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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 인사파동…'행정고시 성공시대'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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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리실 인사파동…'행정고시 성공시대' 옛말

    40대 후반, 50대 초반 퇴직…불안한 미래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총리실이 9일 1급 고위 공무원 5명의 사표를 수리한데 이어 13일자 후임 인사를 단행했다.

    형식은 1급 10명으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아 5명의 사표를 수리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내용은 경질이라고 봐야 한다.

    이를 두고 총리실뿐 아니라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 행정 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의기소침해 있다. 자신들도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행정고시와 기술고시 출신 엘리트 공무원들은 일찍 승진하면 뭐하냐는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고 있다.

    '행정고시 성공시대'가 이제는 옛말이 되고 말았다.

    ◈ 행정고시 출신…50대 초중반 조기 퇴진

    이번 총리실 인사에서 사표가 수리된 권태성 정부업무평가실장은 61년생으로 올해 53살이다. 지난 86년 행정고시 29회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27년 만에 공직을 떠났다.

    청운의 뜻을 품고 그 어렵다는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53살에 일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이처럼 행정고시와 기술고시 출신 엘리트 공무원들의 조기퇴진 현상은 총리실뿐 아니라 전 부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2년간 퇴직한 고시 출신 고위 공무원 10여명 가운데 5명 정도가 55세 이전에 퇴직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현직에 있는 국토부 1급 실장 5명 가운데 60년대 출생자가 3명이나 된다. 이들도 이번 총리실 1급 인사파동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앞으로 진행될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 1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들은 인사권자가 보직 발령을 내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퇴해야한다.

    고위직 공무원들의 사퇴는 9급부터 올라간 일반직 공무원과 고시 후배들의 자리 마련을 위해 길을 터준다는 의미에서 선순환의 역할도 있다.

    하지만 퇴직 연령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행정 조직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부작용도 크다

    ◈ 산하 기관단체, 협회 임원 자리…낙하산, 전관예우 논란

    그동안 정부 부처 차관과 1·2급 출신의 고위직 공무원들은 퇴직한 뒤에 산하 기관 단체와 협회 등에 임원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 3~4년간 더 일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낙하산 논란과 전관예우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공무원 퇴직 후 곧바로 산하 기관, 단체는 물론 일반 기업체에 재취업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6~7년 전까지만 해도 주요 산하 기관장과 단체장, 협회장 30여명 가운데 국토부 1급 이상 간부 출신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나, 지금은 인천공항공사 정창수 사장과 교통안전공단 정일영 이사장, 철도시설공단 김광재 이사장, LH 이재영 사장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이들은 공직 생활을 그만두고 길게는 5년 이상 떠나 있다가 정식 공모 과정을 거쳐 경쟁을 뚫고 뒤늦게 자리를 차지한 경우가 많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연구원과 교수, 정치인 출신이 대거
    공기업 사장과 협회장 자리를 꿰차면서 정부 부처 고위직 공무원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줄고 있다.

    여기에,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재산등록 의무를 지는 고위공무원이 퇴직할 경우 퇴직 전 5년간 일했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와 로펌, 세무법인 등에 2년간 취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승인을 받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업을 허용하고 있지만, 고시 출신 고위 공무원일수록 쉽게 노출돼 이 또한 녹록치가 않다.

    ◈ '행정고시 성공시대'는 갔다…"가늘고 길게 가자"

    이 때문에 요즘 정부 세종청사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번 총리실 1급 인사파동을 보면서, '가늘고 길게 가자'라는 말이 농담 아닌 진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빨리 승진하면 40대 후반, 50대 초반에 나가야 하는데 굳이 승진에 목을 맬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행정고시 출신인 국토교통부의 한 4급 공무원은 "일자리가 없어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어렵게 고시에 합격해서 박봉의 공무원 월급을 받으면서도 참아가며 일을 했는데 50대 초반에 나가라고 한다면 불만이 없겠냐"고 고개를 저었다.

    또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고위 간부는 "예전에는 산하 기관, 단체 등에 자리라도 하나 만들어주고 나가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이 무조건 그만두라고 한다"며 "50대 초반에 공무원 생활 그만두면 무엇해서 먹고 살아야 하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국정을 추진하면서 실적을 내기위해 공직자들에 대한 회초리로 인사권을 휘두르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무턱대고 휘두를 경우에는 매를 맞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 꼭꼭 숨어 버리게 된다.

    '가늘고 길게 가자'라는 말 또한,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매를 맞느니 몰래 숨어서 정년까지 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총리실의 한 공무원은 이번 1급 인사 파동에 대해 "총리실은 다른 정부 부처처럼 산하 기관 단체, 협회가 많지 않아 갈 곳도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옷을 벗긴다면 후배들은 오히려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인사파동은 벼룩 한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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