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서류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심리 지연을 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변호인을 통해 '탄핵심판에 당당히 나서겠다'고 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심판 절차 지연은 문제가 됐다. 그러나 그때마다 헌재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법정 나오겠다는 尹, 탄핵 심판은 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윤 대통령에게 24일까지 탄핵 심판에 필요한 입증 계획과 증거 목록, 계엄 관련 국무회의 회의록과 박안수 계엄사령관이 선포한 포고령 1호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이같은 준비 명령을 지난 17일 전자 송달 방식으로 대통령실에 보냈고, 전날 오전 추가로 윤 대통령에게 우편으로도 발송했다. 전자 송달로는 대통령 본인에게 서류가 전달되는지 확인되지 않아 인편으로도 서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에 탄핵 심판 관련 서류가 제때 송달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윤 대통령은 헌재가 지난 16일 인편, 우편, 전자 문서 시스템 등 3가지 방식으로 보낸 탄핵심판 청구 접수 통지와 답변서 등을 요청한 서류도 받지 않고 있다. 헌재는 대통령실로 발송한 문서는 지난 17일 11시 31분 '수취인 부재'로, 대통령 관저로 발송한 문서는 같은 날 오전 9시 55분 경호처가 '수취 거부'한 것으로 통보받았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심판 절차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송달이 이뤄지지 않으면 다음 절차가 더뎌지고, 결국 변론 일정에도 차질을 빚어지면서 탄핵 결정 역시 미뤄질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다는 지적이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서류를 받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어떤 사유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의도는 저희가 추측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헌법재판소법 78조는 전자문서의 경우 '통지 1주일이 지나도록 확인하지 않을 경우 송달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한다. 헌재가 해당 법 조항을 적극 적용할 수도 있지만, 이번 사안은 개인이 아닌 대통령 비서실로 전자 송달이 이뤄져, 해당 조항이 적용될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헌재는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헌재는 "송달을 어떻게 취급할지 여부는 재판부에서 절차적인 부분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다만, 송달이 확인돼야 본격 심판 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 건 아니다. 사건이 접수된 이상 탄핵 심판은 시작된 것이라는 게 일단 헌재 측 입장이다. 수명재판관인 이미선·정형식 재판관의 재량에 따라 심판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朴도 '지연 전략'…헌재 "몇 년이고 재판 할 수 없다"
연합뉴스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 심판 정국에서 심리를 고의로 지연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형사재판과 같은 엄격한 입증 책임을 요구하면서 90명에 달하는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했다. 신청이 기각돼도 거듭 신청해, 당시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당시 헌재는 "탄핵심판 사건은 형사재판이 아니라 헌법재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박 전 대통령 측의 요구를 지적했다. 당시 탄핵심판 주심이었던 강일원 전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 측의 추가 증인 신청에 대해 "피청구인(대통령) 측에서 여러 기관에 사실조회 신청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게 채택되면 관련 증인은 필요 없을 것 같다"며 탐탁지 않은 기색을 내비쳤다.
결국 헌재는 36명에 이르는 증인을 채택했지만 이중 상당수가 심판정에 나오지 않아 25명만이 신문을 받았다. 재판부는 반복된 질문엔 제동을 걸며 심리에 속도를 내기도 했다. 이정미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 입에서는 "생략"과 "효율"이라는 단어가 반복돼 나왔다. 이 권한대행은 증인신문 도중 "비효율적이다", "내용이 지엽적"이라며 박 대통령 측 신문을 여러 차례 막아서기도 했다. 이 권한대행은 "증인이 앞서 답변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심리 중반에 들어서자 박 전 대통령 측은 '대리인단 전원 사퇴' 카드를 꺼내 들 낌새를 내비치기도 했다. 새 대리인단이 선임될 때까지 심리는 멈추고, 심판이 재개되더라도 기록 검토를 위한 시간을 요청할 수 있어 심리가 늘어질 수 있다는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회 탄핵소추위원 측은 '대리인단이 없어도 탄핵 심리는 계속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는 등 시간 끌기 전략 방어에 힘을 쏟았다.
박 전 대통령 측은 막판에는 대통령이 직접 출석해 최후진술 할 가능성을 보이며 최종변론 기일을 늦춰달라는 요청도 했다. 그러자 헌재는 최종변론 기일은 재판부가 정한 날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헌재는 당시 "국정 공백과 사회적 혼란이 두 달 이상 지속되고 있다. 1년이고, 2년이고 재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윤 대통령은 '직접 출석' 의지를 내비친 만큼 박 전 대통령과는 다른 전략을 펼칠 가능성도 없진 않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석동현 변호사가 "윤 대통령이 법정에서 당당하게 소신껏 입장을 피력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탄핵심판 관련 서류조차 받지 않는 모습은 대비되는 측면이 있다.
또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재판부는 심판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법 51조로 인해 심판절차가 멈출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조항으로 인해 중단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는 '고발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것과 관련해 항소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심리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헌재는 이를 수용해 약 8개월 동안 절차를 멈춰있다. 다만, 해당 조항은 의무가 아닌 재판부 재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