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현장 일주일 있어보니…정부, 사람 살릴 고민 없었다[기후로운 경제생활]
◆ 홍종호> 극심한 피해를 낸 영남 산불. 일주일 만에 겨우 진화가 완료됐고 여파는 훨씬 길 전망입니다. 산불은 더욱 상시화, 대형화할 것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안아 들었는데요. 지난 가을에 경고의 메시지를 주셨던 분이죠.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과 함께 이번 산불의 원인과 대응 체계에 대한 이야기 나눠봅니다. 안녕하세요.
◇ 서재철> 네, 안녕하십니까?
◆ 홍종호>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어요. 현장에서 바로 올라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 가셔서 얼마나 계셨나요?
◇ 서재철> 화재 발생 다음 날인 3월 23일 일요일에 가서 29일 토요일 아침까지 보고 철수를 했습니다. 경북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 현장을 계속 확인하면서 초기에는 의성 주민들이 대피할 때 지원도 해 드리고요. 사실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심각했어요. 초유의 재난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저희도 많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로 계속해서 산불 현장을 두루 살피고, 정부에 건의도 하고, 정책적인 대안도 요청했는데요. 이번 상황은 국제사회에서 기후위기 재난을 이야기할 때 나타났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본래 기후위기 재난은 어느 사회든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피해가 집중되죠. 국제 사회에서는 저개발 국가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들이 피해를 많이 보는데, 이번 산불은 그런 상황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봤던 LA 산불, 캘리포니아 산불, 캐나다 산불, 호주 산불 같은 초대형 산불은 외국의 일이고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기본적인 인식 자체를 완전히 폐기하는 양상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 홍종호> 네. 이번 산불, 인명 피해가 자그마치 75명에 달했습니다. 주민들의 집과 일터도 많이 사라졌고요. 원인을 좀 더 총론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 서재철> 객관적으로 보면, 영남 지역은 겨울철 내내 건조했어요. 과거 20-30년 전 겨울철에 비해 평균적으로 눈비가 적게 내리고, 전체적으로 따뜻했기 때문에 습도가 떨어졌죠. 3월 21일과 22일에는 전국적으로 이상 고온이 나타났고, 영남 지역도 평균보다 10도 넘게 기온이 올라갔어요. 그 나마 남아있던 습기가 고온에 증발하면서 더 건조해졌고, 이럴 때 불이 나면 안 되는데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났습니다. 그중 한 곳이 의성이었고요.
◇ 서재철> 더 안타까운 건 3월 21일이었죠. 금요일 오후에 경남 산청에서 산불이 났습니다. 산불이 나자마자 3시간 만에 3단계 대형 산불이 발동되었고, 진화 자원들이 투입되었죠. 3월 22일 토요일 오전에는 산청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모든 헬기가 동원됐고, 의성에서도 대형 산불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자원 부족 상황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 홍종호> 장비가 여실히 부족했군요.
◇ 서재철> 네. 군사 작전으로 말하자면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한 곳에만 집중해도 당일에 대형 산불을 잡아내기는 어려운데, 두 곳에서 동시에 발생하니까 자원이 분산되었죠. 또 의성 지역은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소나무가 워낙 많습니다.
산불은 쉽게 얘기해서 소나무, 잣나무처럼 외형으로 볼 때 일반 시민들이 소나무라고 하는 이 나무들이 가장 위험합니다. 활엽수만 있는 숲에서는 산불 진행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요. 불이 날아다니고, 인근 집을 불태우고 하는 양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성 일대부터 안동 지역은 특정 산지 사면이나 봉우리, 능선에 최대 90-100% 소나무로만 덮여 있는 곳이 산재돼 있습니다.
◇ 서재철> 그래서 일요일 상황을 보면 오전에는 연기가 너무 가득해서 진화 헬기가 못 들어가고, 오후에 시도해 보려니 두세 시부터 바람이 초속 5-6m씩 불면서 진화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초기 주불의 화선, 불길이 몇십km씩 광범위하게 펼쳐지면서 진화 헬기의 접근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헬기 조종사들과 통화를 해보면, 이게 엄두가 안 난다는 겁니다. 화선이 너무 넓어서요. 다른 산불 현장에서는 불을 끄면 진도가 나가는 것이 느껴지는데, 여기는 숨이 턱 막힐 정도라는 겁니다. 흔히 우리가 상황이 너무 넓고 크면, 중과부적일 때는 의욕이 꺾이거든요.
◆ 홍종호> 그 숲 얘기가 지금 백가쟁명처럼 나와요. 낙엽이 문제다, 소나무가 문제다, 이런 얘기 많이 나오는데 우리나라 소나무가 많은 건 어떻게 봐야 합니까?
◇ 서재철> 일단 소나무가 많은 건 객관적인 우리의 여건이고요. 전체 산림의 25-40%가량이 침엽수고, 그중에 30% 정도가 흔히 보는 소나무류예요. 소나무, 잣나무, 리기다소나무가 한 30% 될 겁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경북 북부의 소나무 밀도가 훨씬 높다는 겁니다. 경북 북부 읍면 수목의 50%가 소나무류고요.
이건 산림청이 게을렀다고 보는데요. 전국의 소나무 밀도와 면적이 어떻게 된다, 데이터를 제대로 제시해 줬어야 했어요. 그럼 재해 대책에 바로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피 체계를 꾸릴 때 소나무 밀도가 높은 마을과 읍면에 더 많이, 더 속도감 있게 지원하는 게 소위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죠.
◆ 홍종호> 불이 발화했을 경우 이 지역의 피해가 클 수 있다는 거죠.
◇ 서재철> 네. 건물이 고층일 경우 소방법을 더 촘촘히 적용하는 것처럼요. 탈출이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데 산불 관점에서 보면 소나무류가 위험하지, 활엽수는 이 정도로 진행 속도가 빠르지 않거든요. 활엽수는 불길이 낙엽을 타고 야금야금 가지만, 불티가 날아가고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비화되는 건 다 소나무예요. 그러니까 소나무 밀도 지도를 시군에 제공해줘야 하는 거죠.
지금 논쟁이 되는 게 소나무를 매년 얼마나 심었냐 아닙니까. 시민들에게 데이터를 공개해서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는 게 필요합니다. 저희가 알고 있기로는 과거에 낙엽송이나 외래종을 더 많이 심었고 소나무는 90년대부터 많이 심었어요. 소나무 조림은 1년에 전체 물량의 15% 정도 심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은 소나무를 더 이상 심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 홍종호> 90년대에 소나무를 많이 심은 것은 우리 고유종을 심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건가요? 과거에는 속성수를 심었고요.
◇ 서재철> 그렇죠. 과거 YS 정부부터. 물론 80년대에도 소나무를 심긴 했지만, 저는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부터 사실 소나무를 심으면 안 된다고 봤어요. 소나무는 산불에도 취약하지만 병해충에도 약하기 때문에 더 이상 심으면 안 되는데, 지금도 전체 물량의 15% 가까이 심는다는 건 정책의 엇박자라고 보고요. 그러나 중요한 건, 경북 북부나 강원 남부에 소나무가 워낙 많은데 10년 안에 이 소나무를 인위적으로 없앨 수는 없습니다. 소나무를 더 심지 않는 건 당연하고, 소나무를 안고 살 수밖에 없고 현재 있는 소나무를 전제로 산불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합니다.
◆ 홍종호> 더 철저한 방제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씀 같습니다. 일본과 잠깐 비교하면 일본은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온대 지역이 좀 더 많으니까 상대적으로 활엽수가 많은 건 사실이겠죠?
◇ 서재철> 일단 습도 자체가 다른데요. 그러나 올봄 일본도 산불 피해가 있었죠. 거의 수십 년 동안 산불이 일본 임야청이나 일본 정부의 큰 이슈가 아니었는데, 지난 1월 말에 이와테현 산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의성 산불과 같은 시기에 일본 서부 쪽 오카야마현부터 시코쿠 에히메현까지 일주일 이상 산불이 발생하면서 산불의 안전 국가, 혹은 산불에 큰 걱정이 없는 나라가 아니게 됐어요. 일본에서도 산불 이슈가 커졌습니다. 일본은 기후변화라는 표현보다 지구 온난화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데 이제 일본도 지구 온난화에 산불 이슈가 들어간 거죠.
◆ 홍종호> 그런데 일본은 인명 피해는 없더라고요. 그 부분이 저는 참 마음이 안 좋았어요.
◇ 서재철> 일본도 안심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난 체계가 훨씬 고도화됐지만, 동일본 대지진이나 최근의 지진 상황을 보더라도 어떤 나라든 안심은 금물이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 홍종호> 네. 그런데 한국은 어쨌든 굉장히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고. 그런 걸 보면서 뭔가 우리나라는 방재 대책이 참 취약하다는 생각을 또 안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에요.
사실 작년 가을 저희 방송에 나오셔서 예방이 사후적 조치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죠. 이번 상황 보니 어떻습니까? 헬기도 말씀해 주셨는데 인력이나 장비 면에서 준비가 잘 돼있었나요? 어떻게 보십니까?
◇ 서재철> 201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형 산불의 인명 피해를 살펴보면요. 2019년 고성 산불 당시 변압기가 터져 속초에서 한 명이 사망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어요. 그리고 2023년 4월 10일 강릉 산불 때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이분은 경찰이나 소방의 도움으로 대피했었고 불이 꺼진 뒤 집 상황을 보러 갔다가 사망한 거라서 대피 중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산불은 사망자만 30명에 달하고 있어요. 정부의 산불 대응의 둑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죠. 또 가슴 아픈 것은 주택 피해가 3천 동 이상입니다. 피해를 본 분들은 대부분 60, 70대의 분들이고, 평생 그곳에서 살아온 분들이죠. 삶의 터전이거든요. 주택 피해도 너무 큽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산불 대책의 초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재난에서 첫 번째 원칙은 우리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산불에서 과연 생명을 지키는 데 산불 대책의 초점이 맞춰졌는가 했을 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아주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 홍종호> 위원님 말씀에서 안타까움과 비장함이 느껴지는데요. 과거 산림이 타거나 주택이 전소되는 피해는 있었고 강원도 산불 때는 가스 설비에 불이 옮겨붙는 걸 막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거죠. 사전적으로 이런 상황을 예견하기는 힘들었을까요? 어떤 준비가 부족했던 겁니까?
◇ 서재철> 산불 대책이 하는 일이 많습니다. 진화와 예방 등 여러 가지 일이 있는데요. 산불이 발생했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의 피해를 막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런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 홍종호> 과거에도 이런 식의 산불이 없지는 않았죠. 겨울이나 봄철에 산불이 발생했는데, 그때 이번처럼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빠르게 산불이 번진 적은 없었던 겁니까?
◇ 서재철> 객관적으로 속도가 빠른 건 사실이었고요. 이례적 강풍도 있었습니다. 영덕 같은 경우 오후 5시 54분 영덕 관내의 낙동정맥 생태축인 황장재, 달산면, 지품면 일대로 영양, 청송 불이 넘어오기 시작했는데요. 그날 낮 1시 반부터 영덕읍 내 자동 기상 관측망 AWS에 초속 15m의 바람이 찍히기 시작했습니다.
◆ 홍종호> 초속 15m면 거의 태풍급 바람에 가까워지는 거 아니에요.
◇ 서재철> 그렇죠. 관측 장비가 있는 곳은 지표면이죠. 그로부터 200m, 300m 고도 위도에는 더 강한 바람이 불겠죠. 사실 영덕군은 22년 2월 16일에 대형 산불을 한번 겪었습니다. 그렇다면 직원들도 비상근무 태세를 유지해야 했는데요. 결과적으로 보면 과연 주민 대피를 위했는가. 건조 특보의 강풍. 적어도 산불 관계 종사자에게는 기본 상식이거든요. 위험이 이미 상존했고 옆 시군에서 국가적으로 속보가 뜰 정도의 산불이 이미 토요일에 발생해서 월요일까지 유지됐는데 적어도 청송, 영양, 영덕에서 대피에 대해 고민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 청송, 영덕, 영양군은 공무원 숫자 한 500명 정도 될 겁니다. 그 직원들을 비상 근무로 읍면과 마을로만 보냈다면. 요즘 우리 농산촌 공무원들은 차 없는 사람 없습니다. 자동차가 다 있으니까 이장과 협조하는 체계로 대비만 했어도 집이 불타는 건 좀 불가항력적이었지만 인명 피해는 현격히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 홍종호> 노약자, 어르신들이라도 미리 대피시킬 수 있었을 것인데 이게 안 됐다.
◇ 서재철> 특히 안동과 영덕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대형 산불을 최근 5년 사이 여러 차례 겪었거든요. 그러면 산불이 얼마나 무서운지와 어떤 상황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는데 대피에 대해서 왜 고민을 안 했냐는 거예요.
◆ 홍종호> 그래요. 정리하자면 과거의 산불에 비해서 굉장히 건조했고 강풍도 합쳐지면서 산불이 아주 빠르게 확산했다. 그런데 주민들이, 특히 노약자분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불이 올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고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 서재철> 대피 고민을 많이 안 했던 것이 점점 확인되고 있죠. 그리고 데이터가 있습니다. 해당 피해 지역에 그날 소방 신고가 들어온 건수, 시간, 위치, 그리고 피해 주민들이 어디에서 참변을 당하셨는지에 관해서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런 초유의 재난이 들어오면 아주 상세하게 한 점 한 점 조사를 하고 기록을 남기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 상황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요. 지금 마치 책임자 처벌 논쟁처럼 되고 있는데요. 우리가 이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일차적으로 피해 이주민을 돕고 지원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과 함께 이 상황을 잊지 않고 획득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확인해서 대책을,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피 체계도요. 여기서 더 들어가면요. 산불 대책의 1단계에서 지휘관이 시장, 군수입니다. 그런데 시장, 군수가 선출직으로 취임한 이후에 단 한 번도 산불 교육을 받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재난이나 국민의 생명, 재산과 매개되는 군, 소방, 해경을 포함한 경찰은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직무 교육을 강도 있게 현장과 이론을 포함해서 해요. 교육 매뉴얼이 다 있고요. 그런데 산불이 일어났을 때 지휘관이 시장, 군수인데도 이분들이 취임 이후에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요. 그 밑의 참모들, 산림 분야나 녹지 분야의 종사자들에게도 체계적인 교육이 없습니다.
2025.03.31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