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난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후문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부순 현판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내란수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서울서부지법 습격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폭동'이라 일컫는다. 영화 속 조커가 현실에 소환된 날이다.
지난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구속 반대를 외치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건물 외벽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고, 법원으로 난입했다. 경찰은 법원 안팎에서 벌어진 폭동과 관련해 90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으며, 이 가운데 66명에 대해 순차적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법치주의가 폭력에 짓밟히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잔혹한 '폭동'을 성토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또다시 폭력이란 방법으로 그들의 대통령을 옹호하기 위해 나설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외화 '조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이날 서부지법에서 일어난 폭력 시위는 몇 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 속 폭동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찬 광대 아서 플렉이 범죄자 조커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조커'가 세상에 나왔을 때, 많은 평단과 관객이 우려를 표시했다. 바로 '조커' 속 '폭력'에 담긴 위험성 때문이었다.
주인공 아서 플렉은 자신이 받은 불합리한 차별과 소외에 반발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택했다. 유명 TV쇼에 출연하게 된 조커는 방송에서 자신을 웃음거리로 전락시킨 진행자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앞서 그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고, 사람들은 불합리한 사회에 저항했다며 그를 '영웅'으로 칭송한다. 반사회적이고 반법치적인 행동을 한 아서 플렉을 계급과 사회에 저항하는 인물로 미화한다. 개인의 불안과 사회의 불안정성을 타개할 민주적인 방안을 찾지 못했던 시민들은 아서 플렉을 조커로 만들고, 조커라는 폭력을 해결책이라며 정당화한 것이다.
조커의 행동과 발언에 감화된 사람들은 조커의 얼굴을 하고 폭도가 돼 거리로 나선다. 애당초 조커와 마찬가지로 폭도들에게 필요한 건 폭력의 명분이었다. 불평등과 불안, 소외, 정의 구현을 명분으로 내세워 자신들의 분노와 폭력을 정당화한 것이다.
그렇게 조커의 얼굴을 한 시위대는 그들의 영웅을 구하기 위해 경찰차를 들이받고, 거리의 모든 것을 깨부수고 불태우며, 사람들을 폭행한다. 폭도들은 자신들과 조커와 동일시하며 조커의 정체성을 자신 위에 덧씌웠고, 그들 스스로 영웅이 됐다.
외화 '조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이러한 조커와 시위대의 태도는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저지른 내란이라는 반헌법적인 폭력을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정당화하고, 그런 자신을 무력을 써서라도 지켜 달라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그리고 지지자들은 내란을 옹호하며 자신의 대통령을 지키고, 자신들의 정의를 지키겠다며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했다. 그 결과가 1월 19일 서부지법 난입 사건이다.
윤 대통령을 비호하는 이들은 그날 서부지법으로 난입한 사람들을 구국의 영웅으로 부르고 있다. 김재원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은 SNS를 통해 "윤 대통령의 외롭고도 힘든 성전에 참전하는 아스팔트의 십자군들은 창대한 군사를 일으켰다. 윤 대통령의 승리를 진심으로 바란다. 함께 거병한 십자군 전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라며 폭도들을 중세 십자군에 비유했다.
그러나 자신의 세상을 전복시키기 위해 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겼던 조커가 영웅이 아니듯이, 조커에 감화되고 그를 구하기 위해 폭력을 휘둘렀던 조커 가면을 쓴 시위대도 영웅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무장 군인을 앞세워 내란을 일으켰던 윤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피의자일 뿐이듯이, 윤 대통령을 구하겠다고 법치주의에 반발하며 서부지법에 난입했던 지지자들 역시 십자군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폭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