 고취시켰다.
"기부해보고 싶다"에서 "살아보고 싶다"로
고향사랑기부제와 관련해 "무엇보다 고향에 애착을 가지게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 구로다 나루히코 히라도시장. 박정민 기자
구로다 나루히코 히라도시 시장은 '히라도시(市)는 어떻게 일본 최고가 됐나'라는 저서에서도 "고향납세제도의 본래 취지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시골의 '연결고리'를 만드는데 있다"고 설명한다. "기부에 대한 답례품은 어디까지나 그 계기에 지나지 않으며 먼저 '기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전략의 첫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 다음 단계로 기부를 했더니 멋진 답례품이 배달되고 감동을 느껴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가봤더니' 정말 즐거운 관광지라는 것을 알고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나 많은 체험을 통해 '왕래하고 싶다'에 이어 '히라도시에서 살고 싶다'라는 부분에 이르게 하고 싶은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구로다 나루히코 시장은 "무엇보다 고향에 애착을 가지게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며 "출생지가 아니더라도 '놀아보고 살아보고 싶다' 이런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지역의 '팬'인 기부자들을 많이 늘려 전국으로 확대해가는 것이야말로 소멸 가능성이 있는 지자체에서 벗어나 진정한 지방창생(지역활성화)의 길로 향하는 처방책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강원도 지역 언론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