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하고 있다. 정진원 수습기자지난 2일 오전 찾은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한국옵티칼) 공장 건물은 고요했다. 공장에는 2022년 10월 4일 발생한 화재로 전소된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불을 끄기 위해 뜯어냈던 건물 외벽 잔해가 공장 주변에 쌓여있었고, 뜯긴 외벽 사이로 공장 곳곳에 불에 탄 흔적이 보였다.
이날 점심이 되자 공장 앞에서 천막을 치고 함께 농성 중인 동료 해고 노동자들은 도르래로 9m 위 지붕으로 불고기와 계란찜, 깍두기를 담은 도시락을 올렸다.
9m 높이의 출하장 구조물 위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있다.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은 이곳에서 6일 기준, 60일째 고공농성하고 있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4일 내내 바람이 불어서 천막이 흔들린 적도 있었다"며 "하지만 고용승계를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희망퇴직을 권했을 때는 회사가 그만큼 힘든 줄 알았지만, 투쟁하면서 회사가 이윤을 많이 남겼다는 걸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들 해고 노동자 11명이 처음 농성에 돌입하기 시작한 때는 2023년 1월쯤이다. 한국옵티칼은 2022년 10월 4일 공장 생산동 건물에 불이 나자 한 달 만에 공장 청산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직원 210여 명 대부분은 희망퇴직을 했고, 현재 11명이 남아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이들은 구미 공장의 물량을 그대로 생산하고 있는 경기 평택 한국니토옵티칼 공장으로 노동자들 역시 고용 승계를 해달라는 입장이다. 이들이 농성하고 있는 구미 공장과 마찬가지로, 평택 공장도 닛토덴코그룹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공장이기 때문이다.
희망퇴직? 위로금에 근속연수도 반영 안 돼…"일본어 사과문까지 요구"
남아있는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사측이 희망퇴직 조건으로 근속연수도 반영하지 않은 위로금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지영 사무장은 "2022년 10월 4일 입사한 조합원부터 하루 일한 직원과 9년 일한 직원과 똑같이 (희망퇴직 위로금을) 준다고 했다"며 "(사측의 속내는) 많은 직원들이 나가게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고공농성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정진원 수습기자이들도 사측과 중재를 시도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중재를 신청했지만 사측과 제대로 된 협상 한번 없이 기각될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일본어로 사과문을 쓸 것을 요구했다. 근무 기간에 따라서 산정한 희망퇴직금에 노동투쟁을 한 기간은 삭감해서 위로금을 주겠다고도 했다. 당시 생계가 어려웠던 조합원 일부가 위로금을 받고 투쟁을 멈추기도 했다.
최현환 지회장은 "사측에서 일본어로 사과문을 써오라고 요구했다"며 "근무 연속에 따라 17~24개월에서 노동 투쟁한 기간을 빼고 희망퇴직금을 삭감해서 주겠다고 하더라"고 당시 느꼈던 굴욕감을 토로했다.
손해배상 가압류·가처분 압박…주 6일 오는데 하루 '950만 원'
이제 이들은 사측의 손해배상 가압류와 가처분 시도에 더욱 한숨이 깊다. 사측은 법원에 해고 노동자들을 상대로 4억 원의 가압류와 철거공사 방해금지 가처분을 청구했다.
이에 따르면 사측이 공장 철거를 목적으로 찾아왔을 때 노조가 고용승계를 호소하며 이를 '방해'하면 그때마다 총 950만 원의 간접강제금이 청구된다. 금속노조와 옵티칼하이테크지회에 각 200만 원, 조합원 11명에 각 50만 원씩이다.
실제로 사측은 공장을 철거하겠다며 일주일에 6번씩 찾아오고 있다. 거의 매일같이 950만 원씩 쌓여 지난달 6일까지 법원이 인용한 간접강제금만 총 1억 원이 넘는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이 강제금이 계속 쌓일 수 있다는 것.
최 지회장은 "향후 우리 (해고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집에 강제 경매 신청을 하는 수순으로 넘어갈 수 있다"며 "지금도 '950만 원짜리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행히 4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가압류에 대해서는 지난달 26일 해고 노동자들이 낸 이의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취소됐다. 재판부는 "가압류 결정은 보전의 필요성이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간접강제금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불에 탄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 공장. 정진원 수습기자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이 겪은 일련의 과정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사측이 손해배상 가압류와 가처분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비판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손배·가압류 남용을 근절하자는 사회적 요구를 무시하고 노동자를 압박하고 있다. 손해배상, 가처분 시도를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금속법률원 탁선호 변호사는 "사측이 제기한 가압류는 노동자 개인을 괴롭히려는 것"이라며 "그래서 노조가 아닌 노동자 개인에게만 제기했고, 법원도 이를 지적하며 취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측이 고용 승계할 여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일본 본사가 100% 지분을 갖는 평택 공장이 있다"며 "이미 불이 난 구미 공장에서 생산하던 제품을 평택 공장에서 생산해서 납품하고 있다. 노조와 대화부터 시작하며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