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기 때인 지난 2019년 6월 29일 오사카 G20 정상회의 때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개별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이후 두 사람은 6년 넘게 대면 회담을 한 적이 없다.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관세전쟁'으로 전세계가 초비상이다. 미국은 중국에 무려 145%의 관세 폭탄을 퍼부었다. 중국도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125% 보복 관세로 대항하고 나섰다.
양국은 어떠한 대면 협상도 하지 않은 채 상호 보복전을 벌이고 있다. 마치 지하 벙커에서 버튼을 눌러 서로 미사일을 날리는 것이 연상된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그나마 한숨을 돌렸다. 협상 의사를 밝힌 나라들에 대해서는 트럼프가 관세 인상을 90일 뒤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미 개별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 지금부터 시작이다.
더구나 웬만한 나라는 미·중 관세 전쟁에서 튕겨나온 파편만 맞아도 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 지구촌 전체가 세계 1,2위 경제대국의 총성없는 전쟁을 숨죽이며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은 경제보다 정치적 측면이 강하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 명분은 미국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미국이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군사적 패권도 끝난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 패권을 놓고 싸우는 '왕좌의 게임'이라 부를만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모두 '밀리면 죽는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결기에서는 이번이 '전쟁 없이' 중국을 제압할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절박감마저 느껴진다.
이번 '치킨 게임'은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트럼프와 시진핑 두 개인의 단독 승부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백악관 내부에 직언할 참모가 없다는 것은 전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혹시 있다면 그 역시 대중국 강경론자일 것이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거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때 공산당의 전통이었던 집단지도체제는 집권 3기 들어 거의 작동되지 않는다. 핵심 권력기구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거의 시진핑의 옛 비서 출신들로 채워져 있다.
이런 점도 양국의 관세 보복전이 격화된 배경으로 보인다. 주변에 충성파들만 득실대는 상황에서 최고 권력자는 무모한 결단을 내리기 쉽다.
지금까지는 트럼프가 관세로 선제 공격을 해왔다. 하지만 시진핑도 보복 관세 이외의 반격 카드가 있다. 이른바 '트럼프 피해 국가 모임'을 규합하는 것이다. 우선 EU에 미국의 횡포에 함께 대항하자고 제안했다. 러시아 지원설로 유럽에서 입지를 잃던 중국은 '오명'을 세탁할 기회를 잡았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주에 5일 동안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를 국빈 방문한다. 이른바 앞마당의 '우군 다지기'다.
베이징의 국빈관 '댜오위타이(釣魚臺, 조어대)' 에서 열린 중국-스페인 정상회담의 한 장면. 시진핑 주석은 지난 11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만나 "관세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며 "중국과 EU가 함께 미국의 일방적 괴롭힘을 막아내자"고 제안했다. 또 "중국의 발전은 자력갱생과 간고분투(艱苦奮鬪,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움)를 통해 이룩된 것이며… 중국은 어떠한 부당한 압박도 두려워한 적이 없다" 밝혔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시진핑은 국내 정치에서도 트럼프 덕을 톡톡이 보고 있다. 트럼프가 1인 권력 집중을 정당화할 이유를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적 성향의 중국인들은 트럼프에게 당당히 맞서는 시진핑에게 환호를 보낼 것이다. 중국은 이제 미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마음놓고 선전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의 하워드 프렌치(Howard W. French) 교수는 "트럼프의 관세는 시진핑에게 주는 선물(Trump's Tariffs Are a Gift to Xi)"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 신문(NYT) 상하이 지국장 출신의 프렌치 교수는 최근 외교전문잡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에 이런 명료한 제목으로 글을 기고했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트럼프와 명운을 건 이번 승부에서 물러설 이유가 없다. 일단 대미 강경 발언을 뿜어내면서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는 게 유리하다. 협상은 나중에 가서 생각할 일이다. 경쟁적 관세 인상으로 중국 경제에도 충격이 있겠지만, 국민은 단결하고 권력은 더 강해진다.
트럼프에게도 아직 실탄이 남아 있다. 만약 중국과 뭉치려는 나라들이 생긴다면 이들을 표적으로 관세를 때릴 수 있다. 관세 이외의 지렛대도 많다. 미군 철수 위협이나 방위비 인상 요구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례에 불과하다.
미국의 의회나 법원이 트럼프발 관세 전쟁을 막는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관세폭탄이 미국의 법률에 기반해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경제비상권한법(IEEPA)이 대표적 근거다.
미국 CNBC 방송은 이런 점을 들어 "의회가 트럼프의 관세를 막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지난 4일 보도했다. 혹시 반대 입법이 성공한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거부권이 있다. 더욱이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분석으로는 "법원의 판례도 대통령에게 폭넓은 관세 부과 권한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 위 기사의 내용이다.
미국 하원 본회의장 모습. 트럼프의 관세폭탄은 의회나 법원도 막기 어렵다. 무차별적 관세 부과가 국가경제비상권한법(IEEPA)을 근거로 시행되는데다 공화당이 상하 양원 모두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하원 홈페이지 따라서 트럼프와 시진핑 모두 갑자기 입장을 선회할 조건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관세전쟁이 잠시 소강 국면을 맞거나 발효 시기를 늦추는 방안이 나올 수는 있다. 깜짝 정상회담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싸워볼 여지가 남아있는 두 승부사에게 정상회담은 대결의 끝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미·중 관세 전쟁이 단기간에 해결의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양국에서 협상론자들이 설 자리도 좁아져 있다. 협상이 개시된다고 해도 시간이 걸린다. 지난 트럼프 1기 때 양국이 1차 무역협상을 타결짓고 서명을 하는 데까지 1년 이상이 필요했다.
지금의 미·중 관세 전쟁은 규모와 강도, 속도 그리고 파장의 측면에서 1차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대로 간다면 아마 전세계가 자국에 떨어진 관세폭탄에다 미·중 관세 전쟁의 후폭풍까지 겪어야 한다. 산업 현장은 물론 장바구니를 든 개인들까지 모두가 피해자다. 트럼프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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