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준공이후에도 계속된 공사 현장 모습. 시행사가 서귀포시에 제출한 사진이다. 시행사 제공자녀 넷을 둔 충청북도 청주에 사는 다둥이 엄마 이 모 씨는 부모님과 함께 제주 이전을 2023년 계획했지만 무산됐다.
주거전문 중견기업이 공사를 해 믿음이 가는데다 제주영어교육도시와 접근성까지 좋아 서귀포시 대정읍으로 이전을 선택했지만 현재 계약금 1억 2000여만 원을 날릴 위기다.
"애들이 넷이고 학교 문제 때문에 (제주)이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기 위해 두 채를 계약했는데 갑자기 시공사측에서 해지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입주를 계획했던 서귀포시 대정읍 주상복합 신축건물은 공동주택(아파트) 28세대, 오피스텔 21호에 지하 3층 지상 10층(연면적 9017㎡) 규모다. 지난 2019년 공사를 시작해 올해 7월 7일 준공을 받았다.
시공사는 충북 청주시에 본사를 둔 주거용 건물 건설 중견업체로 상장기업이다.
하지만 입주예정자들은 시공사와 신탁사로부터 9월 30일 일제히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잔금이 입금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이 씨는 구입하려 했던 주택 내부를 제대로 보지 못해 잔금 지급을 할 수 없었다.
"준공을 앞둔 7월 6일 입주하라는 시공사의 말을 듣고 현장에 갔지만 계속 공사를 하고 있어서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지난 27일에도 아파트 실내 마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베란다 천장에 화재 경보기가 3개 달려있고, 수직문틀이 벽면과 일치 않아 틈이 심하게 생겼다. 실내 벽면 곳곳이 아직도 마감이 안된 상태다. 김대휘 기자 서울에 살고 있는 또 다른 계약자인 30대 정 모 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정씨는 지난 2021년 이 신축건물의 오피스텔 한 채를 구입하기 위해 계약금 6800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공사 주장대로 9월 30일자로 계약해지 상태다.
계약서에는 입주 예정일이 2023년 6월로 돼있다. 하지만 정씨가 현장을 보기 위해 제주까지 내려와 6월 30일 공사 현장을 찾았지만 내부를 볼 수 없었다.
정씨는 "(계약서상)입주 예정일이 6월인데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6월 30일 현장에 가보니 외부 창문도 안 붙어있고 외벽 공사를 하고 있었다. 결국 공사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으니 계약 해지하고 싶다고 제가 먼저 말했다"고 밝혔다.
결국 정씨는 계약해지 내용을 내용증명으로 시공사측에 보냈다.
또 다른 계약자인 서울 거주 김 모 씨도 시공사로부터 준공이 됐으니 잔금을 내라는 통보를 받고 오피스텔을 보기 위해 갔지만 도저히 입주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건축물은 공사중이고 오피스텔내부 는 엄청 지저분하고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상태였다"며 "시공사가 잔금을 안내면 계약해지하고 권리 박탈한다는 말만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공사측은 건물이 준공됐고, 일부 하자는 보수하면 된다며 잔금을 내라는 독촉만 이어갔다.
정모씨가 부실시공 등을 이유로 시공사측에 계약해지를 통보한 내용 증명 일부. 정모씨 제공결국 이 건물은 지난 7월 7일 사용 승인 이후 현재까지도 입주한 사람은 없다. 계약자 20여명 대부분이 잔금을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약해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건축물 사용승인을 내준 서귀포시도 계약자들이 수차례 준공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귀포시는 '감리완료보고서'와 건축물 사용승인 전 현장조사를 위임받은 제3의 건축사로부터 받은 '사용승인서'를 근거로 준공이 처리됐다는 입장이다.
현재 시행사(경기도 고양시)에서 건축사의 허위보고로 건축물 사용승인이 났다며 서귀포시에 건축물 사용승인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시행사는 부실시공의 근거로 16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서귀포시에 제출한 상태다.
이에 대해 서귀포시 관계자는 "사용승인 취소는 불가하다"면서 "변호사와 법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황당한 것은 서귀포시에 제출된 건축감리사와 건축사의 사용승인 보고서다. 이들이 서귀포시에 제출한 사용승인 보고서가 시공사측의 암묵적 압박 때문이라는 점이다.
건축 감리 완료 보고서를 제출한 건축사측은 "(시공사가) PF대출금을 인수해 상환함으로써 기존 시공사의 지위에서 대주주의 권리까지 갖게 된 시공사의 지속적인 요청에 암묵적인 압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며 "'감리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등의 피해가 우려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로 인해 "수분양자와 시행사에 피해가 발생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수분양자와 시행사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전기‧통신‧소방 사용승인을 낸 또 다른 대행사 엔지니어링측은 "시공사측에서 사용승인 일 이전까지 해당분야 준공필증을 득해 제출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도 있고, 각 공정의 미 시공된 부분은 건축공사와 각 공정 공사업체가 빠른 시일 내 보완하는 것으로 준공검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후 "각 공정의 미 시공된 부분에 대해 보완 완료될 때까지 시공업체를 독촉해 완료된 이후 2023년 9월에 소방시설 점검대행업체에서 보고서 작성후 관할 소방서에 제출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서귀포시는 지난 27일 해당 주상복합건축물의 부실시공 의혹에 대해 제주도 건축안전자문단과 건축 현장을 찾아 설계하중과 전단보강설계 적정성을 점검했다. 또 콘크리트 강도와 전단보강 철근배근이 도면대로 됐는지 확인했다. 검사 결과는 2024년 1월에 제출될 예정이다.
지난 27일 시행사측의 부실시공 의혹 제기에 따라 제주도 건축안전자문단이 현장에서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김대휘 기자 서귀포시는 검사 결과를 근거로 부실시공이 확인되면 시공사와 감리사 등을 고발하고 건축사 징계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진행하겠다고 뒤늦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시공사의 무리한 준공 추진과 감리사의 허술한 보고서 그리고 행정의 무책임한 지도점검으로 발생한 계약자의 피해는 구제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