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참석자들이 의대 정원 증원 저지·필수의료 패키지 대응·간호법 저지를 위한 투쟁을 선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국정브리핑에서 2025학년도 의대정원 증원 마무리를 공식화한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며, 증원 저지를 위한 대정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의협 대의원들은 특히 '임현택 집행부'와 줄곧 갈등해온 전공의단체 등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없이 현 체제를 중심으로 총력 대응하기로 뜻을 모았다. 반년 넘게 장기화된 의료공백 사태 수습을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던 임 회장은 엿새째인 31일, 건강 악화로 병원에 긴급 후송됐다.
전공의 등 거듭된 사퇴 압박에도 '임현택 집행부' 재신임 결의
31일 대한의사협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서 김교웅 대의원회 의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의협 대의원회는 이날 오후 5시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임시 총회를 열고 지난 28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과 의대증원 저지 등을 위한 비대위 설치 여부를 안건으로 논의했다. 투표 결과, 비대위 설치 건은 대의원 189명(총원 242명) 중 반대 131명, 찬성 53명, 기권 5명으로 부결됐다.
이들은 총회 직후 결의문을 통해
"대의원총회 산하 비대위를 설치하기보다는 (현) 집행부가 의대정원 증원 저지, 필수의료 패키지 대응, 간호법 제정 (대응) 등을 총망라해 '사즉생(死卽生·죽기로 마음먹으면 산다)'의 각오로 총력을 다할 것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집행부 노고를 치하하나 비상식적이고 독선적인 정부를 상대하기 위해서, 그리고 회원들의 권익 회복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다해줄 것을 촉구한다"며 "대의원회는 절대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고 천명했다.
또 "성급한 의대정원 문제는 숙의를 거쳐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며 정부가 내년도 의대 증원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설익은 정책으로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으며, 더 많은 의구심만 양산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는 정부의 시스템 개선이 먼저임을 각성해야 한다"며 단순히 의사 수 증원만으로 고사 위기인 지역 필수의료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인력 재배치, 적정 규모의 환자와 함께 일하는 의료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아울러 간호법 입법으로 제도권 안에 들어오게 된 진료지원(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는 전공의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의협 대의원회는
"오늘의 전공의가 없으면 내일의 전문의는 절대 있을 수 없다"며 '지속가능성이 없는' PA 관련 법 제정을 즉시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앞서 임 회장은 지난 5월 임기 시작 이래 이번 의·정 사태를 풀 '핵심 당사자'로 꼽히는 전공의 및 의대생 단체와 끊임없이 반목해 왔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이 의협을 주축으로 꾸려진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 참여를 보이콧하면서, 의료계 단일 창구를 만들려던 의협의 구상도 금이 가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그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임 회장을 줄곧 비판해온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이날 임시총회 자리에 직접 참석해 "임 회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끌어내려야 한다"며 자진 사퇴를 거듭 압박했다.
박 위원장은 "임 회장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회장과 집행부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며 "의협의 존재 이유가 뭔가. 대전협 비대위는 자신의 면피에만 급급한, 무능한 회장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의협 대의원회 김교웅 의장은 임시총회 이후 백브리핑에서 "박 위원장은 처음부터 (임 회장에 대한) 반대 의견이 확실했다. 그렇지만 임 회장은 정식적으로 (절차를 거쳐) 뽑힌 회장"이라고 말했다. 대의원 중에도 박 위원장 입장에 거부감을 나타낸 이들이 있었지만 현 사태에서 전공의의 위치를 고려해 의견을 청취했다고도 부연했다.
이어 "앞으로 공식적인 석상에서 두 사람이 만나고 의견 교환을 할 수 있도록 그런 자리는 계속 만들어 가겠다"며 "물론 집행부가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임총도 열리고, 비대위 구성도 (안건으로 얘기가) 나왔지만 심기일전해서 나갈 수 있도록 저희가 중간 역할을 많이 하겠다"고 설명했다.
尹 '응급실 문제없다' 발언 맹비난…"현 사태 발생이유 보여줘"
단식 투쟁 중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는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연합뉴스비대위 구성 여부와 무관하게, 최근 응급실 파행 등 의정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정부에게 있다고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김 의장은 "정부에서 어떤 해결책을 내놓는 게 아닌 상황이다 보니 방법이 별로 없기는 하다. 의료가 계속 망가지고 있다"며 "대통령은 '응급실이 잘 돌아간다'고 하지만, 이형민 교수(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 등 (현장에선) '너무 힘들다'고 얘기한다. 이게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도 "그제 대통령 담화를 보며 굉장히 충격을 받으신 분들이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의료대란의 심각성에 대해 물으니 '의료현장에 가보시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라며
"현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 극명하게 설명해주는 사례"라고 정부의 인식을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거라 생각한다"며
"현장에 가보지도 않은 분이 여러 문제를 지적했더니 '현장에 가보라'고 하는 것은 정상적 사고방식으로 이해하기 굉장히 어렵다"고 밝혔다. 또 "저희가 생각할 때, 의료개혁의 대상은 의료기관이 아닌 보건복지부"라고 직격했다.
이들은 의대 정원 사안 자체를 처음부터 재논의하자는 의미는 아니라면서도, '증원 결정이 끝났으니 일단 의료개혁특위에 들어오라'는 식의 접근 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난망할 거라고 주장했다.
의협 대의원회는 이날 총회 시작 시 낭독한 투쟁선언문을 통해
"수시 모집이 곧 시작되지만 선발은 12월이다. 수시 모집이 2025년 (의대) 정원 확정이라고 머리 떨구지 말자"라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증원이 마무리됐으니 필수의료 대책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윤 대통령 발언을 가리켜 "(이전엔) 필수의료 때문에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궤변'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들은 "교수들이 힘겹게 버텨오던 대학 병원도 특히 응급의료부터 무너지고 있다. 추석연휴 응급실 대란이 일어날 거라고 연일 언론에서 대서특필 중"이라며
"이런 꼴을 만들어 놓은 당사자들은 지금도 '아무 문제 없다'고 한다. 이들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한편, 지난 26일부터 대통령 등 정치권의 의료공백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 중이던 임 회장은 이날 저녁 의료기관에 긴급 이송됐다. 의협에 따르면, 임 회장은 폭염 속 탈수와 어지러움 증상 등으로 전날부터 몸을 가누기 어려웠고 당뇨 등 기저질환도 악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의협 관계자는 "특히 부정맥 증상이 심화돼 의식 저하로 위험한 상태"라며 "응급치료를 받고 회복해 투쟁을 지속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임 회장은 이날 총회에서 영상 인사를 통해 "부족한 모습으로 많은 우려를 받았지만 분골쇄신의 각오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며 "부디 비대위 구성보다 저와 저희 집행부를 믿고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