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의협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이 1일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밝힌 2천명 의대 증원의 필요성과 의료개혁 완수 의지를 피력한 것과 관련해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증원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가운데, 의료계가 "입장을 밝힐 필요도 없다"며 반발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많은 기대를 했던 만큼 더 많은 실망을 하게 된 담화문"이었다며 "추가로 반박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김성근 언론홍보위원장은 "'입장이 없다'가 입장"이라며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밝힌 내용이 이전에 정부에서 발표했던 내용들의 총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의협이) 수차례 입장을 계속 밝혀왔기 때문에 굳이 거기(담화문)에 대해 입장을 밝힐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의대 증원·의료 개혁, 국민께 드리는 말씀' 담화를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등을 내세우며 의사 증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의료개혁은 필수·지역의료를 강화해서 전국 어디에 살든, 어떤 병에 걸렸든,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대 증원 2천 명 규모에 대해서는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의료계가 증원 규모를 2천 명에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집단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시해야 마땅하다"며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라고 조정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의협은 "과학적 근거를 논의하자고 우리 의협 비대위에서 계속 말씀을 드려왔다"며 "정부에서 발표했던 과학적 근거는 근거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계속 말씀드렸기 때문에 추가로 드릴 말씀은 없다"고 반박했다.
의협은 윤 대통령이 국민, 의료계, 정부가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것에 대해서도 "오늘 대통령이 말씀하신 담화문에서도 보면 그 숫자(2천 명)에 대한 후퇴는 없었다"며 "그 숫자를 정해 놓은 상태로 여러 단체가 모여서 협의, 의논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숫자를 논의의 대상으로 올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협의를 할 이유가 없다"고 대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 4대 패키지의 가장 첫 번째에 의료 인력 증원, 의대 정원 증원 얘기가 있다"며 "필수의료 4대 패키지의 맨 첫 줄부터 진행이 안 되기 때문에 그 뒤 내용들이 논의가 안 되고 있다고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반면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이날 오후 4시 온라인 브리핑에서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시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 담화 내용에 대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의교협 비대위 조윤정 홍보위원장은 "어제 열린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 총회에서 정책위원회를 만들었다"며 "의협과 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단 회장,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의전협) 대표 3명이 끊임없이 대화했기 때문에 상당히 현실성 있는 얘기"라고 평가했다.
전의교협은 이날 오후 7시부터 온라인 임시총회를 열고 이번 대국민 담화문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힐 방침이다.
의료계 "'입장 없음'이 입장" 싸늘한 반응
이날 담화문 발표 직후부터 의협을 비롯한 상당수 의료계 인사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 당선인은 자신의 SNS에 "오늘 대통령 담화에 대한 입장은 '입장 없다'가 공식 입장"이라고 비판했다.
전(前)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도 자신의 SNS에 "기대할 게 없어서 자세히 듣지 않았다"며 "의사 동료들 반응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고 비꼬았다.
노환규 전 의협회장도 SNS에 "대통령은 유화책을 발표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공의들에 대한 처벌을 예고했다"며 "협박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예상했던 대로 물러섬이 없다"며 "당신의 말씀대로 의료를 살리기 위해 8800명 또는 그 이상의 의사들에 대해 면허정지를 시행해야 하고 그 때문에 의료가 마비된다면, 당신이 말하는 정치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진행 병리과 교수도 SNS에 "합리적인 안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며 "대통령이 2천 명이라는 숫자를 못 박고, 그 다음에는 그 2천 명에 대한 반대안을 합리적으로 내놓으라는 것은 세상을 이분법으로만 보는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다시 '강경 대응' 나서나
황진환 기자이런 가운데 정부가 다시 전공의에 대한 행정·사법 처리에 나서며 강경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엿보인다.
정부가 지난달 24일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에 대해 '유연한 처리'를 하겠다고 밝히는 등 의사들과의 대화 추진 방침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대화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는 쪽으로 다시 선회하면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에 대한 면허정지가 한꺼번에 내려질 수 있다.
의대 교수들이나 의협의 집단행동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이 내려지면 더 강경해질 가능성이 크다. 전공의들은 면허정지 처분을 받으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지연될 수 있다.
의정 대치 상황이 계속되면, 오는 5월 말 '2025학년도 대입전형 수시모집요강'에 의대 정원이 최종 반영될 때까지 갈등이 지속될 수 있다.
그 사이 의대 증원 정원이 위법하다는 취지의 행정소송 및 가처분 신청 등을 제기한 의사, 의대생들과 정부 간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전의교협은 이날 "우리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사법부의 시기적절한 결론"이라며 "전공의가 돌아오려면 빨리 사법부의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의교협은 또 동맹휴학한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 사태가 벌어진다면, 장기적으로 학사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조 위원장은 "만약 집단 유급이 현실화되면 (현재 휴학한) 서울의대 예과 1학년과 신입생들이 내년에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증원 없는 대학도 정원이 두 배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는 6년 동안 270명을 가르쳐야 하는 셈"이라며 "하지만 서울의대에서 가르칠 수 있는 최대 수용인원은 100명도 안 된다. 가르칠 교수도, 시설도 없다"고 우려했다.
또 휴학한 의대생들이 유급 없이 교육과정을 소화하더라도 원래대로 학사 운영을 재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 위원장은 "의대 겨울방학은 짧으면 2주, 길면 4주 정도"라며 "학사과정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방학을 없애고 학사를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