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팡촨(防川) 전망대(지린성 훈춘시)에서 바라본 두만강철교(북·러 우정의 다리). 사진 속의 지평선 너머로 동해 바다가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중국 영토 끝에서 동해 바다까지는 강줄기를 따라 곡선으로 약 17km. 두만강 신교는 현재 철교에서 바다 방향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건설될 예정이다.북한과 러시아의 국경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량 건설 공사가 곧 본격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는 "현재 공사를 준비하고 있고 머지않아 착공식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체고라가 지난 3월 27일 러시아 국영통신 리아 노보스티와 가진 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두만강 신교의 건설이 북·러 관계 수십 년 만에 가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두만강의 북·러 국경선 구간에 있는 교량은 한국전쟁 기간 중에 세워진 철도용 다리가 하나밖에 없다. 그러다 지난해 6월 19일 양국은 평양에서 두만강에 자동차용 다리를 신설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은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서명을 한 직후 체결됐다. 마체고라 대사의 말대로 두만강에 세워질 새 교량은 역사적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약 한 달 전쯤 푸틴은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두만강과 관련된 또다른 중요한 약속을 했다. 지난해 5월 16일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 때였다. 두 정상은 "양국이 중국 선박의 두만강 하류를 통한 바다로의 항해 문제에 대해 북한과 건설적 대화를 해 나가자"고 합의했다. 쉽게 말하면, 중국 배들이 두만강을 이용해 동해로 드나들 수 있도록 러시아가 북한을 설득해 보겠다는 뜻이다. 양국은 위 문구를 수교 75주년 기념 정상 공동 성명에 명기했다.
제3국의 영토 관련 사항을 정상 간 공동 성명의 합의 사항에 넣은 것은 관례를 벗어난 일이다. 중국이 강력히 요구하자 러시아가 이를 수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두만강을 통해 바다로 나가는 수로를 확보하는 것은 중국의 숙원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4년 5월 16일 베이징에서 수교 75주년 기념 정상 회담을 했다. 이날 회담 결과 나온 정상 공동성명에는 "양국이 중국 선박의 두만강 하류를 통한 바다로의 항해 문제에 대해 북한과 건설적 대화를 해 나간다"고 명시돼 있다. 연합뉴스두만강은 북·중 사이의 백두산에서 발원했지만 중국 구간은 하류 약 17km 지점에서 끝이 난다. 여기서부터 바다까지는 북한과 러시아의 영토다. 북한 쪽 두만강과 맞닿은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은 청나라 말기까지 중국 땅이었다. 그러나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가 제정 러시아에 넘어갔고 이 때부터 중국 북부 지역은 바다로 나가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청나라는 이어 1886년 러시아와 두만강 하구 지역 경계에 대한 세부 협상에 나섰지만 결국 지금의 국경선에 합의를 했다. 이후 중국은 두만강을 통해 동해로 나가는 통로를 뚫기 위해 기회를 노려왔다. 그러다 지난해 중·러 정상 공동 성명에 관련 표현을 구체적으로 포함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중국은 앞서 1991년 고르바초프 집권 말기 소련과 맺은 국경협정에도 이와 비슷한 문구를 넣었다. 러시아 국립대 유리 시고프(Yuri Sigov) 교수에 따르면, 이 협정 제 9조에 "소련 측은 (중국 국기 아래) 중국 선박이 두만강을 따라 항해할 수 있으며, (중략) 동해로 접근하고 돌아올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나타나 있다. 같은 조항에는 또 "그러한 항행과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는 이해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해 해결된다"고 규정해 놓았다(한국해양전략연구원, KIMS Periscope 제 368호, 2024. 12. 1). 당시 중·러의 국경 협상에서 북한은 '이해 당사자' 정도로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은 두만강을 통한 중국의 바다 진출 시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니케이 신문은 지난해 6월 14일 "두만강 항로가 열리면 일본의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군용 또는 해안경비대 선박까지 두만강 뱃길을 따라 동해로 드나들 경우 일본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도 일본보다 나을 것이 없다. 중국은 이미 동해 북부의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해상에서 러시아와 연례적으로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에 참가하는 중국의 최신 구축함과 장거리 폭격기는 대한해협을 거쳐 동해로 들어온다. 서해에서 한·중 간에 마찰 우려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동해도 불안정한 바다가 되고 있다.
동해에서 중국의 경제 활동도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동북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에서 나오는 화물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항에서 선박에 실어 자국의 동남부 항구로 운송하고 있다. 중국이 서해는 물론 동해까지 거의 내해처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23년 5월 중·러 양국이 이런 운송을 사실상 중국의 국내 무역으로 간주하기로 합의하면서부터 가능해진 일이다. 아울러 동해의 북한 수역에서는 중국 어선들의 오징어 싹쓸이 조업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선박이 두만강을 통해 동해로 드나들 수 있게 된다면 한반도에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부담이 커질 것이다. 일본 언론의 예민한 반응에서 보듯 동북아 전체에 지정학적 충격을 불러올 수도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동해 진출 확대가 북극 항로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정은도 지난해 푸틴과 시진핑의 '두만강 뱃길 관련 합의'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을 수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고 하더라도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과의 국경선이나 개방 문제에 특히 민감하다. 중국에 두만강 뱃길을 내주는 문제는 영토 문제나 다름없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중국이 공사비를 대서 2011년 착공해 2014년쯤 공사를 마쳤다. 하지만 교량 중간이 바리케이드로 가로막힌 채 방치되고 있다. 북한은 연결도로나 통관시설도 만들지 않았다. 현대식 교량이 10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것은 북·중관계의 복잡한 이면을 보여준다.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 문제를 얼마나 전략적 고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신압록강대교의 사례가 참고가 될 만하다. 북한과 중국은 지난 2014년쯤 압록강 하류에 왕복 4차선의 대교의 건설을 마쳤다. 양측의 대표적 국경 도시 신의주와 단둥을 직통으로 잇는 현대식 교량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신압록강대교는 10년 넘게 개통을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신압록강대교의 건설비는 중국이 댔다. 중국은 신압록강대교 북단을 단둥 시내와 연결되도록 한 뒤 세관 건물까지 번듯하게 지어 놓았다. 하지만 북한 쪽은 통관 관련 시설은 물론 연결 도로도 아직 없다. 북한이 중국과의 전면 교류에 소극적이라는 증거다. 통일부는 최근 북한이 신압록강대교 남단 쪽에 세관 시설을 지으려 한다는 정보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신압록대교의 개통에 호응할 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북한은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두만강에 신설될 교량이 '자동차 전용'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6월 북·러의 협정 문서의 제목에도 '자동차 다리'라고 명시돼 있다. 그렇다면 현재 사용 중인 열차용 두만강 철교는 그대로 쓰겠다는 의미다. 높이가 7~9m로 알려진 현재의 다리를 계속 사용한다면 큰 배들은 두만강을 다닐 수 없게 된다. 기존 철교를 대형 중국 선박들의 통행을 막는 장애물로 활용하려는 것이 북한의 복안일 수 있다. 2~4m로 추정되는 두만강의 얕은 수심도 중국에는 자연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
하지만 유리 시고브 교수는 중국이 수심이 얕은 두만강 하류에서도 기동할 수 있는 '022형 무장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함정은 침전의 깊이가 1.5m에 불과해 얕은 수심에서도 전투가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울러 중국이 두만강을 따라 지상과 수중 드론을 동해로 날릴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물론 이런 우려를 지나친 걱정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최근 미국 콜럼비아대 위더헤드 동아시아연구소(Weatherhead East Asian Institute)의 엘리자베스 위시닉(Elizabeth A. Wishhnick) 비상임 선임 연구원은 중국과 러시아의 두만강 통로 관련 협의에 아직 진전이 없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의지에 비해 북·러의 호응이 좋지 않다는 해석으로 들린다. 중국 전문가인 위시닉 박사는 미국 대외정책연구소(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에 지난 3월 25일 기고한 글에서 이와 같이 진단했다. 그리고 이런 참여의 부족은 이 지역에서의 북·중·러 경제 협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것이 동해로 항로를 열기 위한 중국의 시도가 중단됐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은 더 집요하게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중·러 정상이 공동 성명을 통해 '건설적 협의'를 하기로 했다는 합의가 강력한 근거다. 대형 선박이 어려우면 관광 유람선이나 소형 화물선의 통항부터 요구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중국이 경제적 이점을 내세우고 경제적 보상까지 제시하면 러시아가 반대할 명분은 점점 줄어든다.
실제로 중국은 최소 10여 년 전부터 두만강의 자국 구간에서 유람선을 출발시켜 동해로 드나드는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두만강의 중국 측 지역 관광지에서는 두만강을 거쳐 바다로 나가는 유람선 노선의 안내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지난해 봄부터 중·러 양국 기업이 공동 투자해 '두만강 웨이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걸고 동해로 나가는 두만강 유람선 사업을 본격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만강 하류 북·중·러 국경의 중국 지역인 팡촨(防川) 전망대에 세워져 있는 '두만강 출해선로 안내도'. 사진 왼쪽의 구불구불한 파란색 선이 두만강이다. 노란색 선은 유람선을 타고 두만강 하류를 따라 동해로 나갔다가 북한 지역을 관광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는 관광 코스로 보인다. 이 노선이 실제로 운용되는 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두만강 신교의 완공 목표 시점은 내년 말이다. RFA는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러시아 국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지난해 6월 19일 신설될 두만강 다리의 총 길이가 850m라고 밝혔다. 공사는 북한과 러시아가 구간을 나눠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신설될 교량의 위치는 현재의 열차 철교에서 하류 쪽으로 300m 아래 지점이다. 만약 더 상류 쪽에 짓는다면 중국 국경과의 거리가 불과 100여m 이내로 바짝 가까워진다. 북·러는 이런 점을 고려해 다리 위치를 하류 쪽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두만강 뱃길 개방을 노리는 중국은 새 교량의 높이에 큰 관심을 가질 것이다. 교각이 높아야 다리 아래로 큰 배가 다닐 수 있다. 마체고라 대사는 지난 3월 27일 인터뷰에서 "지금 다리의 설계 문서를 정교하게 마무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가 시작됐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전체적으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 3월11일 RFA가 보도한 3월 3일자 위성 사진을 보면, 러시아는 이미 두만강 신교의 교각을 세우기 위한 기초 공사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러시아 측이 착공 시점을 얼버무리는 것은 다리의 세부 설계와 관련해, 북·중·러 3자가 막판까지 치열한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교량 설계에서의 작은 차이도 큰 지정학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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