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족 반군들이 예멘 수도 사나에서 총을 들고 행진하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연합뉴스미국과 영국이 홍해에서 선박들을 위협해온 친이란 예멘 반군 후티의 근거지에 대한 공습을 12일(현지시간) 단행했다. 인근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이란이 미국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중동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확전 우려가 한층 더 높아졌다.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군과 영국군은 이날 예멘 수도 사나 등에 대규모 폭격을 가했다. 외신은 미국 관료들의 말을 인용해 후티 반군 물류 창고와 방공 시스템, 무기 저장소 등 10여곳에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예멘 서부 해안 도시 호데이다에서도 여러 차례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연설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미군과 영국군이 호주·바레인·캐나다·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아 후티 반군이 사용하는 예멘 내 다수의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항로인 홍해에서 항해의 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다국적 해군을 불러 모아 '번영 수호자 작전'을 개시한 바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영국 해군은 후티 반군의 추가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홍해를 계속 순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후티 반군도 피습 사실을 인정했다. 후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번 공격은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홍해에서 계속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주장했다.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맞서 하마스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홍해를 사실상 점거하고 민간 선박에 대해 수십 차례 공격을 가했다.
문제는 이란의 개입으로 확전되느냐 여부다. 후티가 하마스와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과 함께 이란이 이끄는 '저항의 축'에 포함돼 있는 만큼 이번 공격은 이란에게 전쟁 개입의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오늘 아침 미국과 영국이 예멘 여러 도시에서 저지른 군사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는 이것이 예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명백하게 침해했으며 국제법과 규칙, 권리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강조했다.
헤즈볼라 무장대원들. 연합뉴스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도 성명을 내고 미국과 영국의 공습을 규탄했다. 헤즈볼라는 "이번 미국의 공격은 가자지구에서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 적이 저지른 학살과 비극에서 미국이 '완전한 파트너'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고 비난했다.
다만 미국은 이번 공습으로 중동 확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있다. 미국은 후티의 홍해 위협에 맞서 다국적 함대 연합을 꾸리는 등 대응 채비를 갖추고도 2개월 가까이 구두 경고만 하며 군사적 대응을 자제했었다.
CNN은 미 국무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중동에서의 확전을 막기 위해 최근 중동을 찾은 토니 블링컨 장관도 미국이 후티를 상대로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경우 이는 긴장 고조가 아니라 방어적 차원으로 간주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함께 공습을 벌인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도 성명을 통해 "자위권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필요하고 적절한 작전을 취했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