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동을 건 보편관세가 한국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보편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이미 '마이너스'로 전환한 수출이 악화하면서 한국 경제 성장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관세폭탄에 코스피 2500선 내줘…환율 급등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52% 하락한 2453.87에 장을 마쳤다. 외국인(-9090억원)과 기관(-3475억원)의 대규모 매도 속에 2500선을 내준 코스피는 한때 –3% 넘게 낙폭을 키웠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4.5원 오른 1467.2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와 기소 등 정치 불확실성 감소로 1430원대로 내려앉았던 환율은 이날 한때 1470원 넘게 치솟았다. 금 1kg 가격도 3.8% 오른 13만 8천원으로 역사상 신고점을 썼다.
이 같은 금융시장 불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보편관세 부과가 직격탄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에 각 25% 및 중국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같은 명령은 4일(현지시간)부터 시행되며 대상국이 맞대응에 나설 경우 관세율을 추가하는 보복 조항도 담고 있다.
이들 3개 국가는 미국의 3대 수입국으로 전체 수입의 42.9%를 차지한다. 미국이 각 나라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품목은 캐나다 원유(30%), 멕시코 자동차(30%), 중국 전자기기(30%) 등이다.
따라서 관세 부과는 미국 내 물가 상승을 부추길 것으로 관측된다.
NH투자증권 조연주 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관세 부과로 미국의 실효세율은 약 7%p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삭스는 실효세율 1%p 상승시 근원 PCE(개인소비지출) 상승률이 0.1%p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12월 미국 근원 PCE 상승률 2.8%를 기준으로 3.5%까지 뛸 수 있는 셈이다.
또 시카고대학교가 지난 1월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8%가 이번 관세 조치로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연구원은 "수입품 관세는 실제로 캐나다, 멕시코,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미국 기업이 지불한다"면서 "대체가 불가능한 필수품의 경우 미국 기업이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해 미국 소비자들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물가 상승은 현재 기준금리 인하 기조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상상인증권 김용구 연구원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자극이 재점화되는 국면에선 연준 금리인하 기대는 단순 공염불로 제한된다"면서 "이 경우 미국 경기와 금융 불안의 추가 심화 역시 상당 수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에너지 품목만 관세율 10%를 적용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편관세 확대 예고…먹구름 낀 韓경제 '첩첩산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트럼프 대통령은 EU(유럽연합) 제품에도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 같은 보편관세 확대의 다음 대상으로 한국 등 아시아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1위 중국과 2위 멕시코에 이어 베트남(3위), 대만(6위), 일본(7위), 한국(8위) 등 아시아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베트남, 대만 등과 함께 트럼프 1기 당시인 2018년보다 무역적자가 2배 이상 늘어난 국가다.
흥국증권 이영원 연구원은 "미국이 무역적자에 집중할 경우 관세 압력을 받을 확률은 당연히 미국의 적자를 크게 발생시키는 국가가 될 것"이라며 "보편관세 도입 시 관세 부담은 물론 캐나다, 멕시코의 사례와 같이 선별적인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미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낀 상황이라는 점이다.
1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0.3% 감소해 무역수지가 16개월 만에 적자 전환했다. 설 연휴를 감안한 하루 평균 수출은 7.7% 늘어 양호한 기록을 보였지만, 부진했던 반도체 수출의 기저효과를 제외하면 수출은 둔화하고 있다.
또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0.1%로 한은이 예상했던 0.5%보다 크게 낮은 수치다. 이 같은 충격의 여파는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NH투자증권 김규진 연구원은 "전망치보다 0.4%p 낮은 쇼크로 국내 상장사의 실적 컨센서스는 0.22%p 하향 조정될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실적 기대감은 상반기까지 하향세를 유지하며 7월 저점을 기록한 이후 하반기부터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이 보편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10%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산업연구원이 분석한 대미국 수출 감소 규모는 10% 관세율이 적용되면 -9.3%, 관세율이 20%일 땐 –13.1%에 달한다. 현재 한국 수출에서 미국 비중이 18.7%로 가장 큰 점을 생각하면 보편관세는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신증권 이하연 연구원은 "국내 기업은 캐나다(배터리), 멕시코(자동차)를 통한 대미 우회 수출 규모가 상당한 수준을 차지하고 있어 향후 관련 중간재 수출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불가피하다"면서 "추후 보편관세까지 현실화하면, 국내 경제성장률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