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34)씨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윤성호기자
"차라리 간첩혐의로 입건을 해서 변호인이 접견할수 있도록 해달라" (유우성씨 변호인단)
"진술을 잘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입건할 필요가 없다. 정상을 참작하겠다" (국가정보원)
지난해 5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1심 법정에서는 변호인단과 국가정보원 간에 유씨의 동생 가려씨에 대한 조사 방식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하지만 당시 변호인단은 되레 가려씨를 입건해달라고 요구했고, 국정원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맞서는 이상한 모습이 연출됐다. 간첩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입건돼 수사를 받으면 가려씨는 피의자가 된다.
변호인단이 가려씨에 대해 입건을 요구한 것은 국정원이 가려씨를 유유성씨의 공범인 간첩으로 봤지만, 참고인 신분이어서 변호인 접견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형사소송법상 참고인에 대해선 변호인 조력권(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과 진술 거부권을 고지할 필요가 없다.
가려씨는 지난 2012년 10월 말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여섯달 가까이 경기도 합동신문센터 독방에서 구금돼 조사를 받으면서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했으며, 자신도 "오빠가 건네 준 탈북자 정보를 직접 북한에 전달했다"고 시인했다.
가려씨는 장시간 동안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한 가운데 자신과 오빠의 간첩혐의를 시인했지만, 나중에 이를 폭행과 회유에 의한 강제된 진술이었다며 번복했다. 1심에서는 가려씨의 증언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오빠 유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국정원이 수사 초기부터 서울시 공무원인 유씨의 간첩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정원은 2006년부터 거의 6년간 유씨에 대한 수사를 벌였지만, 이렇다할 물증이 안오지 않자 가려씨를 국내에 들어오도록 유인해 거짓 자백을 받은 정황도 나온 상황이다.
가려씨가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유씨는 알고 지냈던 대공수사팀 국정원 요원에게 "하나밖에 없는 동생 잘 부탁드린다"며 자진신고 했지만 결국 가려씨는 간첩임을 자백하게 됐다.
그러나 1심에는 핵심 증거자료였던 가려씨의 진술 뿐 아니라 국정원이 확보한 사진, 통화내역, 증인들의 진술서 등 다른 물증들도 대부분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해보면 국정원은 사실상 동생의 진술을 이용해 유씨에게 간첩혐의를 덮어 씌우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이 가려씨를 처벌하지 않고 자백만 받아내려고 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검찰 안팎에서도 대공수사에서 당사자의 자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진술에 의존해 혐의를 입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의견이 많다. 간첩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다하더라도 물증을 들이대 자백을 얻어내는 게 통상의 수사기법이기 때문이다.{RELNEWS:right}
이런 의혹은 검찰이 진술을 번복한 가려씨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검찰이 유씨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가려씨를 기소하지 않고 놓아 준 것은 처음부터 잘못 시작된 수사를 방증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가려씨를 기소하려해도 대부분의 증거들이 탄핵됐기 때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법조계 인사는 "가려씨의 자백 진술이 애초부터 변호인 조력권 등에 대한 고지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증거능력을 가질 수 없다"며 "가려씨에 대한 물증은 오빠 유씨보다 훨씬 적어 기소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