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제공/자료사진)
정부가 구체적 계획이 전혀 나오지 않은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사업에 통일부 내년 예산 402억원을 편성했다. 집행가능성이 극히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사업에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이유로 '생색내기' 차원에서 예산이 집행됐다는 지적이다.
통일부는 26일 내년 소관 예산이 올해보다 1.6% 증가한 1조 3463억원으로 편성됐다고 밝혔다. 증감분에 해당하는 209억의 상당 부분은 평화통일기반조성 명목으로 편성된 사업인데, 기존에 없던 사업인 DMZ 평화공원에 402억원이 순증하면서 예산이 발생했다.
문제는 DMZ 평화공원 사업이 최소한의 안조차 나오지 않은 매우 추상적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언'만 있는 상태인데, 수백억이 예산이 편성됐다.
평화공원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일단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은 물론 유엔과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북한과 첫삽을 뜨는 시기조차 기약하기 힘든 국면이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 홀로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것도 아니다. 현재 단계는 청와대에서 외교부와 통일부 등 관련 부처가 태스크포스(TF)차원에서 의견을 나누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당연히 생태공원 등 평화공원의 콘셉트가 무엇인지, 개방의 규모는 어떻게 할 지를 논의하는 단계는 진행되지 않았다. 벌써부터 접경 지역에서는 지자체 차원의 공청회가 벌어지는 등 평화공원 유치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402억이 편성된 데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구체적 계획이 없는 사업에 대해 예산을 달라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 일단 몫만 받아놓고 (예산 집행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나오면) 수시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402억의 근거에 대해서는 "기초조사를 위한 용역비와 지뢰제거비 등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협력기금을 이용하는 등 대안을 찾을 수도 있었다. 최소한의 기획안만 나와도 야당의 협조를 얻어 국회로부터 추가 예산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사업이기도 하다. 굳이 별도의 예산항목으로 편성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집행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수 백억의 예산이 편성된 선례는 찾기가 어렵다.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기본적인 사업 취지는 지지하지만, 재정건정성의 이유로 기초노령연금 등 대표적인 대선공약조차 미뤄지는 상황에서, 계획이 잡히지 않은 사업에 4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이명박 정부 시절 김윤옥 여사가 추진했던 '한식세계화'사업처럼 생색내기용 대통령 예산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관련 예산은 내년에도 불용액이 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통일부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됐다 유야무야된 통일항아리 사업이 떠오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평화공원 사업이 통일항아리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는 관련 사업이 진행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북 정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날 나온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발언도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 머물러 있다.
여권 관계자는 "평화공원 사업은 박근혜 정부의 참신한 신상품인 만큼 통일부도 별도 사업항목을 구성해 앞세우고 싶은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402억원이라는 큰 규모의 돈을 들이는 데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사전 정지단계로써 북한을 상대로 정부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