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현 인턴기자"깊은 숙면으로 인해 일정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메가박스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낯선 분위기. 영화 시작 전 광고도, 조명도 없이 스크린에는 이런 안내 문구만이 떠 있었다. 오전 11시 30분, 상영 시간이 되자 극장은 완전히 암전됐다. 이어 수면을 유도하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스크린에는 무채색 파형이 잔잔히 흐르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틈새 휴식 … 극장에서 '꿀잠' 잔다
메가박스는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메가쉼표'라는 이름의 특별 이벤트를 열었다. 점심시간에 잠시 눕고 싶은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실험적인 시도였다.
행사는 메가박스 강남점에서 진행됐다. 메가박스는 강남점 전체 7개 상영관의 492석 전 좌석을 프리미엄 리클라이너 좌석으로 교체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개관 총 109석에서 메가쉼표를 운영했다. 이용료는 단돈 1천원.
메가박스 관계자는 "더 확실하고 프리미엄한 영화 및 공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강남점 전 좌석을 리클라이너로 교체했다"며 "앞으로도 관객의 편안한 관람을 위해 리클라이너 확대 적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루 전 마지막으로 남은 1석을 예매하고 지난 21일 극장을 찾았다. 실제 현장에서는 리클라이너 좌석의 각도를 조절하며 편안한 자세를 찾는 관객들, 외투를 이불 삼아 몸을 감싼 이들이 눈에 띄었다. 팔걸이의 음료 보관함은 어느새 안경 보관함으로 바뀌었다.
러닝타임은 2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은 각자 점심시간에 맞춰 자유롭게 드나들며 휴식을 취했다. 일반 영화관과 달리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돼 웹서핑을 하거나 SNS를 즐기는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티켓을 예매할 때만 해도 '대낮에 과연 잠이 올까' 의문을 품었지만 푹신한 좌석에 몸을 누이자 잔잔한 음악이 자장가처럼 들렸다. 눈을 감았다 뜨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극장 근처 직장에 다닌다는 이준환(42)씨는 "좋은데요? 40~50분은 잤어요. 다음에 또 열린다면 올 것 같아요"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회사원 이권호(28)씨도 "강남역 일대에는 이렇게 잠깐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아 찾게 됐다"며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은 부스스하게 눈을 뜨며 극장을 나섰다. 점심시간이 3분 밖에 남지 않았다며 급하게 뛰어가는 관객도 있었다.
근처에서 학원을 다니는 김수현(26)씨는 "잠은 못 잤지만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강태민(26)씨는 "다른 관객들하고 같이 있어서 불편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며 삼성역에 있는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다만 1천원이라는 저렴한 이용료 탓인지 '노쇼'도 적지 않았다. 하루 전에 전 좌석이 매진됐지만 실제 상영관을 채운 관객은 절반가량에 그쳤다.
침체된 영화 산업… 돌파구로 떠오른 이색 콘텐츠
김미현 인턴기자이번 메가쉼표처럼 영화관이 영화가 아닌 다른 콘텐츠로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최근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CGV 영등포점에서 KBO 한국시리즈 4차전을 관람했다는 정재환(24)씨는 "야구장 직관은 실패했지만 영화관에서 신선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응원도구를 들고 응원하니 재밌었지만, 티켓 가격이 2인 5만원 정도로 너무 비싸다는 점은 문제"라고 아쉬움을 덧붙였다.
같은해 2월 카타르 아시안컵 8강 경기를 봤다는 이승연(24)씨는 "조용한 공간이라는 영화관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순 경험이었다"며 "영화관은 이제 다양한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영화관이 다양한 콘텐츠로 눈을 돌리는 데는 업계의 위기감이 배경에 있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관객 수는 급감했고, OTT 플랫폼의 성장도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CJ CGV의 전체 매출은 1조 9579억원, 영업이익은 759억원을 기록했지만 국내 사업만 놓고 보면 76억원의 적자를 냈다. 메가박스는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누적 손실이 1700억원을 넘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박스오피스 총 관객 수는 1억2312만명으로 전년 대비 1.6% 감소했다.
극장들은 생존을 위한 콘텐츠 다각화에 나섰다. CJ CGV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업무 협약을 맺고 정규 시즌 경기 일부를 영화관에서 생중계하기로 했다. 또 임영웅, 아이유 등의 콘서트를 스크린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메가박스는 리클라이너 전면 도입 등 이색 공간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CJ CGV 관계자는 "영화관은 이제 다양한 콘텐츠를 이색적으로 체험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며 "앞으로도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상영회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