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제공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시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코로나19에 걸려 사망했어도, 시장에서 감염됐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최근 노동자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도매시장 농산물 하역원으로 근무하던 A씨는 2021년 12월 18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치료를 받던 중 폐렴에 걸려 호흡부전이 왔고, 결국 2022년 1월 9일 밤 11시쯤 숨졌다.
A씨와 사실혼 관계인 배우자 B씨는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A씨의 사망과 업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에 B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A씨가 일하던 시장은 상인, 유통업자, 소비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이어서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하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A씨 발병 즈음 시장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하는 양상을 보였기에, 사업장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에 의해 A씨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주장했다.
B씨는 또 A씨가 근무시간 외에는 대부분 집에 머물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차로 출퇴근을 해 시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업무수행 과정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건을 심리한 법원은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시장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특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경로는 매우 다양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특정 환자의 감염경로 및 원인을 단정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봤다.
또한 "A씨 사망 당시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지역사회 감염이 보편화돼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어디에서든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시장에서의 집단감염의 정황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A씨가 시장 내 최초 감염자인 C씨와 작업동선이 전혀 겹치지 않아 C씨에 의해 감염됐다고도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A씨가 외부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A씨의 차량 입·출차시간을 봐도) A씨의 활동내역 및 이동경로가 불분명하다"며 "A씨가 자택과 시장을 오가는 외에는 어떠한 외부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A씨와 사적 관계를 맺은 이들 중 코로나19 감염자가 없었다는 B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잠복기는 통상 1~14일 정도"라며 "A씨의 가족 구성원이 코로나19에 확진된 것으로 신고된 이력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는 A씨에게 사적영역에서의 감염을 의심할 만한 접촉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