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남북정상 대화록)이 공개됐다. 국정원이 대통령기록물인 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일반문서로 전환해 공개한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인 정상회담 대화록이 국정원에서 2급비밀일 공공기록물로 분류돼 있다가 다시 일반문서로 갑자기 바뀐 것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남북정상 대화록, 왜 공공기록물로 둔갑했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대통령기록물과 공공기록물, 일반문서의 차이가 뭐냐?= 대통령기록물은 기밀의 정도에 따라 3가지로 분류된다. ‘일반기록물’은 아무런 제약없이 일반인의 열람이 가능한 등급이다. ‘비밀기록물’은 차기 대통령, 국무총리, 각 부처 장관 등 비밀취급인가권자에게 열람이 허용된다. ‘지정기록물’은 가장 폐쇄적인 수준으로 해당 기록물을 생산한 대통령만 최대 30년간 열람이 가능하다. ‘지정기록물’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2/3이상 찬성 또는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한다.
공공기록물은 2급 비밀로 분류된다. 대통령 지정기록물보다 공개가 쉽기는 하지만 이 또한 공개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부분에 논란이 있다. 기관장이 판단해서 공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공공기록물을 일반문서로 전환하는 과정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정부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대화록 2부를 만들어 한 부는 대통령기록관에 한 부는 국가정보원에 보관했다.
같은 문건이지만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문건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적용을 받는 대통령기록물로, 국정원에 있는 문건은 2급 기밀로 공공기록물 관리법상 공공기록물로 각각 분류됐다.
(자료사진)
▶같은 문건인데 하나는 1급비밀로 관리하고 하나는 2급 비밀로 관리한다는 게 옳은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대통령기록물인 대화록이 실제 원본인데 국정원에 보관중인 자료가 사본이긴 하지만 동일한 내용의 기록이니만큼 사실상 대통령기록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겠다. 최근 '오성과 한음'이라는 개그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바로 그 오성 이항복의 어린시절 일화다. 오성은 조선 선조(宣祖)와 광해군(光海君) 때의 명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李恒福)을 말한다.
오성 이항복은 어린 시절 자기 집 마당에 심겨져 있는 감나무의 가지가 옆집에 사는 권철 대감(권율 장군의 아버지)집, 담 너머로 뻗어 나갔다. 권 대감댁 하인들이 그 감을 해마다 따먹자 오성이 대감댁을 찾아가 방문의 창호지를 찢어 팔을 쑥 내밀고는 “대감님, 이 팔이 누구의 팔입니까?” 하고 물었다. 권철 대감은 “그것은 네 팔이지 누구 팔이냐?”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오성은 “이 팔이 대감 방 안으로 들어가 있는데 어찌해서 제 팔입니까?” 라고 묻자 권철은 “내 방에 들어와 있더라도 네 몸에 붙어 있으니 너의 팔이지 않느냐?”라고 대답했다.
오성은 다시 “저의 집 담을 넘어 대감댁으로 뻗어온 감나무 가지는 누구네 것이옵니까?”라고 물었고 권철은 “가지는 비록 우리 집으로 넘어왔지만 뿌리와 줄기는 너네 집에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너의 집 감나무 가지가 틀림없느니라”라고 했다.
어린 항복의 재치에 탄복을 한 권철 대감은 아들인 권율에게 이항복을 사위 삼으라고 권하였다.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으로 이름을 떨친 도원수 권율의 딸과 19세에 혼인을 하였다.
비록 가지는 권철 대감집으로 뻗어있었지만 나무의 뿌리와 줄기는 이항복의 집에 있으니 이항복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도 조선 전기에는 춘추관과 충주, 전주, 성주 등 4곳에 사고(史庫)가 있었는데 춘추관에 있는 것만 실록이고 나머지는 실록이 아닌 것이 아니듯 동일한 내용의 정상회담 대화록이라면 당연히 대통령 지정 기록물이 되는 것이 맞다는 얘기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현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검찰이 국정원의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판단했던 것은 문서의 생산 경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라며 “국정원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가 제공한 녹음파일을 풀어서 대화록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대통령기록물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외교장관을 지낸 송민순 전 장관은 “(회의록을) 외교부가 생성했더라도 대통령과 관련된 것이면 대통령 기록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대통령 기록물이 공공기록물로 둔갑을 하게 된 것이냐?= 국가정보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자신들이 만든 '생산물'로 보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이 스스로 생산한 문건의 경우 비밀분류를 국정원의 내부규정에따라 지정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정원 한 고위 관계자는 "국정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있는 그대로 받아쓴 회담록 전문을 갖고 있다.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는 '회담록'은 우리가 만들었으니, 생산자는 국정원"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생산했으니 공공기록물이고 이를 다시 일반문서로 전환하는 것은 기관장인 국정원장의 재가를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주장은 논리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대화록'은 대통령 지정기록물인데 같은 내용인 '대화록' 사본은 국정원에서 보관한다고 해서 공공기록물로 봐야 한다는 건 억지에 가깝다.
한국기록학회 회장인 이승휘 명지대 교수는 “정상회담 생산 주체는 녹음기도 아니고, 회담을 받아 적은 속기사도 아니다. 국정원은 그걸 기능적으로 옮겼을 뿐이다. 정상회담 대화의 생산자는 두 남북 정상이다. 국정원이 갖고 있는 전문도 대통령기록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은 “정상회담 대화록을 담은 동일 기록을 놓고, (기록물보관소에 있는 것은) 대통령기록물이고, (똑같은 내용으로) 국정원에 있는 것은 공공기록물이라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난다. 공공기록물이라는 검찰의 판단도 잘못됐다”고 언급했다.
특히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은 “국정원에서 대화록을 공개하면 청와대에서 같은(내용의) 문서를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한 의의가 상실된다"며 "이는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를 정면으로 뒤흔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대화록이 왜 공공기록물이 됐는지는 구체적으로 파악을 해봐야 한다. 회의록은 2009년 3월 1급 비밀에서 2급 비밀로 격하됐었다. 이 때가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한 직후이다. 왜 1급비밀에서 2급비밀로 격하됐는지 그 과정이 밝혀지게 되면 정상회담 대화록이 어떻게 정치에 이용됐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계기나 단서가 될 것이다.
지난 24일 오후 국정원이 국회에서 여야 정보위원들에게 지난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문서로 배포했다. 사진은 회의록 발췌문.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보관하라고 지시했다는 주장이 있지 않느냐?= 국가정보원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데 '공공기록물로 관리하라는 명시적인 지시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이 검찰의 판단에 기대어 공공기록물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인 것이다.
검찰은 지난 2월 검찰은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 등이 회의록 발췌본을 열람한 뒤 일부 내용을 공표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발췌본을 2급 기밀에 속하는 공공기록물로 규정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검찰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이 한 지시는 '국정원에서 관리하라'였다"며, "내용상으로 보면 대통령기록물이 가능할텐데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려면 형식적인 부분을 거쳐야 한다. 대통령기록물 무슨 위원회가 있는데 거기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야 하는데 당시에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내용이 대통령 기록물로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검찰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수사팀이 당시 추측한 것은 '다음 대통령이 정상회담 진행할 때 그동안의 진행내용 알아야 하는데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있으면 국회 2/3동의, 관할고법원장에게 영장 받아야 하는데 비밀스러운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국회나 법원에 우리가 정상회담 추진한다고 말할 수 없는 애로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추측할뿐이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입장은 "내용상 대통령 기록물이 맞지만 대통령 기록물 지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공공기록물로 판단했다"는 말로 정리가 가능하다.
검찰은 수사 당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 배석해 모든 대화 내용을 받아적고 녹취했던 조명균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을 두 차례 불러 조사했으나 '공공기록물로 관리하라'는 노 전 대통령의 지시와 관련된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 관리 지시는 팩트이지만, 공공기록물 분류 대목은 검찰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당시 참여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관되게 "정상회담 대화록"은 대통령 기록물이라고 말한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의원은 "검찰이 국정원의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판단했던 것은 문서의 생산경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라며 "국정원에 있다는 정상회담대화록은 그들의 자료로 자체 생산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회담장에 실무배석한 사람은 청와대비서관 한 명뿐이었다"며 "그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이스폰으로 녹음을 해왔는데, 녹음상태가 좋지 않고 안 들리는 부분이 많아 국정원에 녹취를 맡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국정원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가 제공한 녹음파일을 녹취해서 대화록을 만들었고, 그것을 청와대에 보고하면서 한 부를 더 만들어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그것이 대통령기록물 아닌가. 그렇다면 대통령기록물 관리제도라는 것이 꽝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왜 이 시기에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을까? 여기에 대한 의문이 많은데?= 남재준 국정원장은 2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문건을 왜 공개했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야당이 자꾸 공격을 하니까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의원들이 전했다. 국정원장이나 국정원 조직의 명예가 국가이익이나 국가의 명예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